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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도쿄대 합격하면 100만 엔"…황당 장려금 그 후

최선호 논설위원

입력 : 2015.06.17 08:59|수정 : 2015.08.19 20:03


"도쿄대를 비롯한 명문대 합격자에게는 100만 엔, 그 외 국공립대 합격자는 30만 엔"

지난해 11월 일본 가고시마현의 이사(伊佐)시가, 현립 오구치(大口)고등학교 학생들에게 내건 황당 장려금입니다. 도쿄대, 교토대, 규슈대 같은 과거 '제국대학'들과 게이오, 와세대 등 명문 사립대학 합격자에게는 100만 엔을 지급하고, 그외 국공립대학 합격자에게는 30만 엔을 장려금으로 주겠다는 약속입니다.

이사시는 규슈 남단 가고시마현의 작은 지자체입니다. 이사시도 이게 황당한 장려금이라는 점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인구급감에 따른 학생수 감소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우수 학생을 유치하고 학업성취를 장려해, 자기 고장의 학교를 살리겠다는 '고육지책'이라는 겁니다.

이사시의 현립 오구치 고등학교는 학년별 최소 3반을 유지하기 위해 매년 81명은 입학해야 합니다. 그런데 해마다 인구가 줄면서 학생수도 급감해, 지난해 봄에 입학 희망자를 조사해 보니 56명에 불과했습니다. '황당 장려금' 정책을 써서라도 제대로 된 고등학교를 유지해야, 지역도 산다는 게 이사시의 생각입니다.
일본 황당 장려금
- 일본 대입시험장 모습, 산케이 신문 자료 -
 
2015학년도 입시가 모두 마무리되고, 이사시의 황당 장려금 결과가 최종 확정됐습니다.

오구치 고등학교 측은 "100만 엔을 받을 수 있는 규슈대에 2명이 시험을 쳤는데 유감스럽지만 불합격이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가고시마대학을 비롯한 국공립대학에 모두 18명이 합격했다"라고 밝혔습니다.

지난해 오구치 고등학교의 국공립대 합격자는 4명에 불과했습니다. 학교 측은 '진학실적'이 좋아진 것은 사실이라며 뿌듯해하고 있습니다. 장려금을 받은 학생들도 "어머니가 크게 도움이 됐다며 기뻐하신다", "학비 걱정을 덜어서 기쁘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학교 측이 무엇보다 고무된 것은, 올해 입학생이 늘었다는 점입니다. 지난해 봄 진학 희망자는 56명에 불과했지만, 장려금 정책 발표 이후에 실제 입학자는 66명으로 10명 늘었습니다. 물론 여전히 한 학년 3반 최소 정원인 81명에는 미치지 못합니다만.
 
이사시의 황당 장려금은 일본에서 다시금 논란을 불러 올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해 11월 황당 장려금 정책이 발표됐을 때, 야후 재팬 찬반 투표까지 벌어질 정도로 논란이 컸습니다. 찬반투표에 10만 명이 참가했습니다.

특히 '오기(尾木)마마'로 불리는 일본의 교육평론가이자 탤런트인 오기나오키 씨가 "위법은 아니라고해도 토할 것 같다"며 자신의 블로그에 강한 비판의 글을 남기면서, 찬반 논란은 더욱 뜨거워졌습니다.
일본 황당 장려금
- 일본 교육평론가이자 탤런트인 '오기마마' 오기 나오키 씨 -
 
반대 의견은, 교육과 세금이라는 측면에서 진지하게 제기됐습니다.

"도쿄대에 갈 정도의 수재는 결코 고향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지방살리기와 무관하다", "고향을 떠나 대도시에 진학하는 학생들에게 지역 주민들의 세금을 쓰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특히 황당 장려금 예산이 5,000만 엔에 이른다는 점을 두고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오기마마' 오기나오키 씨는 "5,000만 엔이면 교육환경을 더 좋게 만들 수 있다. 명문대 진학 장려금으로 쓰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고 비판했습니다. 또 상금을 위한 진학이 그 이후 학업에 대한 지속적인 동기부여로 이어질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교육적인 관점에서 비판이 이어졌습니다.

찬성 의견은 대체로 이렇습니다.

"장학금의 한 형태일 뿐이다. 뭐가 문제냐", "특별우대생이나 장학금 제도보다 오히려 적은 돈이 들어갈 것이다", "성적이 좋으면 게임기 사주겠다는 것과 비슷하다. 많은 부모들이 그렇게 하지 않는가?"

대학별 난이도에 따라 세분화하라는 장난기 가득한 의견도 많았습니다. 도쿄대 200만 엔, 교토대 150만 엔, 게이오나 와세다는 100만 엔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순위 매기기 좋아하는 일본적 정서에서 나온 말로 보입니다. 또 100만 엔은 부족하다며 아예 도쿄 시내에 아파트를 제공해서 부담없이 대학생활을 마칠 수 있도록 지원해줘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반대 의견을 의식해서인지, "장려금을 이원화하자. 도쿄대를 비롯한 대도시 진학생과 자기 고장의 국공립대학 진학생으로 나눠서 지원하자"는 식의 중재안을 내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이런 논란에도, 이사시와 오구치 고등학교는 '황당 장려금' 덕분에 입학생이 56명에서 66명으로 는 이상, 81명이 될 때까지는 장려금을 통한 학교 알리기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입시철이 다가오면 논란이 더 커지겠지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오지랖 넓게 일본의 '황당 장려금' 찬반 여부를 고민하자는 게 아닙니다. 지방 공립학교의 현주소와 지방 살리기, 현실의 욕망과 교육의 본령 등등 일본의 사례를 통해 우리를 비춰보자는 거죠.

대한민국의 공교육은 이미 무너졌고, 특히 지방 공립학교의 교육환경이나 학업성취도는 위험 수위입니다. 명문대 진학률로 학교 평가를 하는 것은 명백히 시대착오적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제대로 된 다른 기준'을 만들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대부분의 부모들은 사교육 시장에 자녀들을 맡기고 있죠. 황당하기로는, 대한민국의 입시위주 교육환경이 오구치 고등학교의 '도쿄대 장려금' 못지 않은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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