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뉴스

뉴스 > 사회

[한수진의 SBS 전망대] 미쓰비시 피해 할머니 "사죄받아야 눈 감을 수 있을 것 같아"

입력 : 2015.07.21 09:26|수정 : 2015.07.21 11:41

대담 : 미쓰비시 조선여자 근로정신대 강제동원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

동영상

▷ 한수진/사회자:

어제였죠. 일본 대기업인 미쓰비시가 제2차 대전 당시 강제 노동에 징용됐던 미군 포로와 가족들에게 정식으로 사과를 했습니다. 그것도 직접 찾아가서 말이죠. 일본 대기업이 2차 대전 당시 강제 징용 피해자에 대해서 공식 사과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그런데요, 그보다 훨씬 심하게 착취당한 우리나라 강제노역 징용자에 대해서는 사과는커녕 언급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미쓰비시의 이번 사과는 다른 나라의 피해자는 무시한 반쪽짜리 사과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데요. 우리나라 강제노역 징용자들은 이번 미쓰비시의 미군 포로에 대한 사과 어떻게 지켜봤을까요? 미쓰비시 정신대 근로자 강제동원 피해자시죠. 양금덕 할머니와 말씀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양금덕 할머님 나와 계시지요?

▶ 미쓰비시 조선여자 근로정신대 강제동원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

안녕하세요.

▷ 한수진/사회자:

안녕하세요. 어제 일본 미쓰비시 미군 포로에게 사과하는 거 보셨어요?

▶ 미쓰비시 조선여자 근로정신대 강제동원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



▷ 한수진/사회자:

어떠셨어요?

▶ 미쓰비시 조선여자 근로정신대 강제동원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

그야말로 말할 수 없이 분통 나고 억울하고 그럽니다.

▷ 한수진/사회자:

분통 나고 억울하다?

▶ 미쓰비시 조선여자 근로정신대 강제동원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

그렇죠. 우리가 강제 동원돼서 간 사람은 제쳐놓고 미국에만 사죄하니 천불나고, 우리나라는 사람이 아니고 우리 대한민국은 어느 나라에도 다 알려졌는데 우리 한국 사람한테는 사죄 한 마디도 안 했다면 어느 나라 법입니까? 양심이 옳다는 일본 사람이 정직하다고 한 사람, 마음 심보가 옳다고 생각합니까? 이 세상에서 그런 일은 없어요. 강제노동을 시켰으면 사죄만큼은 분명히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 한수진/사회자:

그런데 우리나라 특히 중국인 강제 징용자 다 이쪽에 대해서는 의견을 밝히지 않겠다, 이렇게 미쓰비시 측에서 밝혔단 말이죠.

▶ 미쓰비시 조선여자 근로정신대 강제동원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

그러니까 그것이 무슨 이유인가 도대체 알다가도 모르겠어요.

▷ 한수진/사회자:

그런데요, 중국인 강제노역 피해자와 가족들에게는 보상을 논의한 적이 있었다면서요?

▶ 미쓰비시 조선여자 근로정신대 강제동원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

네. 그 전에 한 번 해줬다는 소리도 들었어요.

▷ 한수진/사회자:

이미 보상도 한 번 한 적이 있다?

▶ 미쓰비시 조선여자 근로정신대 강제동원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

네. 우리 한국에는 이렇게 말한 적이 없는 원인이 뭔가. 도대체 정부에서 안 해주면 누가 내 힘으로 말할 것입니까? 우리는 누가 서둘러 줍니까?

▷ 한수진/사회자:

정부가 이렇게 힘을 써주지 않으니까 대놓고 우리를 무시하는 거다, 이런 말씀이신가요?

▶ 미쓰비시 조선여자 근로정신대 강제동원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

그렇죠.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 한수진/사회자:

그래서 우리에게만 사과도 하지 않고 노골적으로 무시를 하고 있는 거다?

▶ 미쓰비시 조선여자 근로정신대 강제동원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

네.

▷ 한수진/사회자:

사실 우리가 피해가 제일 크죠.

▶ 미쓰비시 조선여자 근로정신대 강제동원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

제일 크죠. 우리는 한 10만 명 이상이 사망당하고 그랬지만 미국에서야 그렇게 많은 숫자가 없어요.

▷ 한수진/사회자:

미국 징용피해자 900여 명이라고 미쓰비시가 밝혔는데요.

▶ 미쓰비시 조선여자 근로정신대 강제동원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

우리는 10만 명이 넘어요.

▷ 한수진/사회자:

그런데도 우리에게는 일언반구도 없다는 말씀이시네요.

▶ 미쓰비시 조선여자 근로정신대 강제동원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

우리는 어린 소녀 학생들까지 갔다가 강제 동원 시켜서 이렇게까지 고통을 준 일은 없어요. 어느 나라 법인가 모르겠어요.

▷ 한수진/사회자:

할머니는 몇 살 때 일본으로 끌려가셨어요?

▶ 미쓰비시 조선여자 근로정신대 강제동원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

국민학교 6학년 말, 막 올라가자마자, 그때 14살 막 되자마자 그랬습니다.

▷ 한수진/사회자:

어떻게 가게 되셨어요?

▶ 미쓰비시 조선여자 근로정신대 강제동원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

교장선생하고 들어와서 그때는 전부 일제시대라 일본 사람이에요 선생이. 담임도 그렇고. 교장하고 헌병이 와서 교장 하는 말이 너희들 열사람 네가 가서 말만 잘 들으면 중학교를 첫째 보내주고, 선생님 월급도 주고, 올 때 땅도 사고 집도 사고 할 돈을 많이 벌 수 있다. 집에 가서 아버지한테, 이만저만하고 우리 일본이 어디가 있는지도 모르지요.

▷ 한수진/사회자:

중학교 공부도 시켜준다고 해서. 같은 학교 학생들도 당시 일본으로 많이 끌려갔겠어요?

▶ 미쓰비시 조선여자 근로정신대 강제동원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

목포, 나주, 광주, 순천, 여수 5개 도시에서 다 졸업생 2년 선배, 1년 선배 우리 나주에서는 24명이 1년 선배 2년 선배 열 몇 명을 해놓고 숫자가 모자라니까 우리 교실로 6학년까지 들어왔죠. 그래서 도장을 갖고 오라고 해서 우리 아버지가 절대 너희를 왜 중학교를 보내 주냐. 대동아전쟁시대다, 가면 죽는다, 그래서 우리 아버지 말이 이만저만 가지 말라고... 죽는다고 가지 말라고. 한 번 간다고 했다 안 가면 너네 아버지 전부 경찰서에 가둬버린다고 해서 너무나도 무서워서 도장을 내줬죠.

▷ 한수진/사회자:

그렇게 위협도 하고 말이죠.

▶ 미쓰비시 조선여자 근로정신대 강제동원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

네. 무서워서 여러 명 중에서 세 명은 승낙은 못 듣고 7명은 승낙을 들었어요. 집에서 갈 때 우리 엄니하고 얼굴을 내밀고 어머니 아버지 잘 갔다 온당께~ 땅을 치고 그런 난리가 없었죠.

▷ 한수진/사회자:

생이별하다시피 헤어지셨는데 일본에서는 어떤 식으로 강제노역을 당하신 건가요?

▶ 미쓰비시 조선여자 근로정신대 강제동원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

비행기 속에 들어갈 부속을 녹진 걸 신나로 닦고 또 닦고 또 닦고. 나는 완성된 비행기에다가 공부도 잘 했으니 이것도 한번 해보라고 해서 비행기 몸에다가 페인트칠을 해서 제일 어려운 일을 했죠.

▷ 한수진/사회자:

공부시켜 준다고 했는데?

▶ 미쓰비시 조선여자 근로정신대 강제동원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

비행기 몸통에다 페인트를 칠하면 눈을 뜨니까 눈으로 막 날아 와요, 페인트가...지금도 눈은 잘 보이지도 않고, 눈에 확실히 무엇이 껴서 나쁜 것이 확실히...

▷ 한수진/사회자:

강제 노역을 당한 지 70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후유증에 시달리시고. 지진이 나서 많이 다치기도 하셨다고요?

▶ 미쓰비시 조선여자 근로정신대 강제동원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

세 시간 만에 살아났어요. 지금도 상처가 그대로 있습니다.

▷ 한수진/사회자:

가혹하게...

▶ 미쓰비시 조선여자 근로정신대 강제동원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

평생에 없는 고생을 거기서 다 했습니다. 지진에 시달려 죽다 살아났죠. 공습에... 저녁에 한 시간도 제대로 못 자요. 두 시, 한 시 되면 공습이 왔다고 반공포 속에 들어갔다 나갔다 들어갔다 나갔다... 왔다 갔다 하기 싫으면... 반공포 속에서 한두 번 잔 것이 아녜요 ... 나오고 그랬어요.

▷ 한수진/사회자:

아이고 참...

▶ 미쓰비시 조선여자 근로정신대 강제동원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

배가 고파 죽겠어요 또. 그 통에서도 배가 고파서 일을 못 하겠어요. 알맹이 쌀에다가 썩은 감자 넣어서. 자기 학생들은 쌀밥만 주고 우리들한테는 강제로 데려다가 일을 시키면서 왜 그런 것도 다 ... 우리들은 다 못된 것만 주고. 지금도 억울해 죽겠어요.

▷ 한수진/사회자:

썩은 감자를 줬어요.

▶ 미쓰비시 조선여자 근로정신대 강제동원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

네.

▷ 한수진/사회자:

얼마나 억울하고 원통하시겠어요. 그러고도 월급은 한 푼도 받지 못하고.

▶ 미쓰비시 조선여자 근로정신대 강제동원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

일요일 날 빨래하라고. 비누 한 장 이름 적고 모포 한 장 봉투 한 장 연필 한 장. 이름 써놓고 줘요. 뭐 산다고 돈 달라고 하니까  저금하고 있다고. 저금하고 너 갈 때 주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 한수진/사회자:

그렇게 정말 노예처럼 일을 하셨어요. 지금 매주 일본 미쓰비시 본사 앞에서 집회도 열고 계시는 거죠?

▶ 미쓰비시 조선여자 근로정신대 강제동원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

며칠 전에도 갔다 왔습니다. 18일 날.

▷ 한수진/사회자:

몇 년 째입니까?

▶ 미쓰비시 조선여자 근로정신대 강제동원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

지금 20년이 넘지요. 기각 당한 것도 딱 20년 전 일본 시민모임들이 우리를 거기서 일했다는 것을 강제 동원되어서 했다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해서 거기서도 대법원까지 가서 기각 당하고. 박정희 대통령한테 네 나라에서 다 가져갔다고 거기로 다 줬으니 사죄할 것도 없다고.

▷ 한수진/사회자:

일본에서 소송한 것은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패소했다는 말씀이시고요.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에서 한 소송에서는 항소심에서 승소했잖아요. 승소 판결을 받은 게 소송을 시작한지 무려 16년만 맞죠?

▶ 미쓰비시 조선여자 근로정신대 강제동원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

네.

▷ 한수진/사회자:

참 오래 걸렸습니다.

▶ 미쓰비시 조선여자 근로정신대 강제동원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

그런 것도 그렇고 이렇게 강제로 동원돼서 일을 시켜서 또 그런 일이 없다. 일본 미쓰비시 동경 사무실까지 가서 몇 번은 가서 말하고 그랬어요. 한 두 번이 아닙니다.

▷ 한수진/사회자:

그렇게 했는데도 사과를 안 하고 있어요.

▶ 미쓰비시 조선여자 근로정신대 강제동원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

네. 그것이 무슨... 그러니까 뭘 더 어떻게 해요. 말을 몇 번을 몇 차례 가서 말을 했지만 지금까지도 사죄할 사람은 따로 있는데 다른 데에는 사죄하고 우리만 딱 빼놓는 것이 억울한 사람이 살아있어도 죽으라는... 그렇게 일본 자기나라에 가서 목숨을 다 바쳐서 일한 것도 억울한데 이렇게까지 70년이 되도록 이렇게 괄시하고, 사죄 한 마디 안 한다는 것이 억울하고. 누구한테 말할까요.

▷ 한수진/사회자:

법정 싸움도 계속하고 계시지만 보상보다는 사과의 말을 꼭 듣고 싶다 이 말씀이시죠.

▶ 미쓰비시 조선여자 근로정신대 강제동원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

그렇죠, 반드시 잘못한 것은 잘못했다고 사과 한 번쯤은 해야죠.

▷ 한수진/사회자:

그런 날이 꼭 오기를 저희도 간절히 바라고 있겠습니다.

▶ 미쓰비시 조선여자 근로정신대 강제동원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

많이 협조 해주세요.

▷ 한수진/사회자:

네. 할머님도 건강하시고요.

▶ 미쓰비시 조선여자 근로정신대 강제동원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

꼭 사죄 좀 받게. 사죄 받아야 나도 이 세상을 뜨겠습니다.

▷ 한수진/사회자:

말씀 잘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할머니. 건강하십시오. 미쓰비시 정신대 근로자 강제 동원 피해자죠. 양금덕 할머니와 말씀 나눴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