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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환자도, 건강보험 부담도 커지는데…누구를 위한 제도일까

심영구 기자

입력 : 2015.03.15 13:39|수정 : 2015.03.15 13:39


● 글리벡 약값이 50%나 떨어진 이유

백혈병 치료제로 가장 유명한 의약품은 노바티스의 글리벡이다. 글리벡 100mg 1정의 가격이 21,281원인데 성인에겐 하루 1회 400mg 복용이 권장되니, 하루 약값만 85,000원에 이른다. 한달이면 255만원, 암 환자의 본인부담금이 현재는 5%이니 환자는 12만 7천원 정도를 내면 되지만, 건강보험에서 240만원이나 지급해야 한다. 

오리지널 약으로 특허를 냈던 글리벡 특허는 2013년 6월로 만료됐다. 복제약(제네릭)들이 우루루 출시됐다. 복제약 출시와 함께 글리벡의 가격도 30% 내려가 1정에 15,000원 정도가 됐고, 1년 뒤인 2014년 6월엔 11,000원선까지 떨어졌다. 마찬가지로 하루 1회 400mg씩 복용한다면 하루 약값은 4만 4천원, 한달엔 133만원 정도다. 본인부담금은 6만 6천원 정도로 이전의 절반으로 줄었다.

현재 시판 중인 복제약  15개 중 가장 저렴한 프리벡정은 100mg에 3,795원이다. 역시 하루 1회 400mg씩 복용하면 하루 약값 1만 5천원, 한달엔 45만원 정도, 본인부담은 2만 2천원에 불과하다. 

특허 만료 이후 글리벡 약값은 절반 수준으로, 복제약을 택하면 거의 6분의 1 수준이다. 그만큼 환자 부담이, 건강보험 재정 부담이 줄어든 것이다.


● 복제약이 나오면 약값은 싸진다

오리지널 의약품의 특허는 통상 20년인데, 이 특허기간이 만료되면 오리지널약을 복제한 제네릭(복제약)을 팔 수 있다. 특허 만료 이전에 미리 허가 신청을 한 뒤 기간 만료 후 출시하는데 건강보험에 등재된 약은 자동으로 가격도 내려간다. 오리지널 약값은 원래 가격의 70%, 복제약은 59%가 상한선이다. 오리저널 약값이 최소 30%는 싸지는 셈이다. 특허 만료 후 1년이 지나면 오리지널, 복제약 모두 53.55%로 상한선이 또다시 내려간다. 특허 만료 전 가격 기준으로 최소 46.5%가 내려가게 된다.
 
이른바 '블록버스터급'이라고 불릴 정도로 매출이 높은, 유명 오리지널 의약품은 약값이 비싸도 그만큼 효과가 있다고 봐 의사도 처방을 많이 하고 환자들도 많이 찾는다. 복제약을 내놓는 제약사는 가격 경쟁력으로 승부하려 하기에, 더욱 가격을 내리게 된다. 오리지널 약과 복제약의 가격 경쟁, 복제약끼리의 가격 경쟁이 붙는다. 환자 입장에서는 비슷한 효능의 약들을 훨씬 싸게 살 수 있는 셈이다. 이제까지는 그랬다.
 

● 허가-특허 연계, 그리고 우선판매품목 허가제도

한국과 미국의 자유무역협정, FTA를 체결한 뒤 의약품 정책 관련해 새로 도입된 제도가 의약품 허가-특허 연계제도다. 허가는 복제약의 허가, 특허는 오리지널 의약품의 특허다. 이 제도가 시행되기 이전엔 허가만 받으면 특허권자에게 통보 없이도 복제약을 출시할 수 있었다. 이후 특허권자가 시장 조사를 해보는 등 파악해 복제약이 자신의 특허를 침해하고 있으면 특허권 침해예방 청구소송이나 가처분 신청을 제기해 승소하면 판매를 금지하고 그간의 특허 침해에 대한 손실을 받아낼 수 있었다.

3월 15일부터 허가-특허 연계가 시행됐다. 시행 뒤부터는 복제약을 만든 제약사가 허가를 신청할 때 이 사실을 특허권자인 오리지널 제약사에 통지해야 한다. 특허권자가 이에 대한 이의가 있으면 특허 소송을 내고 식약처에 판매금지 신청을 할 수 있다. 그러면 9개월간 그 복제약의 판매는 금지된다.

오리지널 의약품의 특허기간이 최대 9개월 연장되는 효과가 있고 거꾸로 복제약의 출시는 그만큼 지연되는 셈이다. 의약품 특허를 많이 보유한 미국 제약사들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제도다.

FTA 체결 이전부터 한국에 불리한 독소 조항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복제약을 많이 취급하는 국내 제약사들 전체에서는 향후 10년간 7천억 원 이상의 매출 감소가 우려됐다. 그래서 이 때문에 유예기간이 18개월에서 36개월로 늘어났다. 2012년 3월에 협정 체결하고 2015년 3월까지 유예됐다 이번에 시행되는 것이다.

정부와 국회가 국내 제약사들을 위해 마련한 대책 또 하나는 '우선판매품목 허가제', 흔히 말하는 '제네릭 독점권'이다. 복제약 허가를 신청한 제약사가 특허권자의 특허를 침해하지 않았다는 게 특허심판원이나 법원을 통해 인정되면 우선 판매품목으로 허가받게 된다. 그러면 9개월간 이 복제약만 독점 판매할 수 있다. 오리지널 약과 복제약 1종만 판매되는 셈이다. 우선 판매품목 허가를 받은 제약사는 복제약 시장을 선점할 수 있다. 허가-특허 연계제도 시행 전보다는 못해도 일부 제약사는 손실이 아니라 매출 증대를 기대할 수도 있을 듯하다.


● 환자 부담, 건강보험 재정 부담은 커진다

이런 약을 사먹어야 하는 의료소비자, 환자들에겐 어떨까. 당장 약값이 더 비싸지는 건 아니지만, 약값이 내려가는 시기가 늦어진다. 특허권자가 침해예방 청구소송이나 가처분 신청을 내 그 결과가 나오기 이전에 9개월간 복제약 판매가 금지될 수 있기 때문에 금지된 기간만큼 환자들은 오리지널 약을 원래 가격대로 사먹어야 한다. 건강보험에서 부담하는 약들은 그 차이만큼 건강보험 재정이 더 투입되는 것이다. 그렇게 커진 부담은, 뒤집으면 제약사들의 늘어난 수입이다. 특허를 많이 갖고 있는 미국 제약사들의 이득이 된다.

'우선 판매품목 허가'를 받아 1개의 복제약이 나오면 그나마 좀 낫다. 복제약이 출시되면 일단 오리지널 약값은 원래 가격의 70%, 복제약은 59% 이상을 받을 순 없다. 하지만 제2, 제3, 제4의 복제약이 나오지는 않기 때문에 가격 경쟁을 통해 더 값이 내려갈 여지는 없게 된다. 환자와 건강보험 재정의 부담엔 큰 변화가 없다. 글리벡처럼 약값이 대폭 내려가는 상황은 나오기 힘들게 된 것이다.

6개 보건의료단체가 모인 '건강권 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은 지난 5일 국회에서 '허가-특허 연계제도'의 이행법률안이 통과되자 성명을 냈다. 그중 일부를 소개하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허가-특허 연계 제도는 특허분쟁중인 복제 의약품의 시판을 강제로 지연시켜 환자와 국민들에게 피해를 강요하는 대표적인 한미 FTA 독소 조항이다...

...정부와 국회는 허가-특허 연계제도를 남용하지 못하도록 제재할 방안을 누더기로 전락시켰다.

작년 6월 정부에서 입법예고한 건강보험법 개정안에는 오리지널 제약사의 판매금지 신청으로 인해 복제의약품의 시장 진입이 지연되었으나 추후 특허 쟁송에서 오리지널 제약사가 패소할 경우, 지연으로 인해 손실된 건강보험 재정을 오리지널 제약사가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배상하도록 하는 조항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 개정안은 국회 보건복지위에서 결국 통과되지 못했다. 판매제한 제도를 고의로 악용할 경우 형사처벌을 받도록 하는 조항도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삭제되었다. 오리지널 제약사가 판매금지 제도를 악용하더라도 제대로 처벌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제약사들의 이익만 고려한 제도를 짜다 보니 그 결과 피해는 모두 국민들의 몫으로 남고 한미 양국의 대형 제약사들은 각자의 이익을 챙길 수 있게 되었다. 허가-특허 연계제도와 최악의 이행법안이 통과된 결과 국민들은 경제위기 상황에서 불필요한 약값을 더 내게 되었고 그 피해규모는 지속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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