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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막수유(莫須有)' 공안당국, 불신의 늪에 빠진 검찰

권지윤 기자

입력 : 2015.03.18 15:03|수정 : 2015.03.18 15:09

김기종 사건 ‘종북몰이’에 웃고 있을 국정원


“중국 근현대를 관철하는 세 글자가 무엇인 줄 아나요?”

십여 년 전, 퇴임한 중국 대학 교수가 물어본 말이다. 그 교수는 세 글자를 ‘막수유(莫須有)’라고 했다. 풀이하면 ‘그런 일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뜻으로, 송나라 때 재상 진회가 명장 악비를 반란죄로 모함할 때 쓴 말이다. 증거가 없는 반란죄에 대해 신하들이 의구심이 커지자, 진회는 “악비의 죄는 불명확한데, 그러나 혹시 죄가 있을지도 모른다(막수유)”는 말로 상황을 정리했다.

‘막수유’는 이후 중국에서 애국자가 모함 당했다는 뜻은 희석되고, “아마도 그럴거야, 아니면 말고”라는 정치적 공세를 할 때나, 이해관계가 다른 이들을 제거할 때 쓰는 단어가 됐다. 내가 처음으로 ‘막수유’라는 단어를 접했던 건 중국에서였고, 그렇게 그 교수는 문화대혁명 당시 본인이 겪은 ‘막수유’ 일화를 털어놨다.

본인 스스로를 사회주의자(정확하게 얘기하면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자’)라고 밝힌 교수는 문혁 당시 ‘주자파(走資派·자본주의를 추구하는 세력)’로 몰려 고초를 겪었다고 했다. 실용주의자로 분류된 친구와 가깝게 지냈다는 이유로 홍위병에게 끌려갔고, ‘미국의 우주과학기술이 우수하다’는 자신의 술자리 발언은 이내 ‘주자파’의 증거가 됐다. 그의 발언 취지는 미래를 위해 중국도 미국처럼 우주과학기술 개발에 자원을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말은 ‘종미주의자’의 자국 비하 발언, 자본주의에 물든 지식인의 발언으로 바뀌었다. 결국 그는 대중 앞에서 자아비판을 하게 됐고, 결국 하방(下放)에 처해졌다고 한다.

그는 자신이 겪은 고초는 이제 지난 일이라며 담담하게 얘기 했지만, 아직도 ‘막수유’가 통하는 중국의 현실사회엔 강한 비판을 드러냈다. 정권을 상대론 한 쓴 소리는 반체제 인사의 망언이 되고, 법이 아닌 ‘막수유’로 정적을 제거하는 중국 현대 사회에 대해 통렬한 비판을 쏟아냈다. 그리곤 “중국은 아직도 인치주의(人治主義)로 운영되고 있어 ‘막수유’가 통하지만, 한국은 법치주의가 확고하지 않냐”며 한국 체제에 대한 부러움을 나타냈다.

● 범인을 피의자로 바꾼 수사기관그래픽_리퍼트행사장누군가 우리 체제에 부러움을 표하는 건 즐거운 일이다. 하지만, 냉정하게 봤을 때 우리 체제가 과연 ‘막수유’가 통하지 않을 만큼 건강한 지는 장담할 수 없다. ‘김기종 씨 사건’, 정확히 얘기해선 ‘김기종 사건 이후’ 우리 사회를 보면 중국인 교수의 말이 뜨끔하게 와 닿는다.

지난 5일 김기종 씨가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를 습격한 이후, 공안당국은 전례가 없을 정도로 기민하고 공개적으로 움직였다. 언론은 김 씨를 체포한 직후 ‘혐의자’가 아닌 ‘범인’이라고 표현하며 김 씨 범행을 대서특필했다. 일부 법관은 아직 재판도 받지 않은 피의자에게 범인이라고 표현한 것을 두고 불편함을 내비쳤지만, 리퍼트 대사를 공격한 장면이 생생하게 중계됐고, 현장에서 검거된 현행범이라는 점에서 ‘범인’이라고 지칭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이젠 김 씨를 ‘범인’으로 표현할 수 없게 됐다. 범인으로 하면 틀리고, 법적으로도 문제가 있다. 이렇게 만든 건 다름 아닌 수사기관, 즉 공안당국과 공안당국을 부추기는 일부 언론이다. 김 씨가 과도를 들고 미 대사를 공격한 행위는 틀림없고, 그 행위는 엄벌이 필요한 중죄이다. 사람의 생명을 두고 벌인 폭력은 어떤 말로도 용인, 용납될 수 없다. 그 행위를 처벌할 형벌 조항이 고의성이 인정돼야 하는 ‘살인미수죄’일지, ‘상해죄’일지 따져봐야 하는 건 별건으로 하더라도 말이다.

‘범인’이라는 표현이 문제되는 건 공안당국이 공개적으로 '국가보안법’을 적용하겠다고 나서면서 부터다. 김 씨에게 ‘미대사 피습사건의 범인’이라고 칭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범인이라는 단정적 표현을 쓸 수 있는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수사는 출발했다.

범행 당시 “전쟁에 반대 한다”고 외친 것을 두고 국보법 위반의 증거로 본다면 반전주의자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결론적으로 공안당국의 국보법 위반 수사는 '북한은 미국을 부정한다' 그리고 ‘북한이 싫어하는 미국 대사를 공격했으니, 당연히 북한을 추종했을 것’이라는 추정에 가까운 논리구조에서 시작됐고, 이런 ‘막연함’이 경찰의 공개 수사 근거가 됐다. 

● 국보법 교조주의 공안당국
김기종 캡쳐_640경찰은 사건 발생 다음 날인 6일 김 씨의 집에 대해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경찰이 압수수색 영장에 최초 적용하려한 법조항은 국가보안법이었다. 검찰은 경찰이 국보법을 적용해 신청한 영장을 반려했다. 수사의 효율성을 위해서 드러나지도 않은 ‘국보법’을 먼저 명시할 필요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또 확보해야 하는 증거나 김씨의 소지품은 살인미수죄가 적용된 압색 영장으로 확보 가능하니, 선제적으로 국보법을 명시해 수사의 방향을 노출시킬 필요가 없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경찰의 아마추어적인 수사기법에 '프로 검찰'이 제지를 한 것으로 보이지만, 목적에 있어선 별 반 차이가 없다.

경찰은 국보법을 명시하려했고, 검찰은 반려한 차이가 있지만, 두 기관은 하나의 지점에선 일치한다. 국가보안법 적용에 대한 강력한 의지다. 수사를 위해 선택한 방식에만 다소 차이가 있을 뿐이었다. 검경, 즉 공안당국은 사건 직후부터 미 대사를 습격한 행위인 살인미수 혐의보다, 김기종 씨에게 ‘있을 법한 국가보안법 위반죄’를 밝혀내는 게 더 큰 관심사였다. 

이번 사건이 국보법 위반 사건으로 전향할 것이라는 것은 예견된 일이었다. 사건 당일인 5일, 검찰은 공안1부 부부장 검사를 이 사건 주임검사로 지정했지만, 하루 만에 바꿨다. 다음 날인 6일 주요 공안사건을 지휘하는 서울중앙지검 2차장검사를 팀장으로, 그 아래 공안1부 부장 검사를 포함해 검사 8명 전원, 공공형사부 소속 검사, 3차장 검사 산하의 첨단범죄수사부, 강력부 검사까지 차출시켜 30여명 규모의 특별수사팀을 만들었다. 경찰도 서울지방경찰청에 수사본부를 꾸리면서, 이례적으로 검경이 따로 대규모 수사팀을 꾸려 동시에 김 씨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요란한 걸 싫어하고 ‘정밀 타격’을 생명처럼 여긴다는 공안 검찰의 자찬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평소의 공안 검찰은 무겁다 못해 요지부동이다. 지난 해 증거조작 사건만 봐도 알 수 있다. 지난 해 2월14일 간첩 혐의로 기소된 유우성씨 변호인이 ‘검찰의 제출 증거가 조작됐다’는 중국 대사관의 공식 문서를 공개했지만, 공안 검찰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서울중앙지검 2차장이 직접 공개 브리핑을 하며 “증거조작은 사실이 아니고, 국정원이 그런 일을 할 리가 없다”며 도리어 변호인이 밝힌 문서에 의문을 제기했다.

조작을 입증하고 있던 증거 앞에서도 두 눈을 감은 채 진상 규명의 의지조차 보이지 않았다. 김기종 씨를 두고 하루 만에 대규모 수사팀을 꾸린 공안 검찰과는 사뭇 차이가나는 모습이다. 증거조작을 입증하는 증거 앞에서도 바위 같았던 검찰이 증거조차 드러나지 않은 국가보안법 수사를 위해선 모래알처럼 흩날렸으니 김 씨 수사의 전개 양상은 예측가능하지 않겠는가.

어찌됐든 검찰은 변호인이 증거조작을 폭로한 나흘 뒤인 2월18일에서야 공안 검사를 제외한 검사로 수사팀이 아닌 ‘진상조사팀’을 구성했다. '조작을 입증하는 증거'가 이미 공개됐지만 '수사 단서'로 확인된 게 아니라며 일주일 넘게 ‘진상조사’라고 했던 검찰은 뒤늦게 ‘수사팀’으로 전환했다고 밝혔다. 수사대상은 거대 권력기관인 국정원 그리고 조작 증거를 법원에 제출한 검찰 제식구인 공안 검사. 이들을 조사할 수사팀 검사는 5명이었다.

김기종 씨 한 명을 상대로 꾸려진 특별수사팀 규모의 2분의1 수준이다. 증거재판주의, 사법체계의 근간을 뒤흔든 증거조작 사건이지만, 당시 검찰은 검사 5명으로 충분하다고 했다. 출중한 검사 1명이 10명 몫을 하니 그럴 수도 있겠지만, 김 씨 한 명을 상대로 하는 수사가 증거조작 수사보다 더 확인할 게 많고 손이 많이 가는지는 여전히 납득하기 어렵다. 

● ‘드러난 죄’와 ‘만들어진 죄’
그래픽_검찰김기종검찰은 김기종 씨를 상대로 조사할 부분은 많이 남아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검찰이 어떤 결론을 내려도 논란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애당초 수사의 기본 원칙은 지켜지지 않았고, 지켜질 수 없는 상황에서 시작된 수사였기 때문이다. 물론 김기종 씨의 범행은 지탄을 받아 마땅하다. 그 어떤 변명으로도 폭력은 정당화 될 수 없다.

김 씨가 인간의 생명에 위해를 가하는 것으로 자신의 정체성이나 신념을 확인하려 했다면, 이는 통상의 다른 범죄보다 더욱 위험하고 사회에서 격리가 필요하고 철저한 수사도 수반돼야 한다. 그러나 딱 여기까지였다. 공안당국이 이 부분에 초점을 두고 수사를 시작하고, 평소대로 밀행성을 바탕으로 증거를 찾아 증거대로 사건을 처리하려 했다면 뒷말은 나오지 않았을 테지만, 이미 순서는 엉켜버렸다.

그 시작점은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이었다. 사건 직후인 6일 박 대통령은 김씨의 범행을 “한미동맹에 대한 테러”로 규정했고, 그러면서 동시에 수사 방향은 설정됐다. 


“이 사람(김기종씨)은 여러 번에 걸쳐 이런 일을 했다. 어떤 목적에서 이와 같은 일을 저질렀는지, 단독으로 했는지, 배후가 있는지 모든 일을 철저히 밝혀서 다시는 재발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 중동 순방 중 발언 2015.3.6>


통수권자의 발언은 무겁다. 이를 더 무겁게 받아드리는 검찰은 배후세력 규명을 수사의 핵심으로, 그리고 반드시 성공시켜야 하는 미션으로 삼았다. 차근차근 순서대로 진행돼야 할 수사는 예열이 되기도 전에 정점부터 찍었다. 수사의 냉정함은 사라져고 지켜야할 수사의 기본원칙은 자취를 감쳤다. 그러면서 <국보법 정황 또는 증거 확보->국보법 적용>으로 이어져야 할 수사는 <‘대명제’ 국보법 적용->국보법 증거 찾기>로 진행됐다. 특정 세력에선 실체적 진실을 위해선 당연히 배후세력을 찾는 게 기본이 아니냐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살인미수보다 죄질이 약한 절도 사건에서도 ‘공범 여부’는 당연히 확인대상이다. 하지만, 공범이 있다는 전제를 세운 뒤 수사를 한다면, 그 결과는 달라진다.

검사들이 극도로 싫어하는 단어 중 하나가 ‘표적수사’이다.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신성한 검찰권이, 공익을 위해 존재하는 검찰권이 권력에 이용된 것으로 비춰진다. 표적수사의 끝은 항상 ‘늪’이였다는 사실도 검사들은 검찰의 역사를 통해 경험으로 알고있다. 표적수사는 혐의를 확인하기 전 타깃을 정해놓고 혐의를 확인해 간다는 점에서 수사 결론에 상관없이 착수 경위와 동기를 기준으로 표적수사 여부를 판단하게 된다.

검찰이 주말을 반납해가며 어렵게 실체적 진실에 근접한 결론을 내렸더라도, 그 결론이 표적수사의 결과라면 수사과정의 정당성과 수사결론의 신뢰성은 오염됐다는 것이다. 결국 검찰이 무슨 결론을 내도 믿지 못하게 되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한 마디로 증거를 통해 ‘드러난 죄’가 아닌 증거를 통해 ‘만들어진 죄’로 보이기 때문에 곳곳에서 뒷말이 나온다. 아무리 수사의 필요성과 목적성이 담보됐다고 하더라도 표적수사의 결론은 이렇게 공감은 고사하고, 불신만 남기게 된다.

증거를 통해 ‘드러난 죄’가 ‘만들어진 죄’로 치부되는 게 자주 있었던 탓일까.  검찰은 스스로가 아닌 다른 곳에서 그 책임을 찾고 있다. 통수권자의 정치적 수사로만 보기엔 부담스러운 발언이다. 박 대통령은 채동욱 전 검찰총장 사찰 의혹에 대해 검찰 수사 초기, 국정원 직원의 개인 일탈과 청와대의 정상적 업무영역으로 규정했다.

얼마 뒤 검찰의 수사결과 역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일치했다, 세월호 참사 사건 직후 선원들의 행위를 살인으로 규정(검찰 결론도 일치), 산케이 보도에 대해선 대통령 모독으로 규정(검찰 결론도 일치), 청와대 문건 파동을 찌라시로 규정(검찰 결론도 일치). 이렇게 박 대통령이 먼저 발언을 하면, 얼마 뒤 검찰은 화답하듯 같은 결론을 내리는 모양새가 됐다.

우연으로 치부하기엔 공교로움을 넘어섰다. 반복된 우연은 필연으로 와 닿게 된다. 청와대 문건 수사결과를 두고 한 검사는 “결론에 한 치의 거짓도 없다는데 검찰의 이름을 걸 수 있지만, 검찰의 명예는 지키지 못했다”고 말했다. 대통령의 발언으로 검찰이 어떤 결론을 내려도 믿지 못하게 된 상황, 그리고 검찰의 독립성을 존중해주지 않은 대통령에 대해 일종의 불만을 토로했던 것이다. 

검찰은 이번 정권뿐만 아니라 역대 정권을 거치면서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당했다. 커져 버린 검찰권에 비해 나약한 검찰이 됐다. 이는 검찰 스스로 자초했기에 다른 탓을 할 수 없다. 처음엔 검찰도 어쩔 수 없이 이용당했을지 몰라도, 나중엔 이용당하는 데 익숙해졌다. 어쩌면 검찰 수뇌부의 보신주의나 입신양명을 위해 검찰 조직을 희생시키면서 사욕을 채웠을 수도 있다. 검찰은 이런식으로 망가진 채 신뢰를 잃어갔다.

박 대통령은 이런 검찰의 현실을 몰랐을까. 검찰의 문제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건 박 대통령이다. 검찰권을 국민에게 돌려주기 위해 어떻게 해야 되는지 가장 잘 알고 있었던 정치인 역시 박 대통령이다. 그걸 모른다고 하기엔 2012년 12월2일 박 대통령(당시 후보자)의 발언은 지금의 현실과 너무나도 맞물린다.

“모든 검찰권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역대 정권 역시, 자신들의 이해를 위해 지금의 검찰 불신을 초래했고, 일부 검사들의 정치권 줄서기에 한 몫을 한 것은 아닌지 깊은 반성을 해야 합니다. 저는 제 자신이나 정치적 목적을 위해 검찰을 이용하거나 검찰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일이 결코 없을 것임을 국민 여러분께 엄숙히 약속드리겠습니다.(...)정치 권력, 경제 권력에 흔들리지 않는 검찰을 만들겠습니다. 그래서 단 한사람의 국민도 억울한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2012년 12월 2일 박근혜 후보자 검찰 개혁안 발표 중>


● ‘종북몰이’ 정치권에 ‘막수유’로 화답하는 공안당국
그래픽_북한김기종독립성을 지켜주지 못한 정권 탓을 하기엔, 그동안 공안당국은 지나치게 자발적으로 보였다. 김 씨를 체포하자 마자 국보법을 적용하겠다는 의지를 주저 없이 드러냈다. 그 어느 때 보다 빠른 대규모 수사팀 구성으로 배후세력을 기정 사실화했고, 공소장에 국보법을 명시하기도 전에 언론을 통해 김 씨는 이미 국가보안법 위반 사범으로 낙인찍혔고, 마치 잘 짜여진 각본처럼 공안몰이는 시작됐다.  

새누리당 박대출 대변인은 일부 야당 의원과 김 씨의 교류를 이유로 “야당은 종북 숙주”라며 “참회록을 써라”고 공격했다. “야당이 ‘종북’과 손잡은 일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고, 김기종 씨가 7차례나 방북하고 성공회대 외래교수를 지낸 것은 모두 야당이 집권하던 시기에 이뤄졌다”고 종북세력을 확장시켜 나갔다. 7번의 방북 과정정은 정상 절차를 통해 이뤄진 것이고, 성공회대 교수는 대학 자체 결정이다. 그 과정에 어떤 불법이나 정권의 외압이 있었다는 건 드러난 게 없다. 막연함과 추정만으로 ‘막수유’와 다를 바 없는 종북몰이를 한 것이다. 

 정치권의 이런 황당한 발언은 공안당국이 뿌린 씨앗 덕분이다. 그동안 수많은 간첩 재심 사건에서 드러난 공안당국의 국보법 증거는 고문으로 점철된 임의성 없는 자백뿐이었다. 검찰이 국보법 위반을 적용하면 어느새 피의자는 반정부사범이 돼 사회에서 낙인이 찍혀 재기할 수 없게 됐다. 국가의 위기를 초래할 위험이 큰 간첩이 잡히면 집권자는 정권 유지의 명분을 챙겼고, 이런 방식은 항상 반복됐다.

검찰이 정권에 이용당한 것일까. 아니다. 유독 검찰은 국보법 사건에서 정밀하지 못했고 과격했다. 좋게 말해선 법적 증거 대신 그들이 정립한 그들만의 가치관으로 죄의 유무를 재단했고, 한 인간의 인생 전체까지 판단하려 했다. 유신정권, 군사정권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태어난 게 ‘정체불명 애매모호’한 ‘종북’이라는 단어였다. 어느새 사회에선 국가보안법 위반은 곧 종북, 종북은 곧 국가보안법 위반이 됐다.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만들어진 국보법이 도리어 민주주의 정신을 훼손하는 모순적인 현상이 반복되면서 한 때 국보법을 폐지해야 한다는 움직임도 활발했다.

헌법재판소는 비록 지난 2004년 국보법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지만,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실질적 해악을 끼칠 명백한 위험성이 있는 경우에 한해 적용한다”라는 전제 조건을 달았다. 그러나 이 후에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김정일 장군님 빼빼로 주세요”라는 북한 풍자 트위터 글이 종북의 증거가 됐고, 그렇게 한 남성이 국보법 위반으로 구속 기소됐다가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된 게 불과 1년 전 아닌가.

종북몰이의 폐단은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때도 드러났다. 종북몰이가 얼마나 효과적이고 광범위했으면 국정원장이 선거개입을 두고 ‘종북세력 척결’이라고 변명했을까. 이를 두고 항소심 재판부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북한이 대한민국 정부정책에 반대하고 있는 이상, 대한민국의 정부정책 등을 반대하고 비난하는 세력은 곧 북한에 동조하는 세력으로 보고 사이버 활동을 가능하게 했다.

국정원은 북한과의 위법한 관련성에 대한 아무런 언급이나 근거 제시 없이 정부정책에 반대하는 쪽을 비난했다“고 질타했다. 북한이 4대강 사업을 반대하면, 4대강을 반대하는 시민들도 종북세력으로 치부되는 구조라는 말이다. 정치권과 공안당국이 정립한 ‘종북’의 개념과 ‘종북몰이’의 결과는 이렇듯 ‘막수유’가 통하는 후진적인 사회로 퇴보시키는 결과만 초래했다.

검찰 수사가 어떻게 결론 날 지 모르지만, 김 씨에게 만약 국가보안법 7조 찬양고무죄를 적용하더라도 이를 두고 배후세력이 규명됐다고 할 수 없다. 국가보안법을 매개로 한 불특정 다수에 대한 ‘종북몰이’와 ‘막수유’를 검찰은 경계해야 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검찰이 의도적으로 그랬는지, 시류에 부득이하게 편승하게 된 건지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건 검찰이 진실로 배후세력 규명에 의지가 있었다면, 요란한 수사 착수 대신 평소대로 밀행성을 택했을 것이고 ‘아님 말고 식’의 수사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검찰이 어떤 식으로든 ‘막수유’에 맞장구를 치는 순간, 또 다시 ‘만들어진 죄’는 반복된다. 국민의 검찰 신뢰가 낮아질수록 정권의 검찰 신뢰는 높아지고 있다는 현실을 검찰은 지켜만 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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