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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 발권력 동원 갈수록 늘어나…문제 없나

입력 : 2015.03.26 15:45|수정 : 2015.03.26 15:45


정부 재정으로 할 수 있는 사업에 한국은행의 발권력이 동원되는 사례가 줄을 잇고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한은은 내달 1일부터 금융중개지원대출의 한도를 종전 15조원에서 20조원으로 늘리면서 중견기업도 이 대출 제도의 제한적인 지원 대상에 포함하기로 했다고 27일 밝혔다.

문제는 이런 자금이 한은이 돈을 찍어내는 발권력에 의해 조달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한은은 발권력을 동원할 때는 그 필요성을 엄밀히 판단해 금융통화위원회 의결을 거치며 이번 한도 확대 역시 합당한 목적과 기대효과가 있는 것으로 판단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과도한 발권력 동원은 화폐가치 하락으로 이어져 전 국민의 부담이 되는 만큼 특정한 목적을 위한 자금은 정부 재정을 통해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는 반론도 나온다.

특히 특정 부문 지원을 위한 한은의 발권력 동원 사례가 최근 줄을 잇고 있어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 국회 통제받지 않는 돈 발권력 갈수록 확대 세금 징수나 세출 등 정부의 재정은 국회를 거쳐야 한다.

그러나 중앙은행의 발권력을 통해 마련한 자금은 국회의 통제를 받지 않으면서 같은 곳에 사용될 수 있다.

이번에 한도가 확대된 금융중개지원대출도 정부의 수많은 정책자금과 비교해볼 때 일부 방식의 차이가 있을 뿐 일종의 정책자금 지원이다.

그러나 이런 유형의 발권력 동원 사례는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당장 금융중개지원대출만 봐도 총 한도가 작년 9월 12조원에서 15조원으로 늘어났고 다시 오는 4월부터는 20조원으로 확대된다.

특히 이번에는 이 대출제도의 지원 대상에 중견기업이 새로 들어왔다.

한은은 1994년부터 총액한도대출 등의 이름으로 이 대출 지원 제도를 운영해왔으나 상대적으로 소외되기 쉬운 중소기업에 한해 지원해왔다.

중견기업은 매출이 1천500억원을 넘거나 자산총액이 5천억원 이상이면서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에 속하지 않은 기업을 의미한다.

앞서 한은은 작년 3월 정부의 회사채 시장 정상화 방안을 뒷받침하기 위한 재원 조달용으로 3조4천590억원을 당시 정책금융공사에 저리 대출해줬다.

정부가 가계부채 구조 개선을 위해 내놓은 안심전환대출에도 한은 자금이 동원될 예정이다.

애초 20조원 한도로 예정된 안심전환대출을 위해 한은의 주택금융공사에 대한 2천억원 출자가 검토돼왔다.

그러나 안심전환대출이 조기 한도 소진으로 추가 출시될 경우 한은의 추가 출자에 대한 요구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안심전환대출의 한도 증액이 필요하면 한은과의 협의를 거쳐 증액 규모를 정할 방침이라는 입장을 이미 표시한 상황이다.

◇ 중앙은행 발권력 동원 '끝나지 않은 논란' 한은도 이번 한도 확대 결정과 관련, 신중한 태도를 보여왔다.

윤면식 한국은행 부총재보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현 상황에서 성장세 회복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며 "설비투자를 늘리려고 하거나 기술기반으로 사업을 성장시키려 하는 기업들에 대해서는 배려가 필요하기 때문에 한도를 증액한 것"이라고 취지를 설명했다.

이어 윤 부총재보는 "재정과 발권력 동원을 가르는 기준에 대해 공식화된 것은 없지만 당연히 발권력을 남용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기준금리 인하 이후에도 이른바 '돈맥경화' 등으로 자금 흐름이 원활하지 않은 기업들을 선별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신중히 판단해 내린 결정이라는 설명이다.

이런 한은의 논리에 대해 전문가들의 의견은 찬반으로 나뉜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경제동향분석실장은 "금리를 낮춰도 소비나 투자가 살 것 같지 않은 상황에서는 특정 부문에 발권력을 동원하는 게 더 효율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반대론자들은 특정 영역에 대한 정책자금 지원은 세금을 재원으로 해야 하며 국회의 통제를 받지 않는 중앙은행이 이런 형태의 지원을 늘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기준금리 결정 등 통화정책은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정책으로, 정치적인 중립성을 유지하는 명분이기도 하다"면서 "특정 영역에 대한 발권력 동원이 늘어난다면 통화당국도 행정부처럼 입법부의 통제를 받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성 교수는 "중앙은행의 정책자금 지원을 받지 못한 기업은 금융중개지원대출을 받은 경쟁 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받게 된다는 점에서 중립적인 정책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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