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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암이 6기가 됐는데 책임 없대요, 얼마나 웃깁니까" ②

심영구 기자

입력 : 2015.02.17 10:54|수정 : 2015.02.17 10:54


임상시험은 말 그대로 테스트, 시험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 고시 <의약품 임상시험 관리기준>에서는 임상시험을 이렇게 정의한다. 
 
"임상시험"(Clinical Trial/Study)이란 임상시험용 의약품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증명할 목적으로, 해당 약물의 약동(藥動)·약력(藥力)·약리(藥理)·임상(臨床) 효과를 확인하고 이상반응을 조사하기 위하여 사람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시험 또는 연구를 말한다."

다만 사람을 대상으로 한 시험이기 때문에 시험자는 대상자를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이에 대해서는 이렇게 나와 있다.

다. 시험자의 대상자 보호의무
1) 대상자에 대한 임상시험과 관련한 모든 의학적 결정은 의사·치과의사 또는 한의사의 자격을 가진 시험책임자 또는 시험담당자가 한다.
2) 임상시험 중 또는 임상시험 이후에도 시험책임자는 임상시험에서 발생한 모든 이상반응(임상적으로 의미있는 실험실 실험 결과의 이상을 포함한다)에 대해 대상자가 적절한 의학적 처치를 받을 수 있도록 하여야 하고, 시험책임자가 알게 된 대상자의 병발(倂發) 질환이 의학적 처치가 필요한 경우에는 그 사실을 대상자에게 알려야 한다.

...

또 대상자 동의가 반드시 필요한데 동의받는 내용은 이렇다.

가) 임상시험이 연구를 목적으로 수행된다는 사실
나) 임상시험의 목적
다) 임상시험용 의약품에 관한 정보 및 시험군 또는 대조군에 무작위배정될 확률 
...
바) 검증되지 않은 임상시험이라는 사실
사) 대상자(임부를 대상으로 하는 경우에는 태아를 포함하며, 젖을 먹이는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에는 영유아를 포함한다)에게 미칠 것으로 예상되는 위험이나 불편
아) 임상시험을 통해 대상자에게 기대되는 이익이 있거나 대상자에게 기대되는 이익이 없을 경우에는 그 사실
자) 대상자가 선택할 수 있는 다른 치료방법이나 종류 및 그 치료방법의 잠재적 위험과 이익  
차) 임상시험과 관련한 손상이 발생하였을 경우 대상자에게 주어질 보상이나 치료방법
...
파) 대상자의 임상시험 참여 여부 결정은 자발적이어야 하며, 대상자가 원래 받을 수 있는 이익에 대한 손실 없이 임상시험의 참여를 거부하거나 임상시험 도중 언제라도 참여를 포기할 수 있다는 사실
...


이렇게 규정상으론 갖춰져 있으나, 통상 임상시험에 참여하는 말기 암 환자들은 시험보다는 치료에 비중을 둔다. 병원에서의 항암 치료는 더 이상 듣지 않으니, 다른 방법을 찾다가 아직 검증이 완료되진 않았지만 가능성이 있다는 신약에 매달리는 것이다. 그래서 '임상시험'이라기보다는 '치료'라고 생각하게 된다. 

취재 중 자문을 구했던 권용진 서울시립북부병원 원장의 말이다.

"말기암 환자가 임상시험에 참여할 때는 환자 스스로 현대 과학기술로는 본인의 치료가 거의 마무리 됐다는 것을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치료법으로는 더 치료할 게 없다, 그러면 좋은 마무리를 할 것이냐, 아니면 인류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임상연구에 참여할 것이냐, 이런 관점에서의 결정이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고 본인이 마지막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만 갖고 참여할 경우엔, 임상시험은 실패할 확률이 매우 높기 때문에 더 큰 실망을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임상시험은 어디까지나 신약 검증을 위한 테스트이기 때문에 아무리 말기 암 환자라고 해도 이를 치료의 연장이라고 생각하면 안된다는 말이다. 하지만 임상시험을 또다른 치료의 한 방편으로 여기는 게 환자들만의 책임일까. 역시 취재 중 자문을 구했던 안기종 환자단체연합회 대표의 말이다.

"말기 암환자는, 이 약이 아니면 죽을 수밖에 없는 이런 상황에서 임상시험 제안을 받고 참여하게 되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중간에 부작용 등으로 고통이 심해져도 중단하기가 쉽지 않죠. 또 담당 의사가 그런 환자를 충분히 배려해주면 좋지만 의사에겐 임상시험을 계속 유지해야 하는 욕심이 있을 수 있죠."

"동의를 받는 과정에서도 이러이러한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걸 강조해서 설명해야 하는데 그건 약하게 설명하고 받는 혜택에 대해 많이 설명하고 있어요. 의료적 혜택도 받을 수 있고 교통비도 받을 수 있고.. 내용이 어렵기도 한 데다 이런 혜택 부분에 집중하니까 다른 방법이 없는 환자들이 쉽게 서명하고 참여하게 되는 거죠."


말기 암 환자의 생존율을 높이기 위한 신약을 개발하는 데 효과가 있는지 검증하려면 말기 암 환자에게 투약해봐야 알 수 있다. 효과가 있으면 제약사나 의사나 환자나 다 좋겠으나, 효과가 없으면 제약사는 여기에 들어간 비용 문제가 아깝겠고 의사도 이에 투입한 자신의 노력과 시간이 그러할 것이다. 환자는... 호전되지 않고 결국은 사망할 것이다. 이 지점에서 이해가 크게 충돌한다.

어차피 얼마 살지 못할테니 신약 개발에 기여하는 게 좋지 않겠냐는 말은 그럴 듯하나 이를 그대로 받아들여 스스로 자신의 몸을 내어줄 환자가 얼마나 될까. 혹시나 효과가 있어 더 살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시험에 참여하는 게 인지상정이다. 대상자를 모집할 때도 이런 마음을 이용하는 측면이 분명히 있다는 얘기다.


심영구 취재파일용
서재우 씨 사례는 그럼 어떨까.

먼저 위약을 투약받았다는 것 자체를 문제 삼긴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임상시험 중 목과 서혜부에 혹이 생겼는데 심각해보이지 않으니 환자의 동의를 받고 그대로 시험을 진행했다는 데엔 문제 제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시험자의 대상자 보호 의무에 "시험자(의사)는 임상시험에서 발생한 모든 이상반응에 대해 대상자가 적절한 의학적 처치를 받을 수 있도록 하여야 하고, 시험책임자가 알게 된 대상자의 병발(倂發) 질환이 의학적 처치가 필요한 경우에는 그 사실을 대상자에게 알려야 한다"고 분명히 명시돼 있다. 연구자라도 이렇게 해야 하는데 동시에 의사다. 눈앞에 있는 사람에게 다른 암 징후가 나타났는데 이를 1년 넘게 그냥 두고 봤다는 건 좀 의아하다. 이미 말기 암이니 추가 암이 하나 정도 더 생겨도 문제 없다고 봤던 건가.

또 임상시험 참여가 치료의 연장이 아니라 신약 개발에 일정 정도 기여한다는 목적이라면, 이를 지금보다 더 분명하게 알렸어야 했다. 의사와 임상간호사는 충분히 알렸다고 주장하겠으나, 의료계 현실에 비춰보면 어디까지나 그쪽 입장으로 보인다. 현재의 임상시험은 의뢰자와 시험자의 편의와 이익에 비해,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는 대상자인 환자에 대한 배려가 너무 없는 것 같다. 임상시험에 성공하면 그때까지 치료제가 없었던 많은 환자들을 살릴 수도 있다. 그만큼 의미 있는 공익적 활동인데 그들에 대한 배려 내지는 혜택은, 교통비 약간에, 혹시나 약이 효과가 있으면 조금 더 살 수도 있어요 하는 막연한 기대뿐인 것이다. 

한국은 임상시험을 많이 하는 나라다. 아시아에선 가장 많고 세계에서도 10위 안에 든다고 한다. 2014년 승인받은 임상시험은 652건으로, 2010년 439건에 비하면 50% 이상 급증했다. 그만큼 임상시험 여건이 좋다는 것, 우수한 의료진과 시설이 있고 무엇보다 임상시험에 참여하는 대상자가 많다는 의미다.

그만큼 사고도 많다. 최근 3년간 임상시험 중 발생한 '중대 이상약물 반응보고'는 476건이나 된다.

"중대한 이상반응·이상약물반응"(Serious AE·ADR)는 이렇다.
1) 사망하거나 생명에 대한 위험이 발생한 경우
2) 입원할 필요가 있거나 입원 기간을 연장할 필요가 있는 경우 
3) 영구적이거나 중대한 장애 및 기능 저하를 가져온 경우
4) 태아에게 기형 또는 이상이 발생한 경우


476건 중 사망 49건, 375건은 입원, 생명위협 7건, 기타 의학적으로 심각한 반응이 45건이다.1년에 16명 정도가 임상시험 도중에 사망했다는 얘기다.(식품 의약품 안전처 자료) 

(다만 앞서의 식약처 고시 <의약품 임상시험 안전기준>은 전제를 달아놨다. "이상반응은 ...해당 임상시험용 의약품과 반드시 인과관계를 가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상약물반응은...임상시험용 의약품과의 인과관계를 부정할 수 없는 경우를 말한다." 무슨 말인지 알쏭달쏭하나 임상시험용 의약품과의 인과관계가 입증되진 않았으나 인과관계가 아예 없는 것도 아니라는 얘기 같다.)

- 죽음을 목전에 둔 말기 암 환자가, 인류 의학 발전에 기여하고 다른 환자를 살릴 수 있다는 공익적인 행위를 하는 상황에서, 조금 더 배려받아야 한다고 한다면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 같다. 

임상시험의 연구자로서 서씨를 담당했던 연구자(의사)는, 서 씨가 이 문제에 대해 의료분쟁 조정과 소비자 피해구제를 신청하고 언론사에 제보했다는 얘기를 전해듣고 몹시 화를 냈다고 한다.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알 수 없으나 '내가 당신에게 그렇게 신경써줬는데..' 하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렇다면 환자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던 건 분명한 듯하다. 그와는 달리 서씨에겐 죽고 사는 문제였다.

*** 지난 취재파일에 대해 서 씨가 위약이 아니라 기존의 약을 먹고 있었던 것 아니냐는 문제제기가 있었다. 그 근거는 병원 관계자의 말("...가짜약을 드시는 게 아니라 기존의 환자 분 질병을 치료하는 기존 약을 드시는 거고요. 기본적으로 임상실험에 대해서는 잘못 알고 계신 거고 가짜약이 아닙니다. 기존 약을 드시고 계셨던 거예요....")이었다. 하지만 이 시험 동의서에는 '시험약과 유사하게 생겼으나 활성 약제가 들어있지 않은 위약'이 투여된다고 적혀있다. 병원 관계자 설명과는 상충된다. 

▶ [취재파일] "암이 6기가 됐는데 책임 없대요, 얼마나 웃깁니까"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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