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7월 24일생.
키 56m에 몸무게 1,400톤!
저는 대한민국 1호 로봇이자 슈퍼 히어로인 로봇 태권브이입니다.
저는 76년도에 만화영화로 처음 데뷔했어요.
그때 태권소년 훈이와 함께 악당 카프 박사와 인조인간 메리를 멋지게 물리쳤지요.
그 당시 서울에서만 28만 명의 관객이 제 이야기를 보러 찾아올 정도로, 인기가 많았습니다.
제 자랑 좀 할까요?
저는 한국 최초 로봇으로, 산업통상자원부에도 등록된 군사 로봇이에요.
사람의 주민등록번호와 같은 일련 로봇 번호도 받았지요.
그리고 저는 태권도 명예 4단이에요.
2007년 국기원에서 사범으로서도 능력이 충분하다고 인정받은 진짜 '태권도 실력자'이죠.
'달려라 달려 로보트야~ 날아라 날아 태권브이~'
제가 등장할 때 나오는 이 노래는 한국 최초의 애니메이션 OST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지요.
'세월이 가면'을 부른 가수 최호섭 씨가 이 노래를 부른 주인공이죠.
76년도에 제 이야기가 나온 후, 수십만 명의 아이들이 저를 영웅이라며 좋아했어요.
요즘의 뽀통령(뽀로로) 정도의 인기였다면 이해가 되실까요?
TV에도 출연을 하면서 명실상부 '대한민국 대표 영웅'으로 자리 잡았지요.
하지만 제 인생은 그렇게 순탄치만은 않았어요.
76년도의 제 이야기의 원본 필름을 미국으로 수출하던 중에 그 필름이 사라지고 말았어요.
설상가상으로 나머지 복사본 필름도 대부분 폐기되거나 상태가 좋지 않았지요.
그때 저는 세상의 빛을 다시 못 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사로잡혔어요.
게다가 어떤 사람들은 제가 일본 로봇의 유사품이다, 표절이다 하면서 저를 인정해주지 않기도 했지요.
하지만 아빠가 제게 항상 말해주신 게 있어요.
아빠는 저를 만들면서 일본 로봇의 냄새를 안 나게 하려고 노력하셨대요.
순수한 한국 애니메이션이라는 큰 목표를 두고, 저를 '우리 것'으로 만들기 위해 애를 많이 쓰신 거죠.
그러니 여러분, 제가 일본 '마징가 Z'의 표절이라고 욕하지 말아주세요.
그렇게 사람들에게 잊히는 건 아닐까 불안한 나날을 보냈는데요.
지난 2003년, 우연히 영화진흥위원회 창고에서 제 이야기를 다룬 필름 복사본이 발견됐어요.
그래서 디지털로 복원 작업이 시작됐고, 2007년 영화 (로보트 태권브이 디지털 복원판)로 복귀할 수 있었어요.
이때 아빠는 '죽은 자식이 다시 살아 돌아온 것 같다'며 감격하셨죠.
다사다난했던 인생을 살아온 제가 올해로 벌써 40살, 중년이 됐어요.
세월 참 빠르네요.
요즘은 어떻게 지내냐고요?
아빠가 취미로 그리는 수묵화의 모델을 하며 시간 여행을 즐기고 있어요.
내년쯤에 제가 등장하는 수묵화 전시회를 열 예정이시라고 하니, 곧 만날 수 있겠죠?
그때 그 아이들은 어떻게 변했는지 다들 궁금하네요.
아직도 누군가는 저를 영웅으로 기억하고 있겠죠?
저를 가슴 한편에 묻고 하루하루를 치열히 사는 사람들 덕에 저도 항상 감사함을 느껴요.
중년이 지나면 제게도 노년이 찾아오겠죠.
하지만 슈퍼 히어로로 기억해주는 사람이 있는 한, 저는 행복할 거에요.
(SBS 스브스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