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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이완구, 너무 먼 곳에 친 방어벽…스스로를 옥죄다

최대식 기자

입력 : 2015.04.22 09:17|수정 : 2015.04.22 09:17


이완구 국무총리가 사실상 최단명 총리라는 불명예를 안고 곧 자리에서 물러납니다. 우여곡절 끝에 청문회를 통과하긴 했지만 불과 보름 전까지만 해도 이 총리는 검증 과정의 내상을 상당 부분 털어내는 듯 보였습니다. 집권당 원내대표로서 쌓은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고위 당정청 회의를 활성화시켰고 1년에 두 차례 평가를 통해 성과가 부진한 장관에 대해 해임건의권을 행사하겠다며 느슨했던 공직 기강을 다잡는데도 주력했습니다. 또 대국민 담화를 통해 부정부패에 대한 척결 의지도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여기까지였습니다. 그 자신이 해임건의의 대상이 될 줄 이 총리는 몰랐을 겁니다. 정치권력의 비정함과 무상함을 많이 지켜보긴 했지만 이번처럼 극적인 경우도 드문 것 같습니다.

지난 10일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가 공개된 이후 이 총리의 대응을 살펴보겠습니다. 리스트 공개 직후 이 총리 측으로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과의 관계를 묻는 기자들의 전화가 빗발쳤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당초 비서실에서는 "리스트에 이름만 있는 것 가지고 총리에게 당장 물어볼 수가 없다. 하지만 같은 충청 출신이시니 총리님도 잘 아실 것이다"고 했다가 최종 이 총리와 조율을 거쳐 다음과 같은 공식입장을 밝힙니다. "국회의원을 1년 같이한 인연 외에 특별한 인연은 없다. 최근 검찰 수사와 총리담화가 관련이 있는 것 아니냐는 오해를 성 전 회장이 하고 있다는 주변의 전화를 총리가 받은 적은 있다. 검찰 수사는 총리 취임 이전부터 진행돼 온 것임을 밝힌다. 그 외에 고인과 아무련 관련이 없다." 이 총리의 대응은 출발부터 꼬였습니다. 

사람의 관계라는 게 좋았다가 불편해졌다를 반복하는 것이긴 합니다만 이 총리 주변과 성 전 회장 유족들의 전언을 종합하면 두 사람이 인간적으로 친밀했다고 보기는 좀 어렵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알려진 (물론 이 총리도 인정한) 사실들을 하나 하나 따져보면 '국회의원 1년 같이한 인연 외에 특별한 인연은 없다'는 해명을 납득하기는 어렵습니다. 두 사람은 기록상으로 지난 20개월간 23번 만났거나 만날 예정이었으며 지난 1년간 217회나 통화를 했거나 통화를 시도했습니다. 두 사람이 같은 충청 출신 현역 의원이었고 성 전 회장이 의원직을 상실하기 전 새누리당의 충남도당위원장을 맡아 6.4 지방선거에 관여했으며 이 총리가 지난해 5월부터 새누리당의 원내대표였다는 점을 저희같은 정치부 기자가 아닌 일반인들이 감안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슬라이드 포토]
취재 등을 통해 공사석에서 만나본 이 총리의 성격은 좀 불같은 면이 있습니다. 약간의 결벽증도 있어 보입니다. 다른 것도 아닌 '돈'을 받았다는 의혹을 받는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서 이 총리의 방어 본능은 당연히 작용했을 거라 여겨집니다. 이 총리는 자신의 방어벽을 가까운 곳이 아닌 아주 먼 곳에 쳤습니다. '국회의원 1년 같이한 인연 외에 특별한 인연은 없다'는 식으로 말이죠. 그러다보니 성 전 회장의 일정표와 통화기록 등이 속속 공개되면서 이 총리는 궁지에 몰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돈을 받은 증거가 나오면 목숨까지 내놓겠다고 한 총리의 말도 신뢰를 얻지 못하는 지경에까지 이른 겁니다.

오히려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였으며 도당 위원장과 의원, 또는 원내대표로서 국회 의원회관이나 원내대표실에서 자주 만났고 통화도 했다. 하지만 인간적으로 가깝지는 않았으며 더더구나 돈을 받지는 않았다"는 식으로 대응을 했다면 조금은 수월했을지 모르겠습니다. 또 같은 날 '검찰 수사와 총리담화가 관련이 있는 것 아니냐는 주변의 전화를 총리가 받은 적 있다'고 했지만 이 부분은 불과 사흘 뒤 이 총리가 국회 본회의 대정부질문 답변에서 "3월 22일경 고인으로부터 처음이자 마지막 전화를 받았다"고 밝히면서 스스로를 옥죄고 맙니다. 

이 총리의 한 측근은 최근 이 총리를 두고 '불판 위에 올려져 굽히고 있는 상황'이라고 표현을 했습니다. 이 총리는 지난 주말 이미 4·29 재보선과 국정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 등을 감안해 자진사퇴를 고려했다고 합니다. 양심과 명예를 지키기 위해 총리직에 연연해하지 않겠다는 뜻을 선제적으로 밝히는 게 좋다는 보좌진들의 조언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난 16일 박근혜 대통령이 중남미 순방에서 돌아와 총리 거취 문제를 결정짓겠다고 한 만큼 박 대통령이 자신의 사의를 수용하지 않는 한 대외적으로 이를 공표할 상황은 아니었다는 게 이 총리 측의 설명입니다. 차기 충청권 대표 주자로 질주하던 이 총리가 20년 정치 역정의 최대 고비를 맞았다는 데는 그의 모든 측근들이 동의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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