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도 메르스 바이러스(MERS-CoV)에 감염될까요?"
주변에서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기자이기 전에 기초의학을 전공한 수의사로서 저도 참 궁금했습니다. 사실, 솔직히 말하면, 궁금했다기보단 걱정됐단 표현이 더 적합할 거 같습니다. 만약, 반려동물이 메르스 바이러스에 감염된다면, 다음 감염 대상은 바로 그 동물들과 함께 생활하는 우리 사람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과연, 반려동물은 메르스 바이러스로부터 안전할까요?
● 반려동물 메르스 바이러스 감염에 대한 연구는 부족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반려동물과 메르스 바이러스 관계에 대해선 아직 구체적으로 밝혀진 게 없습니다. 메르스 바이러스는 지난 2012년 이집트 아인 샴스대 알리 자키 교수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처음 발견했습니다. 이후 미국 콜럼비아대 교수인 토마스 브리스 박사(Dr. Thomas Briese)가 낙타의 코에서 메르스 바이러스를 분리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들 연구결과를 토대로, 사람이 감염된 메르스는 낙타에서 왔다는 게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물론, 메르스 바이러스 발견 후 많은 후속연구가 잇따랐습니다. 하지만, 새로 생긴 변종 바이러스를 불과 2~3년 만에 모두 밝혀낸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실제로 어느 바이러스 전문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반려동물이 메르스 바이러스에 안전하냐는 질문에 대해 단정적으로 답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 '사기꾼' 밖에 없습니다."
● 코로나바이러스(Corono virus)의 동물 감염
그렇다고 참고할 연구 자료가 전혀 없는 건 아닙니다. 메르스 바이러스(MERS-CoV)는 코로나바이러스(Corona Virus)의 변종 중 하나입니다. 다행히(?) 이 코로나바이러스는 오랜 시간 사람과 동물에게 질병을 유발해왔기 때문에 이 바이러스에 대한 연구는 제법 많이 진행돼 왔습니다.
오랜 연구 끝에 학자들은 코로나바이러스는 사람을 비롯한 다양한 동물에 감염한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거기엔 반려동물인 개와 고양이도 포함돼 있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는 개에게는 장염(Canine Corona virus infection)을, 고양이에게 전염성 복막염(Feline Infectious Peritonitis) 유발합니다. 특히, 고양이 전염성 복막염은 치사율이 매우 높은 질병으로, 제때 치료하지 않으면 배와 가슴에 물이 차서 죽게 됩니다. 이밖에 소와 돼지, 닭과 같은 조류도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런 선행 연구를 근거로, 앞서 언급한 미국 컬럼비아대 브리스 교수는 박쥐와 낙타 이외 다른 동물도 메르스 바이러스 감염될 수 있단 가설을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지난해 5월, 영국 BBC와의 인터뷰에서 “낙타와 접촉한 빈도에 비례해 메르스 감염환자가 늘어나야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점에서 낙타 이외에 다른 동물(특히, 개나 고양이)에 의한 감염을 조사해 볼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 바이러스의 염기 서열에 따라 다양한 변종이 존재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사실은 코로나바이러스는 염기서열에 따라 여러 종이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지금까지 확인된 코로나바이러스는 크게 알파, 베타, 감마, 델타 4가지 형으로 나뉩니다. 앞서 설명한 ‘개 코로나 감염증’과 ‘고양이 전염성 복막염’을 일으키는 코로나바이러스는 모두 ‘알파형(Alpha)’에 속합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사람에게 감염해 문제를 일으키는 사스 바이러스(SARS-CoV)와 메르스 바이러스(MER-CoV)는 ‘베타형(Beta)’인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바이러스의 염기 서열이 다른 점을 볼 때 개와 고양이가 메르스 바이러스에 감염될 가능성이 낮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정하고 있습니다.
● 메르스 바이러스의 다른 동물 감염
앞서 설명해 드린 것처럼, 개와 고양이가 메르스 바이러스(MERS-CoV)에 감염될 확률은 낮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입니다. 그럼, 다른 동물은 어떨까요? 이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선 먼저 바이러스가 사람이나 동물 체내로 들어오는 과정을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바이러스는 ‘외피(Envelope)’로 불리는 막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바이러스가 체내에 들어와 자리를 잡으려면, 몸 안에선 이 막을 잡아줄 수용체가 필요합니다. 이를 전문용어로 ‘리셉터(Receptor)’라고 합니다. 몸 안에 들어온 바이러스가 이 리셉터에 붙는 과정을 ‘감염(infection)’이라고 합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을 드리면, 메르스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세포 표면 리셉터를 ‘human dipeptidy peptidase 4(hDPP4, CD26)’라고 부릅니다. 리셉터가 같거나 비슷하면 감염이 쉽게 일어나는데, 이 ‘DPP4’와 아미노산 서열이 같거나 유사한 동물로는 ‘히말라야 원숭이’로 불리는 ‘레서스원숭이(Rhesus macaque)’, 마모셋원숭이(marmoset), 낙타, 박쥐 등이 있습니다. 한마디로 이 동물들은 사람과 마찬가지로 이 메르스 바이러스에 감염되기가 상대적으로 쉽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메르스 바이러스에 쉽게 감염되지 않는 동물도 있습니다. 지난 4월 세계적 바이러스학회지 ‘Virology’에 실린 논문(Development of animal models against emerging coronaviruses: From SARS to MERS coronavirus)을 보면, 쥐(mouse)와 햄스터, 페럿(ferret) 등은 리셉터의 아미노산 서열이 달라 실험적으로 바이러스를 접종해도 감염되지 않는 것으로 화인됐습니다.
또, 말(Horse)도 메르스 바이러스에 감수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아직 말이 메르스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례는 보고되지 않았습니다. 이밖에 양과 소, 염소, 물소, 야생조류도 동물실험 결과 메르스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 변화무쌍한 코로나바이러스, 안심할 수는 없어
그렇다고 안심하긴 이릅니다. 메르스 바이러스와 유사한 염기서열을 가진 ‘사스 바이러스SARS-CoV)’는 사향고향이는 물론 개, 설치류에 감염한 사례가 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코로나바이러스는 한가닥으로 된 RNA 바이러스로, 이중나선으로 꼬여 있어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DNA 바이러스보다 더 잘 엉키고 그로 인해 새로운 ‘변종’이 나오기 쉽습니다. 더 많은 실험과 후속 연구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 사람과 동물, 그리고 생태계의 건강을 함께 생각하는 노력
우리는 세상을 ‘인간의 관점’에서 바라봅니다. 하지만, 생태계 전체를 놓고 보면, 사람도 그저 수많은 동물 가운데 한 종에 불과합니다. 우리의 과욕이 부른 생태계 파괴와 공장식 사육은 우리가 접하지 않았던 새로운 전염병을 불러들였습니다. 에이즈, 에볼라, 사스, 메르스... 어쩌면 우리가 만든 업(業, karma)일지도 모릅니다.
그런 점에서 최근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One Health(하나의 건강)’란 단어입니다. ‘One Health’는 사람과 동물, 생태계의 건강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개념으로, 인류의 보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사람, 동물, 생태계 전문가들이 힘을 합쳐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런 노력이 없다면, 메르스와 같은 ‘재앙’은 언제든 되풀이될 수 있습니다. 지구가 인류에게 던지는 경고의 메시지를 더 겸손한 마음으로 들어야겠습니다.
※ 취재과정에서 정규식 교수(경북대 수의과대학), 서상희 교수(충남대 수의과대학), 박봉균 교수(서울대 수의과대학), 김우주 교수(고려대 의과대학), 손준성 교수(경희대학교 의과대학) 이재갑 교수(한림대 강남성심병원), 트로이 서튼 박사(미국국립보건원), 알리 모하메드 자키 교수(이집트 아인 샴스 대학), 토마스 브리스 교수(미국 컬럼비아대학), 김재영 수의사의 자문과 연구 자료를 참고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