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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치는 에너지 매력적" 무속에 푹빠진 미국인 아저씨

입력 : 2015.03.11 08:19|수정 : 2015.03.11 08:19


"굿은 무의식의 영역까지 모든 에너지를 폭발시키는 의식입니다. 무척이나 매력적이에요."

마흔이 넘은 미국인 '아저씨'가 한국의 무속 을 소재로 석사 논문을 써 눈길을 끕니다.

그것도 외국인으로서는 생소할 수밖에 없는 국어국문학과에서 학위를 땄습니다.

경희대에 따르면 그 주인공은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를 최근 졸업한 바니 바티스타(45)씨.

그는 '굿과 네오샤머니즘의 비교를 통한 한국어 교육 방안 연구'라는 논문을 통해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한국어 교육과 무속 문화의 접목을 시도했습니다.

바티스타씨는 "무속 세계에서는 여성이 큰 힘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으며, 다른 나라의 샤머니즘과는 달리 한국의 굿 문화가 현대에까지 생명력을 유지한 점도 특이했다"고 그 매력을 꼽았습니다.

그는 지난 2007년 "외국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에 영어 강사로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원래 1년가량 머무르려던 계획은 8년을 넘겼고, 그 사이 한국인 아내를 만나 가정까지 꾸렸습니다.

미국에서 음악을 전공한 바티스타 씨는 지난 2013년 경희대 국어국문학과 석사 과정에 입학했습니다.

흔한 외국인 유학생들처럼 국제경영이나 영어영문학을 전공하면 재미가 없을 것 같아서 이왕 온 김에 한국어를 파 보자고 작심했습니다.

"어학당에서 배운 한국어와 실생활에 쓰이는 한국어는 무척이나 달랐어요. 그래서 '미녀들의 수다' 같은 TV 프로그램을 열심히 봤습니다. 저보다 조금 수준이 높을 뿐, 출연자들은 어학당에서 한국어를 배웠다는 점에서 저와 같았거든요." 바티스타씨는 한국어와 익숙해지려고 서울을 떠나 멀리 전남 고흥에서 원어민 강사 생활도 했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는 교양 과목으로 수강한 민속학에서 한국의 굿을 접하고 그 매력에 빠져 연구 주제로 삼았습니다.

처음 직접 내림굿(신을 받아들여 무당이 되게 하는 굿)을 봤을 때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바티스타씨는 "내림굿은 평생에 한 번 하는 굿이기에 볼 기회가 많지 않다"며 "굿 전에는 수줍음을 많이 타고 목소리도 작았던 내성적인 사람이 굿 이후에는 눈을 '번쩍' 뜨더니 목소리도 커지고 성격이 180도 바뀌어 너무나 신기했다"고 되돌아봤습니다.

그는 논문에서 '구지가' 같은 고전문학뿐만 아니라 '신난다'나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표현과 속담 등에서 엿볼 수 있듯 한국어 여기저기에 무속적인 요소가 짙게 배어 있음을 지적했습니다.

또 이를 근거로 단순한 언어 교육을 넘어서 문화 이해의 차원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들에게 무속 문화도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바티스타씨는 "많은 한국인은 무속에 관심이 없다고 하지만 중요한 일을 앞두고 점을 보는 등 실제로는 무속이 생활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며 "한국을 완전히 이해하려면 정신문화의 뿌리를 이루는 무속 문화도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앞으로도 무속을 계속 연구하고 국문과 박사 학위도 딸 계획입니다. 기회가 된다면 지방으로 내려가 부모로부터 무당 신분을 물려받은 '세습무'도 연구하고 싶어요."

(SBS 뉴미디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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