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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플러스] '김태완 사건' 공소시효 만료…뒤늦은 소위 통과

안현모 기자

입력 : 2015.07.22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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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그러니까 16년 전에 대구에서 길을 가던 6살 남자아이가 알 수 없는 누군가에게서 황산 세례를 맞아 전신에 화상을 입고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고 김태완 군의 이야기인데요, 아직도 범인을 찾지 못했지만, 지난달로 공소시효가 끝나버렸습니다.

그사이 살인죄에 대해서는 공소시효를 없애자는 이른바 '태완이법'이 발의되기도 했는데, 소중한 시간을 다 흘려보내고 난 뒤에 어제(21일)야 비로소 법사위를 통과했습니다.

왜 좀 더 빨리 통과되지 못했을까요? 임찬종 기자가 취재파일에 남겼습니다.

우리가 선진국이라고 부르는 미국, 영국, 일본 모두 살인죄는 공소시효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태완이 사건 이후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됐는데요, 어제까지 넉 달이 넘도록 첫 관문조차 뚫지 못했습니다. 지난달 17일로 한번 거슬러 올라가 보면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법사위 법안심사 1소위가 열렸는데요, 이 자리에서 법안의 적정성을 평가하는 법사위 수석 전문위원과 정부를 대표하는 법무부 차관, 그리고 사법부를 대표하는 법원행정처 차장이 일제히 살인죄 공소시효의 폐지에 찬성했습니다.

그런데 새정치민주연합 전해철 의원과 임내현 의원이 좀 더 신중해야 한다는 보류 의견을 밝히더니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은 아예 강한 반대 입장을 내놨습니다.

공소시효 폐지는 시기상조라며 국민 여론과 법감정에 휩쓸려서 마구 결정할 사안이 아니라고 주장한 겁니다.

대표 발의자인 새정치민주연합의 서영교 의원이 마지막으로 재차 법안 통과를 호소했지만, 결국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논의는 다음 소위로 미뤄졌고, 정작 2주 뒤에 열린 다음 소위에서 태완이법은 논의되지도 않았습니다. 게다가 이미 태완이 살인범에 대한 공소시효는 종료된 이후였습니다.

법률 변경에 보수적일 수밖에 없는 법무부와 대법원마저 타당하다고 인정한 법이 법적 안정성을 앞세운 일부 반대 논리에 부딪혀 좌절된 겁니다. 물론, 이제라도 태완이법이 속도를 낸다니 다행입니다.

하지만 태완이의 죽음은 영구미제로 남아서 살인범이 설령 자백을 하더라도 영영 처벌할 수 없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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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국에서도 한 어린아이의 사연이 많은 이들을 안타깝게 만들었습니다.

크고 똘망똘망한 눈에, 볼이 포동포동한 이 예쁜 여자아이인데요, 사실 실제 얼굴을 찍은 사진이 아니고요, 컴퓨터 작업으로 생전의 모습을 복구해낸 사진입니다. 무슨 일인지 박병일 특파원이 취재파일을 통해 전했습니다.

한 달 전쯤 매사추세츠 주의 해안가에서 강아지를 산책시키던 한 여성은 강아지가 검정색 비닐 봉투를 뒤적이는 걸 보고 함께 들여다봤다가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서너 살 정도로 보이는 아이의 시신이 담겨 있었기 때문입니다.

얼룩말 무늬 담요에 쌓여 있었고 검은색 땡땡이 레깅스를 입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벌써 부패가 진행된 상태였던 데다 주민등록이 안 된 어린이였기 때문에 신원을 파악할 수가 없었습니다.

따라서 과학수사연구소가 시신을 참고해서 이미지를 완성해냈는데요, 이렇게 생긴 아이를 안다면 꼭 연락해 달라며 경찰이 SNS에 올린 공고가 역대 최고로 높은 조회 수를 기록하며 제보가 물밀 듯이 접수됐습니다.

그렇지만 번번이 확인할 때마다 제보자들이 지목한 아이들은 전부 살아있었고 더 심각한 건 검시관의 조사에도 불구하고 사인을 밝힐 수도 없었습니다. 특별한 외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또 그 지역에 거주했던 아이인지 아니면 누가 그곳까지 와서 몰래 버리고 간 건지, 또는 조류를 타고 떠내려온 건지 전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수사를 시작조차 못 하게 되자 경찰은 기자회견까지 자청해서 제발 부모가 나타나 주길 바란다며 양심에 호소했지만, 여전히 어떠한 실마리도 잡히지 않고 있습니다.

이제 이 사진 자체는 인터넷에서 급속도로 확산되면서 미국인들 사이에서는 꽤 유명해졌습니다. 그렇지만 정작 사진 속 천사 같은 얼굴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는 아무도 모르는 상황인데요, 마치 지금이라도 작은 입을 움직여서 귀여운 목소리로 자기 이름을 우리들에게 말해줄 것만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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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대학로에서는 엄마와 딸이 등장하는 연극 두 편이 동시에 공연 중입니다. 연극 <친정엄마>와 <잘자요 엄마>인데요, 모녀 관계라는 소재만 같을 뿐 줄거리와 감동은 전혀 다르다고 합니다. 곽상은 기자가 취재파일을 통해 소개했습니다.

먼저 <친정엄마> 속 엄마와 딸은 한국 문학 속에서 늘 봐 왔던 상투성을 벗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벗어나지 못했다기보다는 벗어나지 않은 것으로 희생과 헌신으로 대표되는 엄마와 철없는 딸이라는 전형적인 조합을 일부러 더 노골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대단한 결함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보는 내내 마음이 울컥울컥 하고 자꾸만 뜨거운 눈물을 훔치게 된다고 하니 손수건은 꼭 챙겨가셔야겠습니다.

결혼을 했든 안 했든 자식이 있건 없건 나이가 몇 살이든 상관없이 엄마의 무조건적인 사랑에 가슴이 먹먹해지다가도 딸의 퉁명스런 행동을 보며 미안함과 후회의 감정이 밀려들기도 할 겁니다.

반면 <잘자요 엄마>는 한국인이 아닌 미국인 작가가 희곡을 썼습니다.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겪을 수 있는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정서가 아니라 딸이 아버지의 권총으로 자살을 시도하려 하는 극단적이고 충격적인 얘기를 다루고 있어서 공감은 덜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절박한 순간에서 오가는 모녀지간의 대화를 통해서 관객들은 인간관계의 모순과 한계를 직시하며 서늘하고도 날카로운 여운을 느끼게 된다고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이지만, 서로의 외로움과 절망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그렇다고 간극을 메워보고자 노력할수록 상대의 상처와 치부를 건드리기만 하는 현실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는 겁니다.

두 연극의 공통점이 하나 더 있습니다. TV에서 자주 본 낯이 익은 배우들이 열연을 펼친다는 점인데요, 엄마와의 데이트, 혹은 딸과의 데이트 코스로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