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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요청 없으면 경호 못 한다더니…경찰 '뒷북 대응' 논란

김지성 기자

입력 : 2015.03.11 14:32|수정 : 2015.03.11 14:32


정부와 새누리당이 11일 국회에서 '주한 미 대사 피습사건 관련 당정 협의회'를 열었습니다. 리퍼트 대사가 습격을 당한 지 6일 만입니다. 이 자리에서 경찰청은 "외교관의 요청이 없더라도 위험성이 있다고 판단될 경우 신변 보호를 적극 실시하겠다"고 보고했습니다. 여기서 의문이 남습니다. "왜 이제 와서?" "피습 사건 전에는 불가능했나?"

● 경찰, "美 대사는 경호 대상 아니다" 강조

피습 사건이 발생한 지난 5일 오전, 경찰은 "주한 미국 대사는 경찰의 경호 대상이 아니다"라는 점을 여러 차례 밝혔습니다. 경호 규정상 미국 대사는 요인 보호 대상이 아니며, 대사관 측의 요청이 있어야 경호에 나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대사관은 그동안 보안을 이유로 대사의 일정을 사전에 알려주지 않았고 경호도 요청하지 않았다고 경찰은 강조했습니다. 피습 당일 행사도 그 날 아침에야 통보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미 대사는 대사관 보안과에서 자체적으로 경호한다고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경찰이 "미 대사는 '요인 보호 심의위원회'의 심의를 거쳐야 보호 대상자로 선정된다"고 했다가 "경찰청장이 경호 대상으로 직접 지정할 수 있다"고 정정하는 해프닝도 있었습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경호 규정 등에 따르면, 경찰의 경호 대상은 크게 세 범주로 나뉩니다. 국내 요인 중에선 대통령과 대통령의 가족, 전직 대통령, 국회의장과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 국무총리와 같은 4부 요인이 포함됩니다. 여기에 우리나라를 방문하는 장관급 이상 외국 귀빈과, 마지막으로 경찰청장이 지정하는 인사가 경호 대상에 포함됩니다. 리퍼트 대사는 국내 요인이나 우리나라를 잠깐 방문하는 외빈이 아니라 우리나라에 상주하는 대사이기 때문에, 세 번째 범주에 해당합니다. 경찰청장이 지정해야 경호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바꿔 말하면, 경찰청장이 지정만 하면 경호 대상이 됩니다.

피습 당시 현장엔 4명의 경찰관이 있었습니다. 서울 종로경찰서에서 나온 정보경찰 2명, 외사경찰 1명, 그리고 서울지방경찰청 외사과 소속 경찰 1명입니다. 이 서울청 외사과 경찰의 직책을 놓고도 경찰은 처음엔 '수행통역'이라고 했다가 '연락관'으로 최종 정리했습니다. '수행'이라고 하면 자칫 '경호' 업무까지도 포함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고, 그럴 경우 경찰이 경호에 실패했다는 '책임론'이 제기될 것을 염두에 둔 것으로 여겨집니다. 이 연락관의 임무는 대사관에 계속 나가 있다가, 혹은 대사를 따라다니다가 대사관 측에서 경비나 경호 요청이 있으면 경찰에 연락하는 것이라고 경찰은 설명했습니다. 경호 임무는 없다는 뜻입니다.

행사를 주최한 민화협 측은 현장에 있던 종로경찰서 경찰이 김기종 씨를 알아봤다고 얘기합니다. 김 씨가 사전 예약이나 등록 없이 갑자기 찾아와 행사장으로 들어가자, 종로경찰서 경찰이 "왜 등록도 되지 않은 김기종을 입장시키느냐"고 민화협 실무자에게 얘기했다는 것입니다. 민화협 실무자는 김 씨가 이 전에도 행사에 온 적이 있어 안면이 있었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손으로 이름표를 써주고 입장시켰다고 합니다. 뒤늦게 종로경찰서 경찰의 얘기를 듣고 실무자가 조치를 취하기 위해 김기종 씨에게 가는 도중 김 씨가 리퍼트 대사에게 뛰어들었다는 게 민화협의 설명입니다. 김 씨가 과거 일본 대사에게 시멘트 덩어리를 던진 전력이 있었다는 점에서 적극적인 저지가 못내 아쉬운 대목입니다.

● 경찰 "대사관이 자체 경호…경호 인력은 파악 안 돼"
[슬라이드 포토]행사장 밖에도 경찰 기동대 1개 제대가 출동해 대기중이었습니다. 1개 제대는 25명입니다. 미 대사관 측에서 어떤 요청도 없었지만,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행사장 주변에 경찰을 배치했다고 합니다. 피습 사건이 나기 바로 전날, 미 대사관 근처에선 웬디 셔먼 미 국무부 차관의 발언을 비판하는 집회가 잇따랐습니다. 앞서 셔면 차관은 "민족 감정은 여전히 악용될 수 있고, 정치 지도자가 과거의 적을 비난함으로써 값싼 박수를 얻는 것은 어렵지 않다"며 일본을 두둔하는 듯한 발언을 해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혹시나 무슨 일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찰도 파악했던 셈입니다.

경찰 대응이 미덥지만은 않은 이유가 하나 더 있습니다. "미 대사관이 자체적으로 경호한다고 했는데, 그럼 대사관 측 자체 경호 인력이 얼마나 되는지 우리 경찰이 파악한 게 있느냐"고 경찰에 물었습니다. "피습 당시 현장에는 경호 인력이 몇 명이나 있었는지 파악됐느냐"고 물었습니다. "모른다"는 게 경찰의 답변이었습니다. 대사관에 나가 있는, 혹은 대사를 따라다니는 '연락관'을 통해 대사관 측 경호 인력이 파악 안 되느냐고 물었지만 "파악이 안 된다"는 답만 돌아왔습니다. "오히려 외국 공관에 대한 사찰로 비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내비쳤습니다.

피습 당시 현장 사진이나 동영상을 보면, 미 대사관 측 경호 인력은 보이지 않습니다. 또, 사건 현장에 대사관 측 경호 인력이 있었다는 말은 경찰 브리핑 등 어디에도 없습니다. 리퍼트 대사가 사실상 무방비 상태에 있었던 셈입니다.

피습 사건 이후 경찰은 외교관 보호를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수립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이 전에는 보호 범위가 '공관이나 대사관저 경비'였다면 앞으로 '외교관 신변 보호'까지로 넓히겠다는 내용입니다. 또 외교관의 요청이 있을 때는 물론이고 요청이 없더라도 위험성이 있으면 신변 보호에 나서며, 위험성이 높을 경우엔 경찰 경호 대상자로 지정해 경호를 실시하기로 입장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럼에도, '왜 피습 사건 이전에는 이렇게 하지 못했나?'라는 의문은 여전히 풀리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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