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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합동으로 6·25 전사자 유해 1구 발굴

입력 : 2015.05.07 17:00


땅속에서 60년을 훨씬 넘게 묻혀있다 모습을 드러낸 인골을 향해 한국과 미국의 전문가들은 하얀 국화꽃을 바치고 엄숙히 묵념을 했다.

그런 다음 조그만 뼛조각 하나라도 빠뜨리지 않도록 조심스레 수습을 시작했다.

6·25 전사자 유해를 공동 발굴중인 한국과 미국의 전문가들이 7일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임곡리 임곡마을 뒤산에서 유해 1구를 발굴했다.

발굴을 위해 파놓은 가로 2m, 세로 2m, 깊이 1.5m가량의 구덩이에는 두개골부터 양 다리뼈까지 있는 유골이 반듯하게 누워있었다.

녹슨 M1 소총 탄피, 수류탄 파편 등이 함께 발견된 점으로 미뤄 일단 6·25때 숨진 군인으로 추정됐다.

장유량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중앙감식소장은 "토압에 눌려 상태는 좋지 않지만 두개골과 치아까지 있는 유골을 확인했다"며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유류품은 나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곳에서 유해를 찾은데는 지역주민의 제보가 큰 힘이 됐다.

마을 토박이인 황규익(58)씨는 지난해 9월 6·25 전쟁때 전사한 미군이 마을 뒷산에 묻혀있다는 제보를 군당국에 했다.

그는 "어렸을때 마을 어른들로부터 곡괭이로 땅을 파서 뒷산에 죽은 미군을 묻었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고 했다.

당시 매장한 미군 시신만 5~6구에 달한다고 했다.

임곡마을은 1950년 8월 미군 제25사단장 윌리엄 킨 소장이 이끈 '킨 특수임무부대'와 북한군 6사단이 치열하게 싸운 곳이다.

당시 미군은 낙동강 방어선까지 밀고 내려온 북한군을 막고자 25사단에 해병 1여단, 제5연대 전투단 등을 배속해 '킨 특수임무부대'를 편성해 반격작전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황 씨는 어렸을때 동네 밭이나 야산 등에서 탄피나 각종 개인 군장비를 어렵지 않게 주울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황 씨의 진술을 토대로 미국 국방부 합동포로 및 실종자 확인기관(DPAA) 한국파견팀(KFE)과 함께 그때부터 현장조사를 벌여 유해를 발굴하는 성과를 냈다.

통상 제보로 유해를 발굴할 확률은 10%에 불과한데도 이번에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고 발굴에 성공했다.

강형석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조사담당관은 "수십년동안 지형이 변했고 사람의 기억력에 한계가 있어 제보한 곳을 파봐도 유해가 나올 확률이 낮다"고 말했다.

한미 양측은 발굴한 유해를 수습해 일단 중앙감식소로 옮길 예정이다.

이곳에서 다양한 방법을 통해 국군의 유해인지, 미군의 유해인지 정밀감식할 예정이다.

미국 DPAA 한국파견팀 페두지 대위는 "6·25 전쟁에서 전사한 미군 5만4천여명중 아직도 8천여명의 유해를 찾지 못했다"며 "이번 발굴을 계기로 한미 공동조사와 발굴이 가속화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