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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수엘라, 차베스 전 대통령 사망 2주기 추모

입력 : 2015.03.06 04:07|수정 : 2015.03.06 04:07

경제난속 '신화적인 카리스마'도 점차 희석돼


베네수엘라가 5일(현지시간)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의 사망 2주기를 맞았다.

이날 수도 카라카스를 포함한 베네수엘라 전역에는 차베스를 신봉하는 이른바 '차비스타스'들이 새벽부터 축포를 터트렸다고 울티마스 노티시아스 등 현지 언론들이 전했다.

차베스는 군 장교였던 1992년 쿠데타를 도모했다가 실패한 뒤 정계에 뛰어들어 1998년 대통령에 당선돼 14년간 중남미의 대표적인 좌파 지도자로 장기 집권했으나 암과 투병하다가 2013년 이날 58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차베스가 창설한 집권 통합사회주의당은 이날 오후 카라카스 볼리바르 광장에서 '반제국주의 법정'을 개최하는가 하면 차베스의 시신이 안장된 군 혁명박물관에서는 추모식이 거행될 예정이다.

과거 '산의 병영'으로 불렸던 이곳은 차베스가 1992년 2월 당시 카를로스 안드레스 페레 정부를 몰아내려고 쿠데타를 일으켰던 장소다.

그의 계승자인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은 차베스를 정신적인 지주로 추앙하고 있다.

사망한 지 2년이 지나고 나서도 지지자들에게 '신화적인 존재'로 남아있는 차베스의 모습은 베네수엘라의 곳곳의 벽화와 현수막, 포스터 등에 산재하고 있고 정부 여당의 행사에는 어김없이 그의 대형 사진이나 걸개그림이 등장한다.

차베스는 집권 기간 막대한 석유 매장량을 국가 재정의 기반으로 삼아 '21세기 사회주의'라는 자신만의 경제 모델을 실행했다.

차베스는 2005년부터 '페트로카리브' 프로그램을 통해 역내 국가들에 국제 시세보다 훨씬 저렴하게 원유를 공급하며 경제적 버팀목 역할을 하기도 했다.

철저한 반미를 추구하면서 역내 국가들에 기름을 지원하고, 빈민층 위주의 포퓰리즘 정책을 펼쳤던 그에 대한 '향수'는 베네수엘라의 경제 위기가 도래하면서 점점 지지자들 사이에서 존재감을 잃어가는 양상이다.

차베스가 사망하기 5개월 전인 2012년 10월 자신이 차비스타스라고 생각한다는 베네수엘라 국민은 44%였으나 작년 12월에는 22%로 감소한 설문조사 결과가 이를 반영하고 있다고 한 정치 분석가는 지적했다.

베네수엘라는 국제유가의 지속적인 하락으로 재정 위기를 맞고 있고 60%대에 달하는 높은 인플레이션율과 각종 생활필수품 난까지 겹친 가운데 국가 채무 불이행(디폴트) 위기마저 거론되고 있다.

이 때문에 마두로 대통령은 올해 초 중국과 러시아를 포함한 중동의 산유국들을 방문하면서 차관을 요청하고 산유량 감산을 촉구하는 등 '경제 원조 순방'에 나서기도 했다.

작년 2월에는 이러한 경제난과 치안 부재에 항의하는 대학생들의 시위가 전국적인 반정부 시위와 이에 대응하는 친정부 시위로 수개월간 확산하면서 43명이 희생됐다.

최근 일부 지역에서 반정부 시위의 조짐이 다시 이는 가운데 수도 카라카스의 시장이 쿠데타 혐의로 체포되는가 하면 야당 의원이 공모한 혐의로 지목되는 등 공안 정국이 조성되고 있다.

작년 시위사태에 벌어진 인권 유린의 책임을 물어 미국이 이에 책임이 있는 베네수엘라 전·현직 고위 관리들의 자산을 동결하고 비자 발급을 제한하는 제재를 하자 마두로 대통령은 '반미'의 기치를 높이고 있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자국에 주재하는 미국 외교관 수를 80% 줄이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하는가 하면 미국인 관광객들의 비자 면제 혜택을 최근 없앴다.

그러나 차베스의 절친이자 사회주의 지도자로서 굳건한 동지였던 피델 카스트로 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이 노쇠한 가운데 작년 말 라울 카스트로 의장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53년 만에 외교 관계를 정상화하기로 함으로써 베네수엘라는 외교적으로 다소 고립되는 양상으로 비친다.

쿠바와 베네수엘라를 포함한 중남미 좌파국가들의 결성체인 '미주를 위한 볼리바르 동맹'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으나 영향력이 절대적인 쿠바가 미국을 포함한 유럽 국가들과 다시 손을 잡으면서 취하는 실용주의 노선은 이들 국가가 가야 할 길을 고민하게 하는 일이기도 하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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