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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는 어떻게 죽어 어떻게 묻혔을까?

입력 : 2015.06.25 11:21


가경 5년 경신(1800년) 6월28일 유시(오후 5~7시)에 조선국왕 정조가 창경궁 영춘헌 동온돌에서 승하했습니다.

이제는 임금이 다시 일어날 수 없음을 알게 된 조정에서는 이날 질병내시가 왕을 부축해 동쪽으로 머리를 뉘게 했습니다.

국왕은 함부로 죽을 수도 없었고, 절차에 따라 머리는 동쪽으로 하고 죽어야 했습니다.

동쪽은 생명이 동트는 땅인 까닭에 동쪽에 머리를 두면 혹시라도 살아나지 않을까 하는 염원을 담는 행위였습니다.

그의 죽음을 감지한 종척집사가 임금이 누운 어상 곁으로 나아가 햇솜을 입과 코 사이에 얹어두고 솜이 움직이는가를 살피는 속광을 했습니다.

숨이 끊어졌음을 확인하자 안팎에서는 곡을 시작했습니다.

내시는 국왕이 평상시 입던 웃옷인 곤포를 왼쪽에 메고 지붕 앞 동쪽 물받이로 해서 지붕에 올라가 왼손으로 옷깃을 잡고 오른손엔 옷 허리를 잡으면 북쪽을 향해 세 번 '상위복'이라고 외쳤습니다.

"임금이시어 돌아오시라"는 뜻입니다.

이를 혼을 다시 부르는 일이라 해서 초혼이라 합니다.

북쪽을 향하는 이유는 그쪽이 죽음을 관장하는 방위였기 때문입니다.

국가의 큰일은 제사와 전쟁 두 가지에 있다는 말이 이미 좌전에 보이듯이 동아시아 국가에서 각종 제의(rituals)는 국가 대사 중의 대사였으며, 특히나 군주의 장례는 그 의식이 장중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그만큼 인력과 돈 역시 국가 재정을 휘청거리게 할 정도로 많이 들었습니다.

장례가 다른 국가 의식과 다른 점은 느닷없이 찾아온다는 사실입니다.

다른 의식이 대체로 절기에 맞추어 주기로 반복하는 데 견주어 죽음은 어느 날 느닷없이 찾아오기 마련입니다.

그런 죽음 중에서도 국왕의 죽음은 왕조국가에서는 더욱 특별한 의미를 지닐 수밖에 없었습니다.

서울대 국사학과에서 '조선후기 종묘 전례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이현진 서울시립대 서울학연구소 연구교수가 단행본 '왕조의 죽음, 정조의 국장'을 통해 조선 국왕의 죽음과 장례 절차를 자세히 정리했습니다.

'규장각 교양총서' 일환인 이번 연구가 가능한 까닭은 말할 것도 없이 정조를 비롯한 조선후기 국왕 혹은 그에 버금가는 왕실 주요 인물들의 장례 절차를 도설로 정리한 각종 의궤가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정조의 죽음만 해도 '정조국장도감의궤'를 비롯한 관련 기록이 풍부하게 전합니다.

모든 국왕과 왕비 혹은 이들보다 어른인 태후 등의 장례식에는 그것을 거행하기 위한 임시 관청이 설치되기 마련입니다.

무덤 조성을 위한 임시기구를 산릉도감이라 합니다.

무덤 중에서도 군주의 무덤은 흔히 산에 비유됐으므로 산릉이라 한 것입니다.

정조의 무덤은 화성 건릉입니다.

무덤 정자각 건설은 정조가 죽은 지 두 달 정도가 지난 8월24일 주초를 놓는 정초로 시작했습니다.

이어 9월6일 기둥을 세우고 들보를 올리더니 이튿날에는 벌써 서까래를 올립니다.

사흘 뒤인 9월7일에는 기와를 올리기 시작해 10일에는 다 끝내 버립니다.

정자각 만드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16일입니다.

우리 선조는 건축물을 만드는데 10년을 썼는데 지금의 우리는 그렇게 하지 못하느니 하는 말은 전부 거짓인 셈입니다.

이번 책에 대해 저자는 "정조가 죽기 직전부터 시작해 신주가 종묘에 봉안되어 상장례를 마칠 때까지 3년 동안 진행된 모든 과정을 담았다"고 하면서 특히 그에 등장하는 갖가지 "어려운 용어를 전거를 찾아 일일이 풀이해 전문연구자 및 일반인에게 제공하는 것 또한 이 책의 주요한 장점 중 하나"라고 자평했습니다. 

(SBS 뉴미디어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