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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드리 은행나무 가로수 50여 그루 '싹뚝'…주민 허탈

입력 : 2015.02.26 17:01|수정 : 2015.02.26 17:01


"가을마다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 터널이 장관이었는데, 이제는 추억 속의 풍경이 됐습니다. 마을의 상징이 사라진 것 같아 허탈합니다"

충북 옥천군 안내면 현리에 사는 권명길(56)씨는 허옇게 밑동을 드러낸 채 땅바닥에 드러누운 아름드리 은행나무를 보면서 짙은 아쉬움을 토해냈습니다.

마을 앞 국도 37호선에 서 있던 수령 40여년 된 은행나무 57그루가 도로 확장공사로 인해 모두 잘려나갔기 때문입니다.

이들 나무는 1970년대 초반 심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 뒤 지름 1m 넘는 거목이 돼 풍성한 나뭇가지로 터널을 형성하면서 지역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은행 잎이 노랗게 물드는 가을이면 이국적인 풍경을 렌즈에 담으려는 사진작가와 드라이브에 나선 시민들이 몰려 북새통을 이룰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이들 가로수의 운명은 대전지방국토관리청이 2차로인 도로를 4차로로 확장하고, 선형을 반듯하게 바로잡는 공사에 나서면서 180도 바뀌었습니다.

가로수 길이 사라질 위기에 놓이자 주민들은 대전지방국토관리청에 보전대책을 호소하는 등 '명품' 은행나무길 지키기에 나섰습니다.

옥천군도 이 기관에 여러 차례 공문을 보내 은행나무를 다른 곳으로 옮겨 심던지, 확장되는 도로의 중앙에 그래도 남겨두는 방안 등을 제안했습니다.

그러나 한 그루당 500만 원 가까이 드는 이식비용이 문제였습니다.

대전지방국토관리청의 한 관계자는 "가로수 관리를 맡는 옥천군에 대책을 요구했지만, 원칙적으로 보존만 고집할 뿐 예산조달방안 등을 내놓지 않았다"며 "이 구간은 확장과 더불어 바닥 높이를 1m가량 올리도록 설계돼 있어 가로수를 중앙분리대 형태로 남겨두더라도 이식이 필요한 상황이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옥천군 측은 "군에서 예산을 세워 직접 이식하는 방안을 검토했지만, 57그루를 옮겨심으려면 3억 원이 넘는 돈이 필요했다"며 "큰돈을 들여 이식하더라도 생존 가능성 등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두 기관이 오랜기간 공문만 주고받으면서 허송세월하는 사이 도로 공사는 턱밑까지 진행됐고, 더이상 공사를 미룰 수 없게 된 대전지방국토관리청은 옥천군산림조합에 가로수 벌채를 요구했습니다.

이곳에는 어제(25일)부터 인부들이 투입돼 나무 베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안내면주민자치위원회의 김중배 위원장은 "두 기관이 서로 예산 탓만 했을 뿐, 은행나무를 살리겠다는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며 "지역의 상징이던 명품 가로수가 사라지게 된 것을 주민 모두가 아쉬워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옥천군산림조합은 베어낸 은행나무를 제지업체에 종이의 원료로 공급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SBS 뉴미디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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