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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라이드 포토] 포탄에 '깜짝'·헬기에 '덜덜'…"불안에 잠 못 이뤄"

입력 : 2015.04.03 14:38|수정 : 2015.04.03 14:41




"헬기나 전투기가 지나가면 얼마나 시끄러운지 집 대문이고 창문이고 덜덜 떨려. 꼭 누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랑 똑같다니까."

경기도 포천시 영중면에 사는 유 모(79·여)씨는 한밤중에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혹시 손님이 왔나 나가보지만 매번 아무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대신 머리 위로 손이 닿을 듯한 높이에서 미군 아파치 헬기가 지나간다는 것이 유 씨의 전언입니다.

밤새도록 울려 퍼지던 총성과 포성이 잠시 멈추는 틈을 타 유 씨는 잠을 청해 봅니다.

잠깐이라도 잠을 자둬야 내일 새벽 농사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잠이 막 들려는 찰나 다시 총성이 울리고 잠자기는 틀렸습니다.

6·25 전쟁 때 이야기가 아닙니다.

유 씨가 불과 한 달 전까지 겪은 일입니다.

유 씨는 "비행기가 낮게 날아 기왓장이 다 날아갔다"며 "그래서 마을에 기와집도 다 없어졌다"고 하소연했습니다.

그녀는 소음에 난청이 와서 평소에도 화가 난 것처럼 크게 말합니다.

주변에 사는 다른 주민들도 목이 아플 정도로 크게 이야기합니다.

영평·승진사격장 대책위원회 김광덕 사무국장은 "사격이 한창일 때는 텔레비전 소리를 최대로 크게 해도 안 들린다"며 "이런 곳에서 사니 크게 말하는 게 습관이 됐다"고 말했습니다.

영중면은 미군 사격훈련장인 영평사격장(로드리게스) 입구에 있습니다.

영평사격장은 영중면 일대 약 1천352만㎡로, 아시아에서 가장 큰 미군 훈련장입니다.

특히 헬기나 전투기가 지상 사격 훈련을 할 때면 저공비행해 영중면 상공을 가로지릅니다.

이런 훈련은 거의 연중무휴, 오후 10시가 넘어서도 계속됩니다.

귀를 찢는듯한 소음과 진동에 "새로 손본 화장실 타일이 떨어지고 초등학교 국기게양대가 휘청거릴 정도"라고 주민들은 전했습니다.

아이들은 익숙해 있지만 처음 부임해온 여교사들은 폭음에 주저앉거나 울며 수업하기도 했다고 주민들은 전합니다.

경기도 산하 경기개발연구원이 지난 2009년 발간한 경기개발연구원의 '군부대사격장 주변지역 피해조사 및 대책 마련 연구'에 따르면 영평사격장에서 2㎞ 이내에 있는 오가2리 마을은 포 사격 시 소음이 109.9㏈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보통 1m 거리에서 작업 중인 굴착기의 소음이 100㏈가량으로 알려졌습니다.

주민들은 "화력이 좋아졌는지 4∼5년 전부터는 소음이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이 커졌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따라 포천시의회 군부대사격장 피해보상 촉구 특별위원회·주민대책위·육군 8사단·미2사단 등은 올해 안에 공동으로 주변 소음을 다시 측정하기로 했습니다.

이 마을에서 이발소를 운영하는 이응수(62)씨는 마을 주변 산과 들에서 주운 포탄과 총알 꾸러미를 보여주며 "이런 곳에서 여태 어떻게 살았나 몰라"라며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대전차용 포탄 탄피부터 발칸포 탄피까지 다양했습니다.

지난달 28일에는 영중면 근처 영북면 야미리의 한 집에 연습용 포탄이 날아오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포탄은 안방 위 콘크리트 지붕을 맞고 튕겨져나가 인근 밭으로 떨어졌습니다.

안방에는 콘크리트 잔해가 떨어져 장롱이 부서졌습니다.

집안에 노부부가 있었으나 다행히 거실에 나와있어 화를 면했습니다.

그러나 워낙 심하게 놀라 병원으로 이송돼 안정을 취했습니다.

사고 이후 미군은 사격 훈련을 잠정적으로 중단, 영중면 주민들은 짧은 평화를 맛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동안 기관총과 대포 탄환에 이르기까지 각종 도비탄과 오발탄이 마을로 날아들고, 분진과 화재, 헬기 폭풍 등에 시달려온 주민들은 여전히 불안을 감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영북·영중·이동·창수 등 이번에 대책위원회를 꾸린 4개 면에는 1천600가구 3천800여 명이 살고 있습니다.

이들은 전쟁이 끝난 뒤에도 60년간 이어지는 '또 다른 전쟁'을 겪고 있습니다

(SBS 뉴미디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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