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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막눈의 꽃제비 北 청년, 탈북 11년 만에 영국 유학길

입력 : 2015.04.06 05:47|수정 : 2015.04.06 07:50


북한 함경북도 청진 출신인 김성렬(30)씨는 영국 셰필드대 국제관계학 대학원 입학허가서를 들고 상기된 표정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지난달 입학허가서를 받아 올가을 3년 예정의 유학길에 오르는 김 씨가 털어놓은 인생역정은 한마디로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김 씨는 1990년대 식량난에 떠밀려 음식을 구걸하며 방랑하는 북한 청소년을 뜻하는 '꽃제비' 생활을 했습니다.

1주일 동안 오직 물만 먹고 지낼 때에는 '이러다간 굶어 죽을 수 있다'는 공포에 시달렸습니다.

"여기서 굶어 죽느니 차라리 떠나서 죽겠다고 결심했죠." 1997년 3월 김 씨는 가족과 함께 살얼음이 언 두만강을 건너 첫 탈북을 감행했습니다.

중국 옌볜과 허베이 성을 떠돌아다니며 노동 착취를 당하던 김 씨는 3년 만에 공안에 붙잡혀 북송돼 공개처형의 위기에 처하기도 했습니다.

이후에도 두 차례 더 탈북을 시도한 김 씨는 우여곡절 끝에 2001년 중국 톈진 국수공장에서 일자리를 얻어 중국 땅에 정착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일단 육체적인 곤궁에서 벗어나자 정신적인 목마름이 끓어 올랐습니다.

"배우지 못해 글을 못 읽었어요. 미래가 보이지 않던 어느 날 밤 라디오를 틀어 이리저리 주파수를 맞추다 보니 한국 라디오가 잡힌 거예요. '한국에 오면 탈북자에게 교육 기회를 준다'는 내용이었는데 '아! 이거다' 싶었던 거죠." 탈북 시도 7년 만인 2004년 9월 김 씨는 19살의 나이로 제3국을 거쳐 한국으로 왔습니다.

입국 후 김 씨는 화선지에 먹이 스며들 듯 공부에만 매진하며 지식을 흡수했습니다.

불과 1년 3개월 만에 초·중·고 검정고시를 통과했고, 2007년에는 한동대에 입학했습니다.

꿈에 그리던 대학 교정에 섰을 때 김 씨는 두려운 감정이 앞섰다고 했습니다.

바로 영어 탓이었습니다.

"첫 수업에서 원어민 교사가 영어로 '어떤 음악을 좋아하느냐'고 물었는데 전 아무런 답변을 못했죠. 다른 학생들이 나만 쳐다보는 것 같아 도살장에 끌려온 처참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김 씨는 1학년을 마치고 휴학하고서는 영어에 매달렸습니다.

간절함이 통했는지 운 좋게 2009년부터 한 종교단체의 후원으로 미국 등지에서 영어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2013년에는 파고다아카데미와 우양재단이 개최한 탈북청년 영어 말하기 대회에서 대상의 영예를 차지하기까지 했습니다.

영어에 자신감이 붙으면서 김 씨는 점차 미래에 대한 꿈을 구체화했습니다.

통일 뒤 남북뿐 아니라 동북아를 아우르는 전문가로 성장해 북한에 있는 재능있는 젊은이들을 글로벌 인재로 양성하는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힘을 보태고 싶다는 포부를 김 씨는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를 위해 국제기구에 들어가 정책을 입안하는 등 실무 경험을 쌓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김 씨는 작년부터 본격적으로 해외 유학을 준비했습니다.

김 씨는 지난달 영국 글래스고우대학과 셰필드대학의 입학허가서를 받았고, 국제관계학 권위자가 많은 셰필드대학을 선택했습니다.

입학을 앞둔 김 씨에게 남은 걱정은 경제적인 문제입니다.

1년에 4천800만 원에 달하는 학비와 생활비를 당장 마련할 수 없어 후원자를 구하고 있지만 쉽지 않은 상황이라 유학비 대출도 알아보고 있습니다.

새로운 출발점에서 선 김 씨는 그동안 막다른 길에서 새로운 길을 뚫어냈던 것처럼 이번에도 묵묵히 앞으로 나아갈 작정입니다.

"유엔본부와 같은 국제기구에서 경험을 쌓아 통일 조국에 이바지하는 외교 전문가가 되고 싶습니다." 

(SBS 뉴미디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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