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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플러스] 10년 일했는데…송별회도 없이 "나가라!"

안현모 기자

입력 : 2015.03.17 08:23|수정 : 2015.03.17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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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저희 파리 특파원인 서경채 기자가 책 한 권을 소개해 드렸습니다.

한 프랑스인이 우리나라 대기업의 현지법인에서 근무한 경험을 책으로 펴낸 거였는데요.

'그들은 미쳤다, 한국인들' 이라는 상당히 도발적인 제목이었습니다.

우리나라의 기업 문화를 아주 비판적으로 다룬 건데요.

기사에는 넣지 않은 다른 일화들을 서경채 기자가 취재파일을 통해 전했습니다.

저자는 원래 일본 회사에서 13년간 일했습니다.

하지만 한국 회사로 옮긴다고 하자 일본인들이 뜯어말렸다고 합니다.

한국인들이 군대식이고 남을 통제하려 한다며 말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출근 첫날부터 갑작스럽게 서울에 있는 회장이 프랑스까지 날아온다는 통보에 부랴부랴 매장에 자사 제품을 까느라 진땀을 빼기도 했습니다.

술 얘기도 빠질 수 없겠죠.

저자는 법인장이 된 뒤에 교육을 받기 위해 한국을 찾았는데요.

교육보다 고역이었던 건 영하 12도의 날씨에 폭탄주를 마시고 또 마셔야 했던 뒤풀이 자리였다고 회상했습니다.

개인적인 삶도 당연히 없었습니다.

토요일에도 일하고 일요일에는 정보를 교환한답시고 골프를 치며 주말을 바쳤습니다.

거의 개인의 존재 이유가 회사인 거나 다름없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기자가 저자에게 한국 기업에 몸담았던 동안 제일 고통스러웠던 기억이 뭔지 물었더니 의외의 답변이 나왔습니다.

그는 해고된 것 자체가 아니라 송별 파티를 해주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10년을 한국식에 맞춰 일했는데 그냥 나가라고 하니 억울하고 섭섭했다는 겁니다.

저자는 책을 쓴 동기를 세 가지로 정리했습니다.

하나는 서양인 입장에서 겪은 한국 기업에서의 기상천외한 시간들을 기록하자는 것, 둘째는 한국의 작은 기업들이 오늘날 글로벌 기업으로 크기까지 명확한 목표 의식이 있었다는 점을 프랑스인들에게 알리려는 목적, 그리고 셋째로 한국기업이 반드시 현지인, 현지 문화와 조화를 이뤄야만 앞으로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다고 설명했습니다.

▶ [월드리포트] "그들은 미쳤다, 한국인들"…프랑스인 눈에 비친 한국 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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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8시 뉴스에서 한 특별한 피아니스트를 소개해 드렸죠.

태어날 때부터 오른손이 없어서 왼손으로만 피아노를 연주하는 영국의 니콜라스 매카시인데요.

프로가 되기까지 다른 사람들보다 두 배, 세 배 훨씬 더 힘들었을 텐데도 그는 오른손이 없는 게 행운이라고 말했습니다.

곽상은 기자가 리포트에는 다 담지 못한 그의 인터뷰를 취재파일에 남겼습니다.

그가 연주하는 한 손 연주곡들은 대부분 처음부터 오른손이 아닌 왼손을 위해 편곡된 곡들입니다.

과거 재능 있는 피아니스트들이 자신은 왼손으로도 이렇게 잘 칠 수 있다는 걸 일부러 뽐내기 위해서 왼손 곡을 만들기도 했고, 또 1,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는 총을 다루는 쪽인 오른팔을 잃어버린 연주자들이 많이 생겨났기 때문입니다.

이런 환경 덕분에 그는 아직 새롭게 도전할 좋은 곡들이 얼마든지 있다며 밝게 웃었습니다.

[니콜라스 매카시/피아니스트 : 오른손 작품은 아주 적은 반면, 왼손 작품은 엄청 많아요. 저는 운이 좋은 거죠. 평생 칠 수 있을만 한 양이 있어요.]

취재기자도 그를 직접 만나기 전까지는 역경을 이겨낸 한 손 피아니스트 정도로 여겼지만, 유쾌한 대화를 나누고 나니 그가 그저 자신의 일을 즐기는 멋진 청년 피아니스트란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는 이번에 한국에 머무는 동안 런던에서 접했던 다양한 한국 음식들을 매일 하나씩 시도해보겠다며 첫 방한에 대한 설렘도 내비쳤다는데요.

어쩌면 그의 신체적인 장애는 그를 표현하는 데 있어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특징일지도 모르겠습니다. 

▶ [취재파일] '오른손이 없는 게 행운'이라는 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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