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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플러스] 외교의 실종?…정치권 엇박자가 문제

안현모 기자

입력 : 2015.05.12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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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국의 외교가 국내에서 집중포화를 맞고 있습니다.

비판 기사가 쏟아지고 국회에서는 외교장관을 바꿔야 한다는 요구까지 공개적으로 나온 상황인데요, 과연 그 비난들이 모두 정당한 것인지 문준모 기자가 취재파일을 통해 하나하나 따져봤습니다.

최근 우리나라의 외교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은 일본발입니다.

이른바 미국과 일본의 신밀월시대가 열리는데 우리가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하고 있다는 게 골자죠.

하지만 일본은 1960년대부터 미국이 주도하는 브레튼우즈 체제의 강력한 파트너였고 투자를 통해 ADB를 주도해온 데다 미국의 전쟁에도 상당한 자금과 인력을 지원해 왔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요새는 워싱턴에서 대규모 예산을 투입해 로비까지 벌이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이번 아베 총리의 방미 성과는 그동안 들인 노력에 대한 결과물일 따름인 겁니다.

이에 반해 우리의 대미 투자력과 로비력은 턱없이 부족합니다.

이런 격차를 감안한다면 미 의회 내에서 아베 연설에 반대하는 의견이 나온 점이나 세계 학자들이 위안부 문제를 사죄하라고 촉구한 점은 오히려 우리가 선전한 건지도 모릅니다.

무엇보다 우리를 둘러싼 외교 지형 자체가 대등하거나 공평한 장기판이 아니라, 기울어진 운동장과 같습니다.

엄연한 국력의 차이가 존재하는 겁니다.

어쩌면 진짜 문제는 외교가 아니라 내치에서 기인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드 도입 논란, 일본 강제 징용 시설 세계유산 등재건, 그리고 독도 입도 지원시설 건립 건 모두 도마 위에 올랐지만, 알고 보면 정치권의 엇박자에서 비롯된 사례이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당·청 간 조율을 하고 공무원들의 기강을 잡아야 할 국무총리도 2주가 넘도록 공석으로 남아 있습니다.

문 기자는 수신제가 치국평천하의 지혜를 강조했습니다.

정부와 국회 정치가 먼저 바로 선다면 외교도 자연스럽게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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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연금개혁안의 처리가 또 좌절됐습니다.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 표기 문제를 두고 여야가 이견을 좁히지 못하자 이해 당사자가 합의한 최초의 개혁이라는 거창한 수식어도 무색해진 건데요, 소득대체율 인상이 맞냐 안 맞냐를 떠나서 복지부의 태도에서 아쉬운 점을 이경원 기자가 취재파일을 통해 지적했습니다.

보수든 진보든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을 거래의 대상으로만 접근하는 건 매한가지입니다.

그렇지만 국민연금의 핵심은 노후 소득 보장뿐 아니라 소득 재분배라는 기능에 있습니다.

연금을 받아갈 때 최근 3년간 가입자들의 평균 소득을 고려해서 소득이 높은 사람은 연금을 좀 덜 받고 소득이 낮은 사람은 연금을 좀 더 받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월급이 500만 원인 사람은 월급이 100만 원인 사람보다 월급이 5배 많지만, 나중에 받아가는 연금은 각각 140만 원과 60만 원으로 격차가 2.3배 정도로 줄어듭니다.

한마디로 국민연금은 받은 만큼 돌려준다는 시장 논리가 아니라 가난한 사람의 은퇴 이후 생활을 걱정하는 복지 논리가 중심에 있는 겁니다.

여기서 소득대체율을 올린다는 건 한 편으로는 소득이 낮은 사람이 상대적으로 더 많이 챙겨가게 된단 걸 의미하지만, 동시에 개개인이 내는 보험료도 덩달아 오르기 때문에 연금 장기 체납자들이나 영세 사업주들을 결국 국민연금 체계 밖으로 쫓아내서 소득 재분배의 혜택조차 받지 못하는 이들을 양산할 수도 있습니다.

무상급식, 무상보육에서 익숙히 봐왔던 보편적 복지냐 선별적 복지냐의 논쟁과 맞닿아 있는 겁니다.

그런데 국민 복지를 책임지는 복지부는 이 사안을 너무 기술적으로, 재정적으로만 대함으로써 스스로를 복지 논란에서 소외시키고 존재 이유를 깎아내리고 있습니다.

이 기자는 돈 걱정은 일단 기획재정부에서 해 줄 거라며 복지부는 돈보다는 철학부터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꼬집었습니다.

그게 바로 복지부의 존립 목표고 그래야 논의도 좀 더 건강해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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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는 차에 치여 죽어가는 아이를 본체만체하고 시장 바닥에 넘어져 있는 어르신도 그냥 피해서 지나가는 국민들의 무정한 태도가 화제가 되곤 하는데요, 역으로 선의로 누군가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가 되려 봉변을 당하는 일도 드물지 않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상욱 특파원이 취재파일을 통해 전했습니다.

얼마 전 안후이 성 수청현의 한 대로에서 한 할머니가 뼈를 크게 다쳐 병원으로 옮겨졌습니다.

할머니는 길을 건너려는데 자전거 한 대가 빠른 속도로 다가와 자신을 쳤다고 말했는데요, 가해자로 지목된 학생의 이야기는 전혀 달랐습니다.

천천히 자전거를 타고 등교를 하는데 할머니가 길에 쓰러져 있는 게 보여서 자전거를 세우고 할머니를 일으켜 드린 뒤에 인도 쪽에 앉혀 드렸다는 겁니다.

양쪽의 주장이 엇갈리는 가운데, 당시 현장을 지났던 목격자는 할머니가 다가오는 자전거를 보자 깜짝 놀라며 제풀에 넘어졌다고 진술했습니다.

할머니는 그제 서야 실토했습니다.

자전거랑 충돌하진 않았지만, 치료비가 180만 원가량 나와 배상을 받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고 말입니다.

사실 이렇게 억울하게 누명을 쓰는 사건이 잇따르자 중국의 위생부에서는 4년 전 노인을 부축하는 방법을 담은 지침서를 발간하기도 했습니다.

나중에 딴소리를 들을 수 있으니 무턱대고 돕지 말고 의식이 있는지 등을 먼저 물은 뒤에 대처하라는 내용입니다.

오직 살아남는 것만이 최고의 미덕이라 여기는 이런 국민성은 아마도 중국 근대사의 질곡이 낳은 슬픈 유산일 겁니다.

하지만 요즘 젊은 세대의 인식은 더 상식적인가 봅니다.

앞서 할머니에게 가해자로 몰렸던 그 중학생은 무고죄로 고소를 할 수도 있었지만, 할머니의 딱한 처지를 알게 되자 일가친지로부터 치료비를 모금해 성금을 전달했다고 합니다.

이런 젊은이들이 나중에 주류를 이룬다면 죽음의 위기에 처한 사람을 구하지 않고 외면한다는 사자성어, 견사불구는 앞으로 무협지에서나 볼 수 있는 옛말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