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법학회, 이른바 '김영란법'과 언론자유에 관한 긴급 토론회 논의 내용 정리
도덕주의를 내세운 자율 영역에 대한 법적 대처 시도
- 권리의 영역을 의무 영역으로 뒤집은 ‘김영란법’ - 심석태/ SBS 뉴미디어부장
(법학박사, 미국 뉴욕주 변호사) 실제 현실 속에서 종종 비유적 표현을 실체에 대한 서술로 잘못 인식하는 경우가 있다. 언론의 공공성을 이유로 언론을 그 자체로 공적 기관으로 파악하는 것도 대표적 사례 가운데 하나다. 언론이 사회적으로 매우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현실적 측면을 들어 입법, 행정, 사법에 이은 ‘제4부’라고 부르는 은유법을 말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도 마찬가지다. 우리 사회에는 특히 이런 경향이 강해서 지상파 방송의 공공성이 강조되다 보면 지상파 방송은 모두 공영 방송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언론인을 정말 공무원이나 정부의 어떤 기관원처럼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 사회에 아직도 깊이 뿌리 박힌 관존민비 사상의 영향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공적인 것은 뭔가 좋은 것, 선한 것이고 사적인 것은 이기적이고 사악한 것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또 하나 우리 사회에 특징적인 것 중의 하나는 언론에 대한 정치적 접근이다. 그리고 이런 정치적 접근은 항상 인권 보호나 공익성 강화와 같은 다양한 외피를 쓰고 나타난다. 이런 논의는 뭔가 사회적으로 쟁점이 크게 불거졌을 때, 그와 관련해 거부하기 어려운 명분을 앞세우고 진행되기 때문에 이성적인 논의보다는 분위기에 휩쓸려 입법 등을 통한 제도화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버리는 경우가 많다. 한참 뒤에 문제가 되더라도 본질적인 논의보다는 대증적 대처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전형적인 사례로 최근까지도 논란을 빚고 있는 방송심의 제도를 들 수 있다. 현행 방송심의 제도는 공정성이나 객관성은 물론이고 사회 통합, 건전성, 양성평등, 문화의 다양성 존중, 국민의 바른 언어생활 이바지 등의 기준을 위반할 경우, 심지어는 방송 사고가 난 경우에도 각종 제재를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방송이 이런 여러 가지 가치들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과 사회적으로 이런 가치들을 일종의 기준으로 만든 다음 그것을 위반할 경우 법적 제재를 가하고 심지어 형사처벌까지 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이다. 이것은 전형적으로 정책의 문제를 법적 의무의 영역으로 잘못 끌어들인 경우다. 그러다보니 잘 될 때는 별 문제가 없지만(실은 이 경우도 문제가 있지만 그렇게 사회적으로 주목을 받을 정도로 부각되지 못한 것이다.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방송사업자들이 다른 부분에서 문제가 더 커질 것을 우려해 쉽게 ‘명분’에 도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상황에 따라서는 큰 문제가 된다. 방송에 대한 정치심의, 표적심의 등의 문제가 불거진 것은 갑자기 최근에 만들어진 제도 때문이 아니라 각종 시민단체 등이 앞장서서 오랜 기간에 걸쳐 만들어놓은 방송심의 제도 덕분에 가능했다. 이런 문제가 생기자 비로소 시민단체나 일부 학계 등이 심의제도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제기하고 있으나 왜 이런 사태가 벌어지게 되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접근은 제대로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번 김영란법에도 나타나지만 근본적으로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가 갖는 공공성, 사회적 영향 등을 이유로 표현의 자유를 언론의 자유로 말하는 순간 이를 기본권적 측면에서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의무로 파악하는 경향도 우리 사회의 언론법제에 나타나는 매우 중요한 특징이다. “언론은 공익사항에 관하여 취재, 보도, 논평 기타의 방법으로 민주적 여론형성에 기여함으로써 그 공적임무를 수행한다”는 문구는 1980년 언론기본법에 들어있던 것이다. “언론이 공익사항에 관하여 취재, 보도, 논평 기타의 방법으로 민주적 여론형성에 기여한다”는 것은 언론, 저널리즘의 사회적 역할로 일반적으로 일컬어지는 내용이다. 이것은 자유로운 언론이 보장됨으로써 그 결과로 나타나는 현상을 이야기하는 동시에 실제로 언론이 사회적으로 이런 방향으로 공적인 기여를 해야 한다는 가치지향적인 언술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것이 법률의 한 부분으로 들어서고, 그리하여 기본권이던 언론의 자유가 법적으로 수행해야 하는 공적 임무가 되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이다. 이 조항은 언론기본법이 폐지된 뒤 사라지지 않고 현재의 언론중재법에 그대로 살아남았다. 언론기본법이 대표적인 악법으로 지목되어 사라진 뒤에도 이 규정이 지금까지 살아남아 있을 뿐만 아니라 아주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고 생각한다. 결국 이번 김영란법 논의 과정에서 나타난 언론의 자유와 그에 대한 법적 규제의 문제는 기본권 차원의 문제를 법적 의무의 문제로 받아들이는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고 생각된다. 사회적으로 추구해야 할 가치, 그리고 언론 제도에 대한 사회적 기대와 요구, 하나의 책임 있는 직업군으로서의 언론인들이 윤리적으로 준수해야 할 행위의 수준 등이 사회적으로 중요하고 핵심적이라는 이유로 이들을 윤리의 영역에서 함부로 법적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그것이 갖고 있는 본질적 가치 자체를 위협할 수 있다. 이것은 본말이 전도되는 것이다. 언론은 본질적으로 개인적이고 기본권적인 성질의 것이다. 또한 언론의 자유는 본질적으로 모든 사람의 일상적인 행위 속에서 실천되고 보장되어야 한다. 언론은 높은 사회적 가치를 수행하기를 기대받는다 하더라도 그 자체가 성직과 같은 것은 아니다. 취재의 방법도 언론의 본질적 가치를 위협하는 방식은 용인될 수 없지만 항상 도덕적으로 고매하기를 요구하기는 어렵다. 때로 언론의 활동은 보다 본질적인 권력에 대한 감시, 시민들의 자치를 위한 민주적 정치 과정에의 참여에 필요한 정보의 공개 등을 위해 행정적이고 절차적인 규범과 갈등을 빚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이런 구체적인 취재 활동에 대한 지침이 행정부가 정하는 명령이나 규칙 차원에서 정해지는 것은 합당하다고 보기 어렵다. 규범 제정자를 국민의 대표 기관인 국회로 한정한다고 하더라도 언론 자유의 기본권적 성격을 법적 의무 수행의 차원으로 전환시켜 버리는 것까지 용인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현실 언론에 대한 사회적, 시민적, 소비자적인 불만이 크다는 현실은 인정한다. 그렇다고 언론이 무엇인가에 대한 본질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는 본질적으로 개인적 자유다. 그러한 개인적 자유가 보장된 결과로서 언론은 사회적으로 공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공적 기능은 기본적으로 언론의 자유가 실천됨으로써 나타나는 결과여야 하는 것이지 이러한 언론 활동을 법적으로 의무로 부과할 성질이 아니라고 본다. 도덕적이고 윤리적으로 훌륭한 가치를 앞세운다고 해서 무엇이든 법으로 규율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이러한 주장이 언론에 대해 예외를 인정해 달라는 것이 아니다. 이는 언론을 그 공적 기능을 이유로 일반 시민이 아닌 권력자 취급을 하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수행하는 공적 기능으로만 친다면 대규모 시민단체나 보건 의료, 교통, 에너지 등의 분야와 같이 우리의 삶에 직접적이고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곳이 적지 않다. 우선 이번에 교육과 언론 정도만 포함시킨 걸로 치고 다음에 다른 영역으로도 확대할 것이라는 식의 논리는 합리적이지도, 논리적이지도 않다. 일부에서는 비록 언론인을 공직자로 분류해 이런 규제를 적용하는 것이 타당한지 의문이 들기는 하지만 이 법 때문에 언론의 자유가 제한될 일은 없을 것이라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특히 언론인이 부정청탁을 하거나 100만 원 이상의 금품 등을 받는 것을 처벌하는 것이 언론의 자유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국회를 통과한 법 제8조 제2항은 100만 원 이하의 금품 등에 대해서도 금지를 선언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과태료 처분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형사 처벌이 아닌 행정벌을 규정한 것에 불과하니 100만 원 이하는 상관없다는 말은 억지에 불과하다. 실정법이 분명히 불법이라고 선언하고 그 처벌까지 규정하고 있는데 형사 처벌은 아니니 상관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 법이 실제 언론의 자유에 실질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도 바로 이 100만 원 이하에 대한 위법 선언과 행정벌 부과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 부분이 언론인들의 일상적인 활동에 폭넓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언론의 자유는 보도의 자유와 이에 앞선 취재의 자유를 두 축으로 구성된다. 취재의 자유의 핵심은 취재원에 대한 자유로운 접근이다. 다시 말해 사람을 만나는 것이 취재의 출발이 된다. 사람을 만날 때 식사를 하든 차를 마시든, 공연에 초대되든 이런 언론인의 취재원에 대한 모든 접촉이 ‘향응’ 또는 ‘접대’의 이름으로 이 법의 적용 대상이 된다. 다만 대통령령으로 행정부 재량으로 정하는 금액 이하의 식사 등이 예외로 인정될 뿐이다. 정보를 구해야 하는 언론인이 취재 방법을 선택함에 있어서 행정부가 정하는 금액을 기준의 적용을 받는다는 것은 취재의 자유에 대한 직접적인 제한이다. 이처럼 취재원을 만나는 행위가 통째로 사법적 판단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언제든지 모든 언론 종사자가 수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언론 종사자가 어디서 누구를 만나 얼마짜리 식사를 했는지를 행정기관과 수사 기관이 추적하는 것이 합법이 되는 것이다. 정부에 비판적이거나 쓴소리를 하는 언론인들의 취재와 보도활동에 위축 효과가 생기는 것은 너무나 쉽게 예측할 수 있는 결과다. 판사들처럼 사건의 당사자나 잠재적 당사자 일방을 만나는 것 자체가 문제다. 그리고 판사는 법적 권한을 동원해 필요한 모든 자료를 제출받고 검증한 뒤 공정한 판단을 내리는 일을 한다. 하지만 기자는 그 자신은 아무런 법적 조사 권한도 없는 상태에서 이 사람 저 사람을 만나 정보를 수집하고, 그 조각 조각의 정보를 모아서 기사를 생산한다. 기자가 식사 대접을 받기도 하지만 거꾸로 취재원을 대접하기도 한다. 기자의 능력은 어떤 사람을 만날 수 있는가로 결정되는 특면도 있다. 이 법에 찬성하는 분들은 그런 언론인의 취재원 접촉을 마치 판사와 사건 관련자와의 만남처럼 생각하는 것은 아닌가 싶다. 또한 언론인이 외부에서 특강 등을 하는 행위에 대한 제한도 마찬가지다. 이 법은 이를 소속 기관장의 사전 허가를 받아야 하는 행위로 규정했는데 이는 회사 내부에서 사용자와 피용자 사이에서 자율적으로 결정되어야 하는 사항이다. 이를테면 외부 활동을 활발히 하는 언론인들의 경우 일과 후나 휴가 등을 이용해 각종 강연 등을 할 수 있는데 이를 제한해야 할 어떠한 이유가 있는지 알기 어렵다. 오히려 언론사 내에서 비판적인 사람에 대해 외부 활동을 제약하는 장치로 이용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사소한 외부에서의 발언을 이유로 중징계를 당한 언론인들의 사례들이 실제로 존재한다. 이런 모든 문제들이 언론인을 공무원 등 진짜 공직자를 대상으로 만든 법률 프레임 안에 무리하게 집어넣으면서 비롯된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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