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뉴스

뉴스 > 국제

[월드리포트] 아베 "인신매매…가슴 아프다" 숨은 의도는?

이성철 기자

입력 : 2015.03.29 12:13|수정 : 2015.03.29 12:13


- 지일파 아미티지 "올바른 방향 한 발…의회 연설서 과거사 문제 잠재워야"
- 위안부 단체 "옆집 강아지가 죽어도 가슴 아프다 할 것"

 
아베 일본 총리의 미 상하원 합동 연설을 앞두고 뭔가 착착 돌아가는 느낌이다.
 
존 매케인 상원 군사위원장이 26일 워싱턴의 싱크탱크 CSIS 포럼에 나왔다가 일문일답 과정에서 위안부 문제 해결을 거론했다. 묻지도 않은 질문이었다. 언론들이 "아베의 열렬한 지지자(great admirer)"라는 '띄우기'에 주목하는 바람에 조명을 받지는 못했지만, 미 의회의 원로가 위안부 문제를 거론한 건 귀가 솔깃한 대목이었다.
 
워싱턴의 조야가 움직이고 있음을 직감했다.
 
아니나 다를까. 아베 총리가 27일자 워싱턴 포스트와 인터뷰에서 위안부 문제는 “인신매매(human trafficking)”라며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워싱턴 포스트와 인터뷰라기보다는 오피니언 필진인 이그나시우스(David Ignatius)가 도쿄로 날아가서 아베와 인터뷰를 하고 자신의 기명 칼럼에 정리한 것이다. 전문은 웹사이트에만 실렸다. 주일 특파원을 제치고 워싱턴에서 오피니언 필진이 도쿄로 날아간 것도 눈길을 끈다. 워싱턴 바닥의 오피니언 리더들이 움직이고 있다는 방증이다.
 
우연일까? 아베 인터뷰가 실린 날 오후 워싱턴 CSIS에서는 미-일 안보 포럼이 열렸다. 초청 연사는 일본 자민당의 고무라 부총재, 데이비드 시어 미 국방차관보였다. 프로그램 마이크를 잡은 일본통 마이클 그린은 청중들에게 아베 총리 인터뷰를 읽어 보라고 권유했다.
 
리처드 아미티지(Richard Armitage)가 온다는 말에 시간을 쪼개 포럼 취재를 갔다. 국무부 부장관을 지낸 대표적인 지일, 지한파 인사다. 바로 1년 전 이 포럼에서 인터뷰를 했는데, 일본에 “정부 차원”에서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라고 촉구했다. 피해자들이 죽어가고 있다, 존중을 받을 자격이 있다며 진정성을 갖고 문제 해결에 나서라고 말했다.
 
그로부터 1년 뒤 아베 총리의 “인신매매” 발언은 그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과거에 듣지 못한 말이다, 인신매매는 성노예까지 포함하는 아주 폭넓은 범주”라며 반색했다. 의회 연설로 과거사 문제를 잠재우기 바란다며 큰 기대감을 나타냈다. 사실 아베 총리의 인신매매 발언이 나오는데 아미티지 자신이 직간접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러나, 워싱턴의 위안부 관련 단체는 의혹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위안부 문제의 본질을, 핵심을 건드리지 않은 채 대충 넘어가려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인신매매를 누가 했다는 건지 불분명하고 “가슴 아프다”는 말도 사과와는 거리가 멀다고 평가했다.
 
‘정신대’라는 시스템을 통해 소녀와 여성을 강제 성노예화한 인권 유린의 책임이 일본 정부에 있음을 외면하고 있다는 것이다. 워싱턴의 정신대 문제 대책위원회를 비롯한 한인 단체들은 앞으로 한 달 아베의 진정한 사과와 반성을 촉구하는 캠페인을 벌여나가기로 했다.
 
리처드 아미티지 전 미 국무부 부장관과 이정실 워싱턴 정신대 문제 대책위원회 회장의 말을 들어봤다. 아미티지는 직접 만났고, 이 회장은 전화 인터뷰를 했다.
 이성철 특파원_64리처드 아미티지 전 미 국무부 부장관:
 
- 일본 총리로는 처음으로 아베 총리가 미 의회 상하원 합동 연설을 하게 됐다. 한미일 3각 관계와 관련해 무엇을 기대하는가?

= 아베 총리가 다음달 4월말 워싱턴에 와서 역사 문제를 잠재울 아주 긍정적인 언급을 하기를 희망한다.
 
- 하지만 불행하게도 아주 곤란한 과거사 문제가 있다. 워싱턴포스트 이그나시우스와 인터뷰에서 아베 총리는 위안부 문제를 “인신매매”로 묘사했다. 그것으로 만족하나?

= 그것을 읽었고 아주 흥미롭게 봤다. 이전에 들어본 적이 없는 것이다. 나의 관점으로는 올바른 방향으로 한 발 나아가는 것 같다. 그러나, 아베 총리가 워싱턴에 와서 무슨 말을 할지 봐야 할 것이다. 그것이 아주 많이 기대된다.
 
- “인신매매” 규정에 만족한다는 뜻인데,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단지 인신매매가 아닌 성노예 문제로 보고 있다. 이에 대한 생각은 무엇인가?

= 국무부에서 일할 때 아주 우려하던 것들 중 하나가 인신매매였다. 거기에는 성노예가 포함됐고 아동 노동, 기타 모든 종류의 것들이 포함됐다. 아주 폭넓은 범주다.
 
그러나, 나의 관점에서 일본의 총리가 그에 관해 말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다. 적어도 미국민들 귀에는 아주 좋게 들리는 출발이다.
 
- 아베 총리는 “가슴이 아프다”고도 했다. 그것으로 좋은가 아니면 정면으로 맞서 인정하고 사과해야 한다고 보나?
= 보자. 지금까지 많은 사과들이 있었다. 문제는 진정성이다. 사과가 있으면 받아들여야 한다. 아베 총리가 가슴이 아프다고 말하는 것은 아주 진지한 발언이다. 아주 깊은 언급이다. 아베를 그의 말 그대로 받아들인다. 이성철 특파원_64이정실/ 워싱턴 지역 정신대문제 대책위원회장
 
- 아베 일본 총리가 워싱턴 포스트의 오피니언 필진과 인터뷰에서 위안부 문제를 언급했다. “인신매매다, 가슴 아프다”는 말을 어떻게 평가하나?
 
= 아베는 워낙에 교활한 정치인이다. “인신매매(human trafficking)”라고 이야기했는데 인신매매는 굉장히 광범위하게 쓰이는 용어다. 남자도 인신매매 당할 수 있고, 어느 시대나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인신매매의 희생자”라고 한 것은 사실은 성노예(sex slave) 아니면 특별히 위안부(comfort woman)라고 딱 찍어서 이야기한 게 아니다. 굉장히 모호하고 추상적이고 막연하게 그런 단어들을 일부러 선택해서 쓰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 “가슴이 아프다” 이렇게 표현했는데..
= 주체가 분명하지 않은 거다. 주어가. '우리가 굉장히 미안하게 생각한다, 우리가 할머니들한테 정말 반성하고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하지 않았다. “가슴 아프다”는 옆집 강아지가 죽었을 때도 쓸 수 있는 표현이다. 굉장히 모호하고 주체가 분명하지 않은 표현들 쓰는 것 같다. 뭐랄까, '눈 가리고 아웅 한다' 그럴까?
 
- 미 의회 상하원 합동 연설에서 아베 총리가..
= (위안부 문제에 관해) 한 마디도 안 할 수 없을 경우, 그 때는 이런 식으로 아주 간접적으로 모호하고 추상적인 말투와 단어 선택으로 본질을, 가장 핵심적인 것을 건드리지 않은 채 사과도 하지 않은 채 주체도 정확하게 밝히지 않은 채 살짝 건드리고 넘어갈 수 있다는 거다.
 
- “인신매매” 표현을 아베 총리가 한 거는 이번이 처음이고 그런 면에서는 의미가 있다, 그러나 어떤 의도에서 한 것인지는 두고 봐야 한다는 평가들도 있는데...
= (위안부 피해자들의) 고통을 생각했을 때 “가슴이 아프다”라는 것은 굉장히 감정적이고 주관적으로 자기 느낌을 이야기한 것이다. 그래서 거기에 따른 행동 방안이 나온 건 아니지 않나?
 
예를 들어 옆 동네 애들 확 때리고는 '어 너 굉장히 아프겠다, 내 마음이 아프다'라는 것은 그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문제를) 하나도 해결을 안 한 거다. '그것에 대해 내 감정이 그렇다'라는 것으로 끝났기 때문에, 사실은 굉장히 뭐랄까 수동적이랄까. 본질을, 핵심적인 것을 피하는 발언인 것 같다.
 
- 아베 총리는 어떻게 할 것으로 보나?
= 심플하게 사과하는 게 가장 좋은 것이다. 그러나, 내가 아는 이제까지 아베의 모든 행태를 봤을 때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은 5% 미만인 것 같다. 끝까지 경계를 늦추지 않고 그 순간까지 모든 단어 하나하나 의회 스피치가 다 끝날 때 까지 봐야할 것이다. 평가하기는 이른 것 같다.
 
- 미국의 정치인들, 미국 정부에 있었던 사람들 중에서는 긍정 평가가 좀 있는 것 같다.
= 그거를 노리는 거다. 국회의원들조차도 정확하게 잘 모른다. 미 하원 위안부 결의안을 주도한 'HR 121'에 가입했던 17명 의원 빼고는 나머지는 큰 관심이 있을까? 정확하게 모르니까 일본 사람들이 잘 쓰는 작전인 것 같다. 솔직히 많은 사람들의 경계심을 늦추고 부드럽게 하기 위해서 하는 걸로 보인다.
 
▶ "위안부는 인신매매 희생자"…日 정부와 무관?
   
SBS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