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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범연의 썸풋볼] 벵거 감독의 특별한 '열쇠' 외질

입력 : 2015.03.13 17:00|수정 : 2015.03.13 17:00



아스날, 런던 그리고 외질

유망주 시절부터 벵거 감독의 관심을 받아 왔던 외질은 결국 아스날 역사상 가장 비싼 선수라는 지위를 얻으며 런던에 합류했다. 그의 재능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레알 마드리드에서 함께 했던 선수들에게는 안타까운 송별을 받으며, 아스날 팬들에게는 기나긴 긴축 정책의 마감을 알리는 신호탄과도 같이 나타난 그가 이제는 비판의 중심에 서 있다.

외질이 '게으르다'한다. '수비 공헌이 별로 없다'한다. 레알 마드리드에 있을 때 비하면 '평범한 선수'가 되었다고 한다. 분명 외질은 수비를 열심히 하는 선수는 아니다. 그는 QPR과의 경기에서 단 두 번의 태클을 시도해 한 번만 성공했으며, 열정적으로 압박에 참여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모든 선수가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압박을 요구하는 현대 축구에서 외질은 반쪽짜리일지도 모른다. 그의 재능은 분명 대단할지 모르나 수비를 동료들에게 일임한 채 공격의 마지막 줄기에 집중하던 전통적인 10번들은 현대 축구에서 도태되어 갔다. 리켈메가 그랬고, 아이마르가 그랬다. 어쩌면 외질도 같은 전철을 밟을지 모른다는 우려가 조금씩 퍼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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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체스, 벵거 그리고 외질

외질이 부상으로 팀을 이탈한 동안 아스날은 산체스의 팀이었다. 모든 공은 산체스에게 집중되었고 그는 여전히 아스날에서 가장 많은 득점을 기록하고 있다. 외질이 복귀하면서 아스날은 벵거 감독이 고민한 흔적을 역력히 드러냈다. 산체스에게 부여된 과한 무게가 그의 햄스트링을 짓누르기 시작했고, 외질은 조연으로 두기엔 너무 아까웠다. 산체스가 잠시 휴식을 취하는 동안 아스날은 다시금 외질의 팀으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그동안의 벵거 감독을 생각하면 너무나 당연한 선택이었는지도 모른다. 선수의 재능을 믿고, 단점의 개선보다는 장점의 극대화를 꾀하는 벵거 감독의 성격상 외질을 굳이 아래로 끌어내리는 것은 낭비라 느껴졌을 것이다. 카솔라가 꾸준히 활약해주는 아스날에게 있어 남은 숙제는 수비에서부터 만들어 오는 빌드업이 아닌, 슈팅으로 연결될 수 있는 침투패스라 할 수 있다. 이 방면에 있어서는 최고의 재능을 자랑하는 외질에게 굳이 수비의 짐을 얹어 주기보다는, 차라리 공격에 집중할 수 있도록 자율성을 부여했다. 아스날 역사상 최고의 '테크니션' 베르캄프의 역할과도 일맥상통한다. 어쩌면 외질에게 낮은 수비 기여도를 이유로 비판하는 것은 옳지 못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는 부여받은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상황이 바뀌면서 문제는 산체스에게서 발생했다. 중앙 공격수와 더불어 사실상 투톱에 가깝게 뛰어오던 산체스 대신 외질이 그 파트너로 낙점되었으며, 산체스는 측면 미드필더에 가깝게 뛰게 되었다. 공격에 있어서는 아스날의 숙제를 풀어줄 수 있는 능력이 있지만, 수비력이 약한 외질과 늘 열정적인 수비를 선보이는 산체스의 장점을 최대한 활용하려는 의도였으나, 산체스의 공격력이 다소 희생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산체스는 자신이 공을 받아든 위치가 페널티 박스와 멀어질수록 공격력이 급격하게 감소하는 선수이다. 이런 산체스에게 현재의 역할은 말 그대로 외질의 조연을 강요하는 꼴이나 다름없다.

산체스는 아직 이런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듯 보인다. 카솔라에게 집중되는 공을 분산시켜 줘야 하지만 산체스가 아스날의 수비형 미드필더 코클랭에게서 직접 공을 받는 횟수는 상당히 낮다. 게다가 예전의 실수는 그대로이다. 불필요한 드리블로 박자를 늦추고, 패스 미스가 잦다. 예전처럼 상대의 골문 앞이라면 비교적 크지 않은 문제였겠지만, 이제는 위치상 산체스의 실수가 치명적인 역습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고려해야만 한다.

벵거 감독은 산체스가 외질을 축으로 움직이는 선수로 변화할 수 있게 지속적인 지도를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산체스가 수비에서부터 외질로 연결되는 선의 역할을 등한시할 경우 아스날은 카솔라에게 집중되는 압박을 견디기 어려울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 발생하여 불가피하게 외질이 아래로 내려와 코클랭에게서 직접 공을 받은 횟수가 급격히 올라간 것이 모나코와의 챔피언스 리그 경기였고, 그 경기에서 아스날은 1-3으로 무기력한 패배를 맛보아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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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 로시츠키 그리고 외질

외질에게 수비의 부담을 덜어 줬음에도 불구하고 공격에서 눈에 띄는 활약을 보이지 못한다고 할 수도 있다. 꾸준히 공격 포인트를 기록하고는 있지만, 상대 수비를 겁먹게 하는 화려한 모습은 분명 아니다.

이는 외질의 파트너인 지루의 책임도 존재한다. 외질은 공격수가 골문을 향하고 있을 때, 한 두 번의 터치만으로 슈팅을 시도할 수 있도록 결정적인 패스를 제공하고는 한다. 그러나 지루는 골대를 등진 상태에서 공을 지켜 내는 것에 집중하는 공격수. 외질의 능력이 제대로 힘을 발휘하기 어려운 유형이다. 오히려 월콧과 더 좋은 호흡을 보이기도 했지만, 제공권에 약점을 지닌 현재의 아스날이 지루를 빼기는 어렵다.

결국, 외질은 로시츠키가 보인 모습을 참고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로시츠키는 수비를 등진 채 곧바로 공을 내어주는 지루를 십분 활용하는 빠른 돌파를 자주 선보이며 나이에 걸맞지 않은 활약을 보여 주었다. 외질은 공격수에게 패스한 후 옆으로 이동하며 패스를 받을 각도를 만들어 낸다. 또 다른 패스 기회를 엿보는 것이다. 달리 로시츠키는 골문 방향으로 직선적인 움직임을 가져가며 리턴 패스를 이용한다. 또한, 외질은 큰 속도 변화 없이 지속적으로 동료에게 접근해 주는 선수이다 (이 때문에 뛰지 않는다, 게으르다 등의 오해를 받고 있다). 이에 반해 로시츠키는 속도를 급격히 변화시켜 상대 수비에 혼선을 주고는 한다. 지루의 파트너로는 로시츠키와 같은 움직임이 더 파괴력 있는 결과를 만들어 낼 가능성이 높을 수 있다.

2차 대전을 치르는 동안 독일은 에니그마 암호 시스템을 통해 자신들을 감췄고, 영국은 튜링이 이를 풀어헤쳤다. 이젠 독일에서 온 외질이 자신을 상대로 깊이 틀어박힌 영국 축구를 맞이해 그 해답을 구하고 있는 형국이다.

외질은 아스날로 옮겨 온 이후 여러 번의 굴곡을 경험했고, 상체를 단단히 키우며 스스로 준비도 충실히 해왔다. 노력하는 천재는 무서울 수밖에 없다. 많은 추구 선수들이 모험적인 시도를 하지만, 결국 그 성공률은 선수의 클래스에 달려 있기 마련. 아스날은 아직도 젊고, 발전할 수 있는 재능들을 주축으로 팀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특별함을 만들어내는 선수, 외질이 그 중심에서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여전히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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