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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혜의 풋볼프리즘] 당신들의 박지성, 차두리를 응원합니다

이은혜

입력 : 2015.04.02 17:22|수정 : 2015.04.02 17:22



"아빠, 차두리 어디갔어?"

아이는 뉴질랜드전 후반 45분 내내 틈 날 때마다 차두리를 찾았습니다. LA다저스 점퍼를 입고, 뉴에라 캡을 눌러쓴 남자 아이였습니다. 종료 직전 겨우 이재성의 골이 들어가기 전까지 무척 지루했기 때문일 겁니다. 모처럼 아빠 엄마와 축구장에 왔는데 더 이상 차두리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안 아이가, 다시 이 곳에 올 일은 없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자 조금 아쉬웠습니다. 사실 차두리는 앞으로 적어도 1년은 2주에 한번씩 바로 그 경기장에서 뛸텐데 말이죠.

'차미네이터의 은퇴식이 열리는 축구 국가대표팀 A매치'를 보기 위해, ?은 봄비가 내리는 평일 저녁임에도 경기장을 찾은 단란한 가족은 물론 많았습니다. 슈틸리케 감독은 축구가 조금 더 일상 생활의 중심이기를 바란다고 했지만, 사실 한국에서는 야구가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의 일상입니다. 그 비교우위의 정당성을 논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K리그는 더 많이 인정받기 위해 노력 중이기도 하고요.

중요한 것은 뉴질랜드전부터 우리 모두가 눈 앞에서 현실을 직시하게 됐다는 점입니다. FIFA랭킹 134위의 팀에도 간신히 이기는 FIFA랭킹 56위의 신기한 대표팀. 누군가 기다렸다 자판기 버튼을 누르기라도 한 것처럼 '밀월은 끝났다', '원톱 부재'. '실패한 A매치', '진화 없는 슈틸리케 전술'이라는 분석이 나왔습니다. 비판과 분석은 언론의 특권이자 의무이니 하는 쪽도 함부로 펜을 세우지는 않을 겁니다. 슈틸리케 감독이 책임과 결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것도 분명하고요. 국가대표가 언제부터 은퇴할 수 있는 것이 되었냐는 이야기, 차두리가 박지성이나 이영표보다 더 화려하게 대표팀 유니폼을 벗는다는 볼멘소리까지 나왔습니다.

차두리는 14년 동안 76경기의 A매치를 뛰었습니다. 14년이면 초등학교 1학년이던 아이가 스무살 성인이 되고, 어느덧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 꿈을 꿀 나이입니다. 20살 청년은 사회생활을 시작해 34살 어엿한 사회인이 되어 있겠죠. 그 시간 동안 축구계에도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세상 모든 곳이 그렇듯 축구계 역시 정치가 작용합니다. 결과가 좋으면 과정이 어찌됐든 영웅이 되고, 실패하면 상상 이상의 고통을 감수해야 합니다. 누구도 예외는 없고, 축구인 모두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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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두리의 은퇴가 큰 울림을 냈던 건 본인이 가진 개인사에 지난 10년 간 한국 축구사가 거쳐 온 굴곡이 상당부분 그대로 반영되어 있기 때문일 겁니다. 하지만 그 굴곡이 그라운드 밖을 살아가는 그저 평범한 사람의 인생과도 많은 부분 겹쳐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차두리는 선택받은 극소수입니다. 태어나 보니 아버지가 차범근인 축구선수는 이 세상에 차두리 한 명 뿐입니다. 그런 행운은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거스 히딩크, 그러니까 외국인 감독이 아니었다면 '차범근의 아들'은 어쩌면 긴 시간 동안 태극마크와도 거리가 멀었을 수 있었습니다. 98년 월드컵에서 아버지를 경질시켰던 외국인 감독이 아들을 처음으로 국가대표에 발탁했습니다.

이 가설이 수 많은 'if'들 중의 하나일지라도 지난 10년 간 우리 사회의 많은 영역을 학연, 지연, 혈연 같은 것들이 지배해 온 것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차두리가 은퇴식에서 아버지 품에 안겨 아이처럼 울 때 대한민국의 많은 젊음이 숨죽여 울었습니다. 차붐의 아들로 태어났다고 해서 무조건 독일월드컵에 출전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차두리는 독일 월드컵을 중계석에서 지켜봐야 했습니다. 어쩌면 그것 또한 차붐의 아들이기 때문에 누린 특권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가 브라질 월드컵에 선수가 아니라 해설자로 간 것은 누군가의 각본이 아니라 현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또 다른 외국인 감독 슈틸리케의 부름을 받고, 다시 한 번 전력질주를 한 뒤 후회 없이 대표팀 유니폼을 벗었습니다. 본인의 평가처럼 차두리는 뛰어난 선수는 아니었습니다. 누군가의 평가처럼 박지성보다 더 큰 공헌을 한 선수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시쳇말로 '브라질 월드컵 이후 다 죽어가던 한국 축구'에 아시안컵에서 마지막 심폐소생술을 한 건 차미네이터의 폭풍질주였습니다.

이제 싫든, 좋든 2015년 3월 31일 뉴질랜드전 전반 45분을 끝으로, 지금까지 달려왔던 한국 축구 '14년의 대표팀'은 막을 내렸습니다. 그 대표팀의 축구는 아주 오래 전 어른들이 "차범근이 있으면 월드컵 우승도 할 수 있다"고 했던 축구에 뿌리를 두고 있었습니다. 선수들은 한일전서 지면 현해탄에 몸을 던지라는 전설 같은 농담을 진담처럼 주고 받았고, 오랫동안 투혼말고는 불사를 것이 많이 없어서 세계 축구계에서 변방으로 여겨지던 대표팀이었습니다.

그런데 차두리가, 물론 황선홍이나 홍명보, 최용수 같은 선배들이 있었지만, 그러니까 차두리, 박지성, 이영표, 설기현, 송종국 같은 잘 몰랐던 선수들이 2000년대 이후 꾸준히 대표팀에서 뛰기 시작하면서 한국 축구에 새로운 시대가 왔습니다. 남의 나라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던 월드컵이 안방에서 열렸고, 이름도 없던 선수들이 세계 4강에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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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는 잘 아시는 대롭니다. 우리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뛴 선수와 7년 간 수 없이 새하얀 밤을 보냈고, 잉글랜드로 독일로 많은 한국 선수들이 진출했습니다. 그렇게 벌써 14년. 두 번의 월드컵에서 새 역사를 쓰고, 두 번의 월드컵에서 해설을 한 차두리의 은퇴를 끝으로 우리들의 대표팀은 막을 내렸습니다.

지난해 브라질 월드컵에서 독일이 우승했을 때, 차두리는 자신이 연재하던 칼럼에 당시 가장 만나고 싶은 사람이 바이에른 뮌헨의 단장 마티아스 잠머라고 쓴 적이 있습니다. 잠머가 "2026년 월드컵에 나갈 독일 선수들은 이미 태어났다"고 말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잠머는 유로 2000에서 최악의 실패를 경험했던 독일 유소년 축구 시스템을 개선한 인물입니다. 그때 우리는 "독일도 10년을 기다렸다"고 했었죠.

이정협을 놓고 두 달만에 뛰기만 할 뿐 능력없는 공격수라는 '댓글'이 달렸습니다. 세상이 달라졌으니 선수에 대한 검증도, 평가도 더 빨라져야 할 지 모릅니다. 하지만 한국 축구는 잉글랜드나 독일, 스페인처럼 선수층이 두텁지 않습니다. 브라질처럼 개인기가 뛰어난 자원들이 많은 것도 아닙니다. 이런, 저런 논란을 거친 기성용을 지금의 대체불가능한 선수로 진화시킨 것은 어쩌면 우리 스스로 아니었을까요. 

앞으로의 대표팀에 무엇을 요구할지 결정하는 것은 여러분의 몫입니다. 전술도, 기술도, 재미도 없는데 9번 연속 월드컵 진출 따위 의미 없다면, 무조건 강요만 하는 투혼도 이제 버려야 한다고 외치는 것까지. 모든 것이 새로운 시작입니다. 14년 전에는 0-5 혼란이 있었고, 공포가 있었고, 아픔이 있었습니다. 이제 축구협회에는 같은 실수, 같은 잘못, 같은 과거를 반복하지 않을 기회가 있습니다.

여전히 곽태휘 같은 선수가 있고 기성용, 이청용, 구자철, 그리고 손흥민도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김진수 같은 뛰어난 재능도 있습니다. 먼 이야기지만 바르셀로나가 기다린다는 이승우 같은 선수도 있고요. 당신들의 박지성, 당신들의 차두리를 발견할 슈틸리케 감독이기를 바랍니다. 이제부터의 월드컵에 나가는 것은 당신들의 대표팀입니다.

[사진 = 대한축구협회 제공]

(SBS통합온라인뉴스센터 이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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