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뉴스

뉴스 > 사회

노숙자 살인 누명 벗긴 3인의 국선변호인

입력 : 2015.03.22 12:27|수정 : 2015.03.22 12:27


10년 전 잡초가 우거진 순천시 한 빈집 마당에서 시신이 발견됐습니다.

단서는 주변에 놓여 있던 구부러진 동파이프, 부서진 우산, 깨진 소주병, 피 묻은 화장지뿐.

목격자는 없었습니다.

사건은 미궁에 빠졌습니다.

그로부터 7년 후 범인이 잡혔습니다.

현장에서 나온 지문과 혈흔은 노숙자 김 모(54)씨의 것이었습니다.

경찰은 증거를 들이밀며 김 씨를 추궁했고, 그는 순순히 범행을 자백했습니다.

하지만 검찰 조사에서 김 씨가 갑자기 말을 바꿨습니다.

"겁이 나서 피해자를 때렸다고 상상하며 진술했다", "폐가에서 피해자와 술을 나눠 마신 적은 있지만 죽이지는 않았다".

검찰은 이 말을 믿어주지 않았습니다.

대신 김 씨가 돈 문제로 피해자와 싸우다 소주병으로 머리를 내리치고 우산과 파이프로 온몸을 때려 살해했다는 내용의 공소장을 법원에 접수시켰습니다.

국선변호사로 1심 변호를 맡은 김준채(44·사법연수원 41기) 변호사는 김 씨를 처음 접견했을 때 "부인하는 게 능사는 아니다. 인정할 것은 인정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김 씨를 만날수록 살인범이 아니라는 심증이 생겼습니다.

자세히 보니 증거가 허술했습니다.

김 씨 지문이 찍힌 소주병은 플라스틱 페트병이었습니다.

더구나 왼손 엄지가 잘린 김 씨는 주로 오른손을 쓰는데 소주병에 찍힌 지문은 왼손 지문이었습니다.

구부러진 파이프에는 피해자 머리카락과 피가 묻어 있었지만 김 씨 지문은 묻어 있지 않았습니다.

김 변호사는 이 같은 허점을 지적하는 한편, 김 씨의 20년 전 지인을 어렵게 법정에 세웠습니다.

그는 김 씨가 본디 온순한 사람이라고 증언하고 피고인석에 앉은 김 씨를 일으켜 안아줬습니다.

1심은 김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김 변호사는 "김 씨가 초짜 변호사를 만나서 고생하는 것 아닐까 두려웠다. 나로 인해 억울한 사람이 나오지 않아 다행이다"고 회상했습니다.

검찰은 2심에서 회심의 반격에 나섰습니다.

과거 김 씨와 감방을 같이 쓴 재소자들을 줄줄이 증인석에 세운 것입니다.

이들은 김 씨가 범행에 대해 털어놓는 걸 들었다고 증언했습니다.

김 씨는 궁지에 몰렸습니다.

국선으로 2심에서 변호한 김용채(65·13기) 변호사는 "동료 변호사들이 이거 유죄로 뒤집어지는 것 아니냐고 걱정했다. 난감한 심정으로 반대 심문에 애썼다"고 전했습니다.

하지만 2심 역시 무죄였습니다.

일부 재소자들이 김 씨를 두둔한 덕분에 오히려 도움이 됐습니다.

한 때 상해치사로 공소장을 변경하는 방안이 검토됐으나 공소시효(7년)가 지난 뒤였습니다.

최근 대법원은 이 사건을 김 씨의 무죄 확정으로 마무리 지었습니다.

김 씨가 빈집을 떠난 후 다른 사람이 찾아와 피해자를 살해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원심 내용을 판결문에 언급했습니다.

3심을 국선변호한 박흥수(42·32기) 변호사는 "김 씨가 자포자기 심정으로 범행을 자백한 것 같다. 그 자백을 뒤집어 무죄를 확정받기까지 과정이 쉽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박 변호사는 "재판 단계뿐 아니라 수사 단계에서도 국선 변호가 이뤄질 수 있도록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며 "김 씨가 피의자 신문 때부터 변호인 조력을 받았다면 좋았을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김 씨를 도운 세 변호사들은 서로 공을 돌리며 쑥스러워했습니다.

현재 대법원과 각급 법원에서는 229명의 국선전담변호사와 재판부 전속 비전담 국선변호사들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SBS 뉴미디어부)
SBS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