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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범연의 썸풋볼] 악마는 초록색을 입는다

입력 : 2015.04.24 13:21|수정 : 2015.04.24 13:21


푸르다 푸르다 해도 이 정도로 푸를 수는 없다. '환경'이라는 화두가 우리 삶 깊숙히 들어왔다고 해도 스포츠 분야에서 이 정도로 진지하게 고민하는 일은 없었다.

'포레스트 그린 로버스'
이름부터 푸르다. 마치 안면도 휴양림 한가운데에서 녹색에 둘러싸여 삼림욕을 하는 듯한 아우라를 뽐내는 이름을 가진 잉글랜드의 이 팀은 아직 세미 프로레벨에 불과한 컨퍼런스 리그 (5부)소속. 1889년에 창단해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포레스트 그린이 변화하기 시작한 것은 친환경 에너지 기업을 소유한 데일 빈스가 팀을 인수하면서 부터다. 팀의 재정난을 계기로 지분을 넘겨받은 빈스가 온갖 '초록색' 테러를 시작한 2010년부터 포레스트 그린은 팬들을 놀라게 하기 시작했다.

지붕을 태양열 패널로 덮었고, 40m 크기의 풍력 발전 시설까지는 애교 수준이다. 포레스트 그린의 잔디는 'Mowbot'이라는 이름의 기계가 GPS를 이용해 자동으로 깎는다. 이 기계는 태양광 전지로 작동하며, 유기농 부엽토를 직접 만들어 내기도 한다. 잔디에는 인공적으로 만들어 진 화학 비료나 농약은 전혀 사용되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 그들의 경기를 밝혀 주는 것도 역시 친환경 LED조명이다.

나아가 빈스가 소유한 에너지 기업 에코트리시티(Ecotricity)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출신의 게리 네빌과 손을 잡고 'Sustainability in Sport'라는 재단을 만들어 스포츠 클럽들의 시설 디자인에 자문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포레스트 그린의 선수들에게는 친환경적으로 설계된 숙소가 주어지며 원정 길에 나서는 스태프 중 일부에겐 전기 자동차가 제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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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스의 초록색 만행(?)은 이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처음에는 선수들의 식단에서 고기 메뉴를 제외했다. 물론 '선수들의 경기력'을 위한다는 이유를 댔고, 이 다음 단계를 예상한 반발은 있을 리 없었다. 그러나 우린 그렇게 만들어 진 작은 틈을 권력자들이 어떻게 이용하는지 역사 속에서 배우고도, 기억에서 쉽게 지워 버린다.

어떻게 이런 일이. 빈스는 경기를 보러온 팬들에게 판매되는 음식에서도 모든 고기를 없애 버렸다. 영국 사람들이 사랑해 마지 않는 미트 파이는 사라졌고, 햄버거와 소세지는 호박과 당근으로 대체되었다. 그렇게 메탄 가스 생성의 주범은 포레스트 그린의 선반에서 치워 졌다.

권력자의 횡포에도 불구하고 포레스트 그린의 미래는 밝다. 한때 최악의 재정난에 직면했던 클럽의 지갑은 안정적이 되었고, 팬의 숫자는 오히려 25%가 증가했다고 한다.

팀의 경기력도 향상되고 있다. 빈스가 인수하기 전 포레스트 그린은 강등될 예정이었지만, 라이벌 관계인 샐리스버리가 파산하며 강등되는 바람에 대신 잔류하게 된 과거가 있던 로버스는 이제 당당히 승격 플레이오프를 노리는 팀이 되었다. 10년 안에 챔피언쉽(2부) 승격이 가능하다는 분석 결과를 받아 든 빈스의 결단력과 화끈한 지원이 이뤄 낸 결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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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레스트 그린 로버스의 별명은 '그린 데블스(초록 악마)'이다. 어떻게 한쪽 손에 맥주를 들고 있는 팬들에게서 반대쪽 손의 '고기'를 뺏을 생각을 할 수 있는지 경악스러운 선택을 한 구단주를 원망할 법도 한 팬들의 반응은 의외로 큰 동요가 없다. 뉴욕 타임즈의 인터뷰에 따르면 '자녀에게 전기 자동차를 사줘야겠다'며 오히려 더 친밀함을 느끼는 경우도 나타나고 있는 것.

적자를 면하기 바쁘거나, 당장의 성적에 휘둘리면서 환경이라는 화두에 응답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대부분인 프로 스포츠에서 악랄한(!) 구단주를 선두로 한 초록색 악마들은 신선한 반향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그들의 도전, 그저 꿈 같은 일, 혹은 남의 일로만 치부할 수준은 아닌 듯 하다.

*이 글은 포레스트 그린 로버스 홈페이지와 뉴욕 타임즈, 인디펜던트의 기사를 참고로 쓰여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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