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가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이하 BIFF) 지원금을 절반 가까이 삭감했습니다. 지난달 30일 영진위 심사위원 일동 명의로 BIFF 조직위에 공식 통보한 내용인데요, 2015년 글로벌 국제영화제 지원 내역을 보면 지원액이 8억 원으로 결정됐습니다. 지난해 지원금 14억 5천만 원보다 무려 6억 5천만 원이 줄어들었으니 비율로는 45% 가량이 삭감된 겁니다.
영진위의 삭감 이유는 이렇습니다. 글로벌 국제영화제 육성지원 사업은 이미 세계적인 국제영화제로서 위상을 갖춘 영화제 보다는 국제영화제로 도약하려는 영화제를 중심으로 지원하는 것이 사업 취지에 맞다 는 겁니다. 또 부산영화제는 이미 명실 공히 글로벌 영화제로 위상을 점유하고 있어 자생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게 심사위원들의다수 견해라고 밝혔습니다.
● 일방적 통보에 BIFF 관계자 당혹…"20주년 행사 어떻게 치르나" 당혹
BIFF는 올해로 20주년을 맞습니다. 당연히 성년의 역사에 걸맞게 대대적인 행사를 계획했습니다. 세계적 영화제로서의 위상 정립에 나서겠다는 포부도 밝혔습니다. 지난해 BIFF의 총 예산은 124억여 원 규모. 이 가운데 시비 60억 5천만 원과 영진위 지원금 14억 5천만 원을 제외한 48억여 원을 기업 협찬과 티켓 판매 수익금 등으로 충당했습니다. 20년이 다 돼 가지만 여전히 자립기반은 취약한 구조입니다. 더구나 올해는 20주년 행사 때문에 예산이 더 필요한 상황입니다.
그런데 사전 아무런 통보나 협의 없이 대규모 예산 삭감을 일방적으로 통보 받은 겁니다. 조직위 관계자들은 그야말로 넋을 잃은 표정입니다. 삭감된 6억 5천만 원은 결국 BIFF가 기업협찬이나 티켓 판매 등으로 충당해야 합니다. 하지만 요즘 같은 불경기에 더구나 지역의 취약한 경제 상황으로 볼 때 기업 협찬을 이끌어 내기란 사실상 한계가 크다는 지적입니다. 결국 할 수 있는 방안은 20주년 사업 규모를 축소하고 영화제 초청 대상 인사를 줄이는 등 허리띠를 졸라 맬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 자생력 강화?…세계적 영화제는 정부 지원 늘리는 추세
영진위는 BIFF의 자생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물론 ‘자생력 강화’는 영화제의 지속 가능한 유지를 위한 핵심과제입니다. 역사가 오래된 세계적인 영화제도 자생력 강화는 영원한 목표입니다. 하지만 어느 영화제든 정부지원을 다 받고 있고 지원규모로 BIFF 보다 훨씬 많습니다. 세계 3대 영화제의 하나로 69년의 역사를 가진 ‘칸 국제영화제’의 경우 총예산 326억 원 가운데 정부 지원금은 48억 원으로 14.8%입니다.
역시 세계 3대 영화제의 하나로 64년의 역사를 가진 ‘베를린 영화제’는 전체 예산 265억 원 가운데 정부지원금은 78억 원으로 29.5% 나 됩니다. BIFF의 경우 정부지원금은 6.5%에도 미치지 않는 것과 비교하면 터무니없이 낮은 수준이죠. 가까운 이웃인 ‘도쿄 영화제’를 보죠. 전체예산은 약 99억 원 규모인데데, 정부지원금이 46억 원으로 46.4%의 비중을 차지합니다.
특히 주목해 봐야 할 영화제는 ‘상하이 영화제’입니다.중국은 아시아 대표적 영화제인 BIFF를 따라잡기 위해 지난해 900억 원의 예산을 쏟아 부은데 이어 올해는 투자 규모가 1200억 원 정도라고 합니다. 이 예산은 모두 정부 차원의 지원입니다. BIFF가 뜨면서 도쿄영화제가 죽었듯 엄청난 물량공세를 펴고 있는 상하이 영화제가 뜨면 BIFF의 위상은 큰 타격을 받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전 세계 한류 열풍의 킬러 컨텐츠 (핵심컨텐츠) 중 하나로, 우리 나라를 대표하는 국가브랜드의 일부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자생력 운운하며 그것도 사전 아무런 배경 설명도 없이 절반에 가까운 예산을 싹둑 자른 영진위의 처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자생력 강화는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은 아닐진대 영진위의 태도는 뭔가 불순한 의도가 보입니다.
● 영진위와 감사원, 부산시의 BIFF 길들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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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제 19회 BIFF 가 10월 1일부터 10일까지 끝난 뒤 11월부터 부산시의 행정지도 감사가 시작됐습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감사원 감사가 진행됐습니다. 올 들어 1월부터는 2차 감사원 감사가 시작 됐습니다. 장장 4개월에 걸친 전 방위 감사 끝에 지난 4월 말 종결됐습니다. 전례가 없던 일입니다. BIFF 조직위 관계자들은 6개월에 걸친 감사에 거의 진이 빠질 정도였다고 합니다. 이 와중에 부산시는 이용관 집행위원장의 사퇴를 요구해 왔습니다.
결국 부산시와 BIFF는 지난 2월 ‘공동집행 위원장제’를 합의해 일단 갈등은 봉합됐습니다. 부산시는 올해부터 시 지원 예산도 매달 타 쓰도록 분할지원 방침으로 바꿨습니다. 2차례에 걸친 감사원의 감사 결과는 다음 달 보고서 형식으로 나올 예정입니다. 결과 보고서가 나와 봐야 하겠지만 큰 지적 사항은 없는 모양입니다.
전임 초대 김동호 위원장이 그랬듯이 이용관 위원장도 돈 문제를 포함해 자기관리가 철저하기로 유명한 분입니다. 아무리 가까운 지인과 골프를 치더라도 자기가 계산해야 할 비용은 철저히 계산하고 개인적으로 술을 살 때도 절대 공금을 이용하지 않고 자비로 부담하기로 유명합니다. 만약 감사가 위원장과 조직위의 비리를 노린 표적 감사라면 6개월간 이를 잡듯 뒤져도 큰 기대를 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 숨은 그림 찾기…다이빙 벨 상영에 괘씸죄 적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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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진위와 감사원 , 부산시의 전 방위 압박에 대해 영화계는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 중심에 지난해 영화제 기간 중에 상영된 ‘다이빙 벨’ 사태가 자리 잡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정부와 부산시는 ‘다이빙 벨’ 상영을 하지 말도록 종용했습니다. BIFF 조직위는 프로그래머들의 회의 결과 상영 결정이 됐기 때문에 번복은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했죠.
영화제가 끝난 뒤 영화계에서는 “정부가 BIFF에 대해 손을 볼 것”이란 얘기가 공공연히 회자되기도 했습니다. 또 지원금을 축소하고 집행위원장 사퇴와 신임 집행부 구성 등의 예기도 끊임없이 흘러 나왔습니다. 그 결과는 놀라울 정도로 현실의 상황과 맞아 떨어지고 있습니다. 우연의 일치일까요?
● BIFF…영화인들과 영화 팬들이 손발로 뛰어 만든 땀의 결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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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국제영화제가 20년도 안 된 짧은 기간에 저 예산으로 아시아를 대표하는 축제영화제로 성장했다는 평가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겁니다. 이러한 성공의 배경에는 김동호 초대집행위원장을 비롯해 이용관 현 집행위원장과 프로그래머 등 수많은 조직위 관계자, 안성기, 강수연 등 많은 영화인들의 자발적이고 헌신적인 노력과 봉사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또 부산시민과 전국의 수많은 영화계 종사자와 영화팬들의 열성과 지지가 뒷받침 했고요. BIFF를 찾는 많은 외국 영화인들이 BIFF의 열기와 애정에 감탄하는 것도 돈이 아닌 열정을 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반문해 봅니다. 영진위와 감사원 부산시는 BIFF의 어떤 점을 보고 이런 행동을 하는 걸까요? 박근혜 대통령도 기회 있을 때마다 ‘창조 경제’를 이야기 합니다. 창조 경제의 핵심키워드로 ‘문화 융성’을 꼽습니다. 돈으로 코를 꿰고 감사로 발목 잡는 듯한 이러한 행태가 문화융성에 걸 맞는 처사일까요? 국제 영화제를 키우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지만 지속 가능한 영화제로 유지 발전시키기는 건 더 어렵습니다. 이제 성년의 길에 들어서는 BIFF에 대해 ‘자생력 강화를 내세우며 돌연 지원을 축소하는 정부의 처사는 순수해 보이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