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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남았길…5·18 당시 정부양곡 운반한 시민군을 찾습니다"

입력 : 2015.03.04 16:37|수정 : 2015.03.04 16:37


광주시의 한 퇴직 공무원이 5·18 당시 쌀이 떨어져 정부양곡을 요청하러 시청에 찾아왔다가 항전지인 옛 전남도청으로 돌아간 시민군의 생사를 찾아 나섰습니다.

계엄군의 광주 점령에 시민들이 거리로 나서 항거하다가 총칼에 쓰러졌던 1980년 5월.

당시 광주시청에서 정부양곡 공급 업무를 담당했던 최림열(69)씨는 그해 5월 21일 오전 9시 30분 정부양곡 창고장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무장한 시민군들이 찾아와 쌀을 달라고 한다"는 70대 창고장의 말에 최 씨는 "지금 쌀을 건네면 당신이 처벌받을 수도 있다"며 시민군들에게 직접 시청으로 오도록 권유했습니다.

시민군이 온다는 소리에 사무실에 있던 30여 명의 동료들은 모두 자리를 비웠고 최 씨는 40여분 후 부서진 자동차를 타고 온 시민군 11명을 홀로 맞았습니다.

최 씨는 "내 눈에는 총과 각목을 든 시민군이 아니라 다 헤어진 바지차림에 양말도 없이 슬리퍼만 신은 20대 초반의 어린 학생들이었다"고 회고했습니다.

시민군들은 밥은 먹었냐는 최 씨의 인사말에 "밥을 먹은 지 사흘이나 지났다"며 힘없는 목소리로 답했고 최 씨는 인근 식당으로 데려가 식사를 제공했습니다.

이어 사무실로 돌아와 쌀 다섯 가마니짜리 정부양곡 전표를 적어 건네며 "쌀이 떨어지면 다시 와라. 민주화운동을 하는 사람들이니 행동을 각별히 주의해달라"는 당부를 하고 돌려보냈습니다.

그러나 2시간쯤 지났을까, 계엄군이 시내에서 시민들을 향해 총을 쏘는 소리가 계림동에 있던 시청사까지 들려왔고 시민군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이후 계엄사령부가 도청에서 정부양곡 표시가 된 쌀자루를 발견하고 최 씨가 양곡전표를 건넨 사실이 발각되면서 최 씨는 계엄사에 불려가 조사를 받았고 해직됐습니다.

5·18특별법 제정으로 지난 1989년 9월 복직됐지만 최 씨는 2005년 퇴직은 물론 이후에도 매년 5월이면 그때 그 시민군들이 떠올랐습니다.

최 씨의 아들은 아버지의 바람을 들어주기 위해 지난달 21일 5·18기념재단 웹사이트에 '5·18 당시 정부양곡을 도청항쟁 지도부로 가져간 시민군을 찾습니다'라는 글을 올렸습니다.

최 씨는 "시민군들을 보내고 내 귀로 직접 계엄군의 총성을 들었다. 그 때 도청으로 보내지 말았어야 했나 하는 자책감이 자주 들었다"며 "일을 하면서 그들의 이름을 안 물었던 게 후회가 된다. 꼭 살아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한 학생이 당시 순천 농전(농업전문대학)을 다니는데 고모집에 왔다가 5·18이 터져 시민군에 합류했다고 말해 학교 측에 문의도 해봤으나 소득이 없었다"며 "당시 시민군이나 주변인들의 연락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SBS 뉴미디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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