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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우크라이나, 리비아, 이란…그리고 북한?

김인기 기자

입력 : 2015.05.19 11:27|수정 : 2015.06.05 23:37

이란 핵협상 타결, 우리의 대비는?


최근 이란 핵 협상이 급진전을 이뤘습니다. P5+1(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 5개국+독일)은 이란과 오랫동안 협상한 끝에 4월 2일 협상을 타결했습니다. 이란의 하산 로하니 정권이 들어서면서 핵협상에 돌입한 지 1년 8개월 만의 일입니다. 물론 6월 30일까지 세부적인 문제에 대해 최종합의를 이뤄야한다는 전제가 붙어 있는 데다, 미국과 이란 양국의 보수파의 반발, 여기에 이스라엘 등 일부 중동 국가의 반대를 넘어서야 한다는 한계는 있지만 일단 세계는 이란 핵문제가 큰 진전을 이룬 것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잠정합의안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이란은 현재 가동 중인 1만 9천개의 원심분리기를 감축해 1세대 형 초기 모델인 6,140개만 남기기로 했습니다. 이란은 또 저농축우라늄 재고를 현재 1만kg에서 300kg으로 감축하고, 신규시설도 더는 건설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또 IAEA가 25년간 모든 핵시설을 정기적으로 사찰하면서 핵개발 활동은 감시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P5+1측은 IAEA가 이란이 합의안과 관련한 핵심 조치를 취했다는 점을 검증하는 대로 그동안 이란에 가했던 모든 제재를 해제하기로 했습니다.
이란 핵 협상 캡쳐
P5+1과 이란은 이런 잠정합의안을 가지고 5월 12일부터 본격적으로 협상을 시작했습니다. 한 달 남짓 동안 세부 협상을 마무리 짓고 6월 30일 타결을 발표하는 것으로 일단 정리된 상태입니다. 사우디나 이스라엘 등의 반발이 이어지면서 아마도 중간에 우여곡절은 있겠지만 일단 최종 협상이 결렬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핵 협상 타결 분위기는 벌써부터 이란 내부에서도 감지되고 있습니다. 보도에 따르면 이란 국민들 상당수가 협상 타결로 살기 좋아질 것으로 믿는다고 밝혔습니다. 실제로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분위기가 바뀌었습니다. 연합뉴스는 이란의 4월 분 원유 수출량이 3월에 비해 급증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이란의 ISNA통신에 따르면 4월 일일 평균 원유 수출량은 118만 배럴로 전달보다 50만 배럴(약 74%) 늘었습니다.

미국 연구기관인 민주주의수호재단(FDD) 마크 두보위츠 연구원은 ISNA에 "아직 제재가 유효하지만 이란의 원유 수출이 회복되리라는 데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분위기"라고 말했습니다. 이란은 2011년까지 하루 평균 215만 배럴의 원유를 수출했지만, 2012년 7월 미국의 국방수권법 시행으로 그해 153만 배럴, 2013년엔 100만 배럴로 수출량이 급감했습니다. 이달 초에 있었던 '제 20회 이란 국제 석유,가스, 석유화학 전시회'에도 한국을 포함한 29개국 6백여 개 업체 관계자들이 몰렸습니다. 이란이 제재에서 풀릴 것을 기대하는 움직임입니다.

이렇게 이란 핵협상이 타결로 가는 데에는 내외적인 압력과 필요가 모두 작용했습니다. 이란 내부에서는 오랜 경제 제재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 이에 대한 피로감이 작용하면서 반발이 일었고, 미국으로서는 중동 정책의 재검토, 이슬람국가(IS)에 대한 견제 필요성 등이 작용했습니다. 유럽으로서는 이란 핵의 직접 사정권에 들 수 있다는 점에서 불안을 덜어야 했습니다.

이란이 국제 사회의 요구에 따라 핵무기를 포기한다면 이는 남아공과 우크라이나, 리비아에 이은 4번째 사례가 됩니다. 남아공의 경우는 흑백분리정책을 포기하면서 주변국에서 국가안전을 보장받는 대가로 핵을 포기했기 때문에 상황이 조금 다릅니다. 핵 보유 자체가 버거웠던 우크라이나, 핵무기 때문에 강대국들의 강력한 압력과 제재를 받았던 리비아와 이란, 모두 핵 포기 대가로 경제적인 이득을 챙겼습니다. 여기에 일정 부분 정권의 안정도 보장받습니다.

후발 핵 개발 국가들의 공통점은 정권의 안정, 혹은 주변국에 맞서 국가 안보 측면에서 핵무기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북한도 이런 주장에서 예외가 아닙니다. 북한은 미국의 위협 때문에 핵무기가 필요하다고 강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그다지 설득력이 없습니다. 리비아와 이란의 경우를 보면 경제 제재를 받고 오랫동안 국민들이 고통을 겪다가 결국 경제적 보상을 받고 핵을 포기하는 수순을 밟았습니다.

이란 핵협상이 타결되면 곧바로 세계의 눈은 북한 핵으로 쏠릴 것입니다. 지금은 미국이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지만 오바마 정권 이후 미국의 차기 정권은 누가 들어서든 북한과 핵협상을 시작할 수 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다만 공화당 정권이냐, 민주당 정권이냐에 따라서 협상의 강도는 차이날 수 있겠지요. 여기에 6자회담을 주도하고 있는 중국은 여전히 6자회담 틀 유지를 주장할 것입니다.

결국 핵 협상에서는 당근을 어느 정도 주느냐가 관건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최근 북한을 다녀온 박한식 미국 조지아대 석좌교수는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북한은 핵무기를 양보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한국이나 미국에 경제적 지원을 요구하고 그런 흥정이 성사되면 지금 가지고 있는 핵무기를 포기할 거란 얘기입니다"라고 중앙일보와 회견에서 말했습니다.(중앙일보,5.13) 북한 사정에 정통한 박 교수는 말은 북한도 어느 정도는 핵무기를 협상의 대상으로 삼을 의사가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란 북한 캡쳐_6
그런데 북한의 태도는 여전히 모호합니다. 전례를 보면 북한이 적극적으로 협상에 나서기에는 불안한 면이 있습니다. 부다페스트 각서를 통해 국가 안보와 영토 주권을 보장받았던 우크라이나는 바로 각서의 당사국 중 하나인 러시아에게 크림반도를 빼앗겼습니다. 정권 안정이 중요했던 리비아의 카다피는 이후 혁명으로 목숨까지 잃었습니다. 이란의 경우 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이런 사정을 뻔히 알고 있는 북한이 순순히 핵을 포기하리라고는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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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북한은 최근 잠수함에서 핵미사일을 발사하는 상황을 가정한 SLBM 시험발사를 공개했습니다. 이것이 성공했든 아니면 조작된 것이든 북한의 의도는 명확합니다. 미국을 겨냥하겠다는 의지입니다. 핵무기 협상에 나설 경우 북한은 그동안 주장한 대로 미국과 직접 대화를 요구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북핵 문제를 오랫동안 다뤄온 스티븐 보즈워스 전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는 '만약 미국이 이란 핵 협상 타결방식과 유사하게 북한과 합의할 수 있다면 그런 일은 차기 행정부와 차기 대통령을 기다려야 할 것이다. 그때까지 충분한 시간이 남아있길 바랄 뿐이다'라고 썼습니다.(동아일보 4.10)

김인기 논설위원 대우리에게도 선택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란 핵협상이 타결된 뒤 이어질 북한과 핵협상에 얼마나 우리가 주도권을 가질 수 있을 지, 어쩌면 우리는 협상에 끼지도 못하는 처지가 될 수도 있습니다. 반면 적극적으로 협상을 주도해 우리의 안전을 최대한 확보하는 식으로 협상을 마무리 지을 방안도 있을 것입니다. 과거 KEDO 합의처럼 협상의 주도권은 쥐지 못하다가 뒤늦게 경제적 부담만 지는 방식의 협상이 진행된다면 내부적으로 상당한 반발이 나올 것입니다. 6자회담 틀을 다시 가져갈 지 아니면 북미 협상을 지켜볼 지 우리도 협상전략을 전반적으로 새로 가다듬을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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