SBS뉴스

뉴스 > 정치

[취재파일] 태완이법, 약촌오거리 사건의 희망이 될 수 있을까?

임찬종 법조전문기자

입력 : 2015.07.27 10:17|수정 : 2015.07.27 11:08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의 공소시효가 14일 밖에 남지 않았다. 엉킨 실타래를 풀고 모든 것을 제 자리로 돌려놓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다. 살인범 누명을 쓰고 감옥에서 10년을 보낸 최 모 씨에 대한 재심을 시작할 수 있을지조차 아직 확실하지 않다. 광주고등법원은 재심 절차 개시를 결정했지만 검찰이 항고해 대법원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당시 수사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항고한 검찰이 14일 안에 재수사에 나설 가능성은 희박하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취재에 따르면 2003년 자신이 살인범이라고 자백했다가 경찰 수사를 받았던(나중에 자백 번복) 또 다른 용의자 김 모 씨는 이 사건 공소시효 완료가 다가오자 해외로 잠시 나갔다고 한다. 이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려놓기에는 14일이 너무 짧다.

▶ [팩트라마 바로보기] '살인범' 15살 소년의 절규는 끝나지 않았다 


● 숨진 태완이가 남긴 선물, '태완이법'

뜻밖의 곳에서 희망이 나타났다. 약촌오거리 사건 발생 1년 전, 대구에서 악마 같은 살인범이 끼얹은 황산 때문에 세상을 떠난 소년이 있었다. 故 김태완 군이다. 태완이의 이름을 딴 ‘태완이법’이 7월 24일 국회를 통과했다. 사람을 살해한 범죄 가운데 사형에 해당하는 범죄에 대하여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법안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태완이법'이 8월 9일 자정 이전에 시행된다면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의 공소시효는 사라진다. 남아 있는 14일이 지나가더라도 약촌오거리 사건의 진짜 살인범을 붙잡아 처벌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중요한 전제 조건이 있다. 일단 태완이법의 내용부터 자세히 살펴본 뒤, 전제 조건을 이야기하겠다.

'태완이법'의 정식 명칭은 형사소송법 일부 개정안이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마련한 법안이다. 형사소송법에 대해 여러 국회의원 등이 개정 법안을 제출했기 때문에 법제사법위원회 차원에서 한 개의 법안으로 종합해 본회의에 제출한 것이다. 이 가운데 '태완이법'에 해당하는 내용은 서영교 의원이 대표 발의한 형사소송법 개정안과 법무부가 발의한 형사소송법 개정안의 내용을 절충한 아래와 같은 내용이다.

사람을 살해한 범죄(종범은 제외한다)로 사형에 해당하는 범죄에 대하여 공소시효를 폐지하고, 이 법 시행 전 행하여진 범죄로써 이 법 시행 당시 공소시효가 완성되지 아니한 범죄에 대하여도 이를 적용하도록 함(안 제253조의2 신설, 부칙 제2조)

적용 범죄의 범위는 서영교 의원 법안(사형 여부와 무관하게 모든 살인죄에 적용)보다 약간 좁은 법무부 법안 내용(사람을 살해한 범죄로 사형에 해당하는 범죄)이 반영됐다. 대신 최종 법안에 서영교 의원이 주장한 부칙이 포함됐다. '이 법 시행 당시 공소시효가 완성되지 아니한 범죄에 대하여도 이를 적용하도록 함' 이 부칙 덕분에 약촌오거리 사건에 희망이 생겼다.

원래 서영교 의원이 부칙을 넣은 것은 태완이 사건 때문이었다. 서 의원이 법안을 대표 발의한 2015년 3월 당시에는 태완이 사건의 공소시효가 남아있었다. 그러나 태완이법이 국회에서 계류돼 있는 사이 대법원이 재정신청을 기각하면서 공소시효가 끝났다. 이제는 태완이법이 있어도 태완이 사건의 범인을 처벌할 수 없다. 법률이 시행 전에 공소시효가 완성되었기 때문에 적용 대상에서 제외됐다.


● 태완이법이 약촌오거리 사건의 희망이 되기 위해서는…
 
그러나 약촌오거리 사건은 태완이법의 혜택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약촌오거리 사건의 공소시효는 14일 남아있다. 아직까지는 태완이법 부칙에서 설명하고 있는 '공소시효가 완성되지 아니한 범죄'에 해당한다. 공소시효가 완성되는 8월 9일 자정 이전에 태완이법이 시행된다면 약촌오거리 사건의 공소시효는 폐지된다. 진실에 대한 시간 제한이 사라지는 것이다.

그러나 국회 본회의를 통과가 곧 법률 시행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국무회의 심의 의결과 공포, 그리고 시행 절차를 거쳐야 한다. 태완이법은 7월 24일 국회를 통과했다. 약촌오거리 사건이 혜택을 보기 위해서는 공소시효 종료 시점인 8월 9일 자정 이전에 태완이법이 시행되어야 한다. 본회의 통과 16일만에 국무회의 심의 의결과 공포, 그리고 시행절차를 모두 마무리해야 하는 셈이다. 가능할까?
 
전례에 비춰 보면 무리한 일은 아니다. '세월호 3법'이 가까운 사례다. 세월호 3법은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3가지 법안이다. (세월호 조사위원회 설치를 내용으로 하는 '세월호 특별법', 대형 사고 책임자나 회사의 불법 은닉재산을 몰수할 수 있도록 한 '유병언법', 국민안전처 신설을 핵심으로 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 2014년 11월 7일 오랜 진통을 거쳤던 세월호3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그러자 행정부는 2014년 11월 18일 정홍원 국무총리 주재로 영상 국무회의를 열어 세월호3법을 심의 의결했고, 다음 날인 19일 공포했다. 유병언법과 정부조직법 개정안은 공포와 동시에 시행됐다. 국회 본회의 의결부터 시행까지 12일 밖에 걸리지 않았다.약촌오거리 사건의 공소시효 종료 시점은 태완이법의 본회의 통과 시점인 7월 24일부터 16일 뒤인 8월 9일 자정이다. 세월호3법과 비교하면 4일 더 여유가 있는 셈이다.

● 정의를 세우기 위해 하늘을 무너뜨릴 필요는 없다

물론 세월호 3법은 오랜 기간 통과가 지연되었던 법이라 행정부가 특별히 신속하게 처리한 경우다. 그러나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것은 태완이법도 마찬가지다. 억울하게 살인범으로 몰려 10년 동안 감옥에 갇혔던 한 사람, 이제는 아내와 아이 앞에서 떳떳하고 싶다는 한 남자의 누명을 벗기는 일이다. 사람을 죽이고도 단 하루도 처벌받지 않은 누군가를 붙잡아 정의를 바로 세우는 일이다. 태완이법 역시 특별하다.

철학자 칸트는 “하늘이 무너져도 정의는 세워라.”’라는 말을 했다. 여러 법조인이 이 말을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 약촌오거리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 하늘을 무너뜨릴 필요는 없다. 태완이법 시행 절차를 빠르게 마무리하고, 절차에 따라 재수사에 착수하면 되는 일이다. 정의를 세우기 위해 그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14일 남았다. 신속한 결정을 기대한다.  

▶ [팩트라마] '살인범' 15살 소년의 절규는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