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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사고로 위장된 아내 살인…2년 만에 밝혀진 진실의 단서는?

박병일 기자

입력 : 2015.04.04 13:16|수정 : 2015.04.04 16:54


미국 뉴욕에서 현지시간 2일, 유명한 산부인과 의사인 로버트 뉴랜더 박사에 대한 재판이 열렸습니다. 그는 지난 2012년 9월, 아내를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는데, 사건 발생 21개월 만인 지난해 6월 경찰에 체포돼 수사를 받아왔습니다. 뉴욕유대인 사회에서는 이름 난 잉꼬 부부이자 많은 자선단체를 후원해 온 부부였던 만큼 남편 뉴랜더가 거의 2년만에 아내 살해 혐의로 체포되면서 충격과 함께 많은 논란이 일었던 사건입니다.
 
12명의 남녀로 구성된 배심원단은 63살의 산부인과 의사 뉴랜더의 살해 혐의를 인정하는 순간 뉴랜더는 아무 말 없이 재판정 천정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때 방청석에 앉아있던 딸 제나(25세)가 소리쳤습니다. “아빠! 저를 보세요. 아빠가 죽이지 않았잖아요. 저도 그때 집에 있었잖아요. 아빠! 뭐라고 말 좀 해보세요.” 과연 뉴랜더는 아내 살해범일까요? 그리고 그는 어찌하여 21개월만에야 체포된 걸까요? 처음에는 단순 ‘사고사’로 조사됐던 사건이 어떻게 살인 사건으로 바뀐 것이었을까요? 이 기막힌 반전의 비밀을 풀기 위해 2012년 9월 17일, 사건 현장으로 가 보겠습니다.월드리포트 2그날 아침, 911에 신고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제나는 울부짖듯 외쳤습니다. “엄마가 숨졌어요!” 경찰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61살의 레슬리 뉴랜더는 벗은 몸으로 침실 침대 위에 뉘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욕실에서 침대까지 길게 핏자국이 이어져 있었습니다. 욕실로 가보니 샤워기 물이 틀어져 있었고 욕실 내부는 피가 흥건하게 고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남편 로버트는 울음을 그치지 못하며 서 있었습니다.

로버트는 아내가 욕실에 피를 흘리고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침대로 옮겨 심폐소생술을 시도했지만 숨졌다고 말했습니다. 딸 제나 역시 엄마가 평소 빈혈과 어지러움 증 증세가 있었는데 샤워도중에 쓰러지면서 머리를 부딪친 것 같다고 설명했습니다. 경찰은 일단 사고에 의한 사망으로 보고 현장에서 증거를 수집했습니다.월드리포트_640단순 사고 사로 끝날 뻔한 사건은 작은 증거 하나로 반전을 맞게 됩니다. 수사관이 특수 장비를 동원해 조사한 결과, 침실 벽에서 지워진 혈흔들을 발견한 겁니다. 침실 벽에 혈흔이 있다는 것은 침실에서 뭔가 둔탁한 물건으로 레슬리를 가격했고 그 과정에서 벽에 피가 튀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남편 로버트가 주장했던 대로 당초 욕실에 쓰러져 있던 레슬리를 발견해 침실로 옮긴 것이 아니라 침실에서 레슬리를 살해한 뒤 사고 사로 위장하기 위해서 숨진 레슬리를 욕실로 옮겨 샤워기를 틀고 욕탕 안에 넣었다가 다시 꺼내서 침실까지 시신을 끌고 온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이 작은 혈흔으로 로버트는 21개월만에 체포된 겁니다.월드리포트_4법정에서 로버트의 변호사는 검찰 측이 제시한 증거가 효력이 없다고 맞섰습니다. 신고를 접수한 뒤 현장에 도착한 경찰이 아무런 영장을 제시하지 않은 상태에서 수거한 증거들은 채택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하게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판사는 신고를 접수한 뒤 경찰이 현장에서 피가 흥건하게 고여있는 상황을 목격하고 수사에 착수했으며 각종 증거 수입에 로버트가 동의했다는 점을 들어 변호사측의 주장을 기각했습니다.
 
여기서 한가지 의문으로 남는 점은 딸 제나의 증언입니다. 그녀는 그날 분명 집에 함께 있었다고 진술했고, 아버지인 로버트가 침실에서 어머니를 살리려고 심폐소생술을 하는 것을 봤다고 했습니다. 아버지인 로버트가 딸을 속였던지 아니면 딸 제나가 아버지를 보호하기 위해서 거짓 증언을 했던지 둘 중 하나일 겁니다.월드리포트_5로버트의 변호인은 항소하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앞으로 남은 재판에서 혐의가 최종적으로 인정되면 로버트는 최소 25년형을 받게 됩니다. 본인이 혐의를 부인하고 있고 주변 가족들도 살해할 이유가 없다고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어, 설사 로버트의 살인 혐의가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로버트가 왜 부인을 살해했는지 그 이유는 영원히 미궁에 빠지게 될 가능성이 커보입니다. 그 스스로 아내의 살인을 자백하지 않는 한 말입니다.

우발적인 살해에 이은 증거 조작이었건, 아니면 처음부터 치밀하게 계획한 살인이었건 간에 단순 사고 사로 끝날 뻔한 이 사건은 침실 벽에 남은 작은 혈흔으로 숨은 진실이 드러나게 됐다는 점에는 변함 없을 것이며, 아무리 치밀하게 위장된 범죄라 하더라도 반드시 진실은 밝혀지게 된다는 것을 보여준 또 하나의 사례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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