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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냐 죽음이냐"…그리스 환자들 절망의 갈림길

입력 : 2015.07.10 07:52


"아니, 인슐린 없이 어떻게 당뇨를 관리하라는 겁니까?" 그리스 수도 아테네 북부 부촌의 한 약국.

약국 세 곳을 전전하고도 인슐린을 사지 못한 72세의 당뇨환자 이오시프 페르디카리스는 마침내 약사를 향해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그리스에서 자본통제가 시작된 이후 해외 송금이 불가능해지자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의약품이 품귀 현상을 빚으면서 나타난 풍경입니다.

페르디카리스는 8일(현지시간)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 기자에게 "국민투표에서 협상안 '반대'에 투표한 것이 후회된다"며 "이 꼴을 좀 봐라. 난 약조차 살 수 없고 다음 주면 우린 드라크마(그리스의 옛 화폐 단위)를 써야할 지도 모른다"고 하소연했습니다.

같은 날 AFP통신도 그리스의 만성질환자들이 겪는 고통을 소개하며 그리스의 위기가 '삶이냐 죽음이냐'의 문제가 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61세의 연금 생활자로 뼈암을 앓고 있는 이아니스 칼로이다스씨는 비영리병원에서 6개월째 약을 받지 못하고 있다면서 당장 약값을 내지 않으려면 대신 서류를 받아 다른 약국에 찾아 가야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약값이 3,500유로나 된다. 만약 내가 약값을 지불해야 한다면 끝이나 마찬가지"라고 화난 목소리로 토로했습니다.

지난 5일 그리스 국민투표 이후 시민들이 보여준 환희가 빠르게 사그라진 아테네에서는 여전히 진전없는 협상에 대한 불안함과 계속되는 자본통제로 인한 고단함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현금 부족은 갈수록 심화돼 이번 주말 무렵이면 시중은행의 현금 보유고가 바닥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옵니다.

페르디카리스의 사례처럼 의약품 품귀 현상은 생존까지 위협합니다.

특히 아이를 가진 부모들은 분유나 상비약 사재기에 나서고 있습니다.

약사 만도 니콜로풀루는 WSJ에 "이미 심장질환과 고혈압 약이 부족해졌는데 그나마 그리스산 제네릭(복제약)이 있어 오리지널 제품이 떨어져도 대체가 가능하다"며 "그렇지만 인슐린이 거의 바닥난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습니다.

아테네 중심부에 있는 비영리 엘피스병원의 테오 지아나로스 책임자는 "약품 회사들이 지금 상황에서 공급을 계속할 수 없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 오고 있다"면서 "약품이나 보급품, 식품이 없이는 병원을 운영할 수 없다. 더는 농담이 아니며 이것은 진짜 범죄"라고 말했습니다.

AFP통신은 또 앞으로 수주 사이에 상황이 더 악화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자본통제가 계속되고 그렉시트 우려가 커지면서 해외 공급업체들이 수출을 꺼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 제약회사 아델코의 에반겔로스 콜로토트로니스 매니저는 "지금은 두달분의 재고가 있다"면서 "오늘 16만 유로어치의 물품을 주문하는 요청서를 제출했으나 이를 처리하는 데까지 시간이 걸릴 가능성이 우려된다"고 말했습니다.

국민투표에서 협상안을 수용하자는 데 표를 행사했던 사람들의 좌절감은 더 큽니다.

사람들이 길게 늘어선 현금자동입출금기(ATM) 앞을 어린 손녀들과 함께 지나가던 74세의 이아니스 콘스탄티니디스는 "치프라스가 어떤 합의라도 끌어냈으면 하는데 이미 유럽 사람들은 그리스에 질려버린 것 같다"고 한탄했습니다.

그는 "손녀들이 어려도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것은 아는 것 같다. TV에서 항상 은행 앞에 늘어선 사람들을 비춰주니 '할아버지, 무슨 일 있어요?' 묻곤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막판 협상 타결에 대한 기대를 놓지 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통장 잔고가 하루 최대 인출한도인 60유로에도 못 미친다"는 27살의 실직자 이오아나 무자키는 "채권단이 기싸움을 하는 중이며 결국은 물러서서 그리스를 유로존에 남게 할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그는 "우리가 국민투표를 실시하고 더 이상의 긴축은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고 해서 유럽이 그리스에 벌을 줄 것 같지는 않다"면서 "게다가 그리스에는 '희망은 마지막까지 살아남는다'는 속담도 있다"고 부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