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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과학자 뉴턴의 또 다른 직업은 명탐정?

입력 : 2015.07.16 15:55


근대과학의 선구자인 아이작 뉴턴(1642~1727).

잉글랜드 출신의 천재적 물리학자이자 수학자였던 뉴턴은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하고 미적분학을 완성하는 등 혁혁한 공을 세웠습니다.

그럼 뉴턴은 과학자이자 수학자일 뿐이었을까?

토머스 레벤슨의 저서 '뉴턴과 화폐위조범'은 일반에 잘 알려지지 않은 뉴턴의 탐정 경력에 초점을 맞춰 그의 또다른 삶의 면모를 살펴봅니다.

뉴턴은 과학자와 수학자로서 50대 초반까지 케임브리지 대학을 중심으로 맹활약합니다.

당대 최고 지성인으로 명성이 자자하던 그는 쉰세 살에 갑자기 학교를 떠납니다.

연금술을 오랫동안 연구해오다 그만 신경쇠약에 걸려버린 것입니다.

대학을 떠난 이듬해, 뉴턴은 런던으로 가서 영국 조폐국 감사직을 맡습니다.

법과 전통에 따라 국왕의 통화를 보호하는 경찰관,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수사관 겸 신문관 겸 검찰관이 된 것입니다.

역시 그는 타고난 천재였습니다.

과학의 천재였던 뉴턴은 조폐국 감사로서도 천재적인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했습니다.

4년 동안 재임하면서 화폐 위·변조자 수십 명을 추적·체포하고 기소했습니다.

그는 증거, 부주의한 대화, 밀고로 촘촘히 짠 그물에 '적'이 걸려들게 하는 비법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저자는 명탐정의 독특한 관점에서 이 전기를 썼습니다.

뉴턴의 과학적 업적은 최소한만 소개하고 대부분을 조폐국 탐정 활동에 할애했습니다.

특히 당대의 화폐 위조범 윌리엄 챌로너와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흥미롭게 다뤘습니다.

챌로너는 뉴턴 못지않게 비상한 재주를 지닌 당대 최고의 위조범이었습니다.

재정과 주화 제조술에 대한 논문을 의회에 제출할 만큼 박식했고, 6년간 야심차게 범죄를 일삼으면서도 기소를 교묘하게 피할 만큼 교활했습니다.

두 천재 뉴턴과 챌로너의 정면 승부.

뉴턴은 법정과 거리에서 챌로너를 뒤쫓고, 챌로너는 뉴턴에게 사기의혹을 제기하는 등 역공을 폈습니다.

이들은 2년 동안 수사관과 범죄자로 용호상박의 맞대결을 숨 막히게 전개했습니다.

결국 챌로너는 붙잡혀 사형당했습니다.

뉴턴과 챌로너가 맞붙었던 1690년대는 영국 화폐위조의 황금기로 꼽힙니다.

당시 챌로너가 위조한 화폐는 3만 파운드, 요즘 한화로 68억 원 가량에 달했습니다.

뉴턴은 85세까지 살아 장수했습니다. 

(SBS 뉴미디어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