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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권 전쟁' 시작됐다…은행 고객들 세뱃돈 구하기 분주

입력 : 2015.02.10 07:13|수정 : 2015.02.10 08:14

지점마다 한도 둬 하루만에 동나…'VIP 고객' 특혜도


설 명절을 앞두고 세뱃돈으로 쓸 새 돈(신권)을 구하려는 은행 고객들의 발걸음이 분주해졌습니다.

찾는 고객들이 워낙 많아 1인당 공급한도를 두는 만큼 늦장을 부리다가는 손자, 손녀에게 줄 세뱃돈을 구하기가 어렵게 됩니다.

신권을 배부하면 하루만에 모두 동나 '신권 전쟁'이라는 말이 나오기도 합니다.

금융권에 따르면 시중은행의 각 지점은 이르면 내일(11일)부터 설 명절에 세뱃돈으로 쓰일 신권을 본격적으로 고객들에게 배부합니다.

일부 지점에서는 '11일부터 12일까지 신권을 나눠드립니다'라는 내용의 게시물을 출입문이나 현금입출금기(ATM) 주변에 붙여놨습니다.

농협은행은 지점마다 약간씩 다르지만, 평균적으로 1만 원권은 1인당 20만 원, 5만 원권은 50만 원의 한도를 둘 예정입니다.

농협은행 마포지점 담당자는 "신권 물량이 부족한 사정을 고객들에게 알리고 1인당 한도를 정확히 지킬 방침"이라며 "단골 고객이라고 해서 더 주거나 섣불리 약속하면 더 큰 민원이 야기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따라 신권을 확보하려는 고객들은 서둘러야 합니다.

농협은행 각 지점이 본사로부터 확보하는 신권 물량은 1만 원권은 2천만 원, 5만 원권은 1억 원가량에 불과합니다.

농협은행 관계자는 "세뱃돈은 보통 1만 원권을 많이 주기 때문에 5만 원권보다 1만 원권이 더 부족하다"며 "통상 신권 배부일로부터 이틀도 못 돼 신권이 바닥나기 때문에 신권 확보를 위해서는 서두를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국민은행은 국내 최대의 영업망을 가진 은행답게 신권 배포액도 많습니다.

지점마다 적게는 2억 원, 많게는 4억 원의 신권을 확보합니다.

1만 원권의 경우 작은 지점도 4천만~5천만 원씩 가지고 있지만, 이마저도 금방 소진됩니다.

국민은행 목동중앙지점의 창구 직원은 "1만 원권이 부족해 1인당 20만 원 안팎으로 제한을 두지만 신권을 배포하면 하루만에 모두 동이 난다"며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손자, 손녀를 위해 찾아두려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습니다.

신권 수요가 많은 국민은행 일부 지점에서는 1인당 한도를 1만 원권 10장, 5만 원권 4장으로 제한합니다.

고객들의 신권 요구에 시달리다 못한 일부 지점에서는 다른 지점에서 신권을 빌려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국민은행의 한 지점장은 "지방 지점이 여유가 있는 편이어서 신권이 급하면 아는 지방 지점을 통해 구하기도 한다"며 "신권 전쟁이라고 할 정도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데, 정작 내가 아이들에게 세뱃돈 줄 때에는 구권으로 준다"고 말했습니다.

농협은행 여의도지점도 신권 수요가 다소 적은 인근 지점에서 여유분을 빌려오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습니다.

우리은행의 한 지점장은 "다른 지점에 신권을 빌려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일종의 금기사항이지만 급하면 어쩔 수 없다"며 "수요에 비해 공급물량이 워낙 부족해 1만 원짜리 신권 1천만∼2천만 원어치를 더 구해놔봐야 동나는 것은 순식간"이라고 전했습니다.

이와 관련, 화폐를 발행하는 한은은 올해 설 신권 수급 사정이 작년보다는 나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1만 원권의 신권 발행물량은 1조1천억 원으로 다르지 않지만 상·하반기 물량 배정을 작년(5대 5)과는 달리 6대 4로 했기 때문입니다.

한은 관계자는 "설이 낀 상반기에 수요가 많아 올해는 상반기 배정 비율을 높였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1만 원권 부족 현상은 한은의 화폐 교환 창구에서도 이미 나타나고 있습니다.

한은 전북본부 창구는 평소 1만 원권을 1인당 100만 원까지 교환해줬으나 지난 6일부터 50만 원으로 한도를 줄였습니다.

이와 관련, 한도 축소를 모르고 창구를 찾았다가 원하는 수량만큼 바꾸지 못한 한 이용자는 "집이 시골이어서 기름값만 1만 원이 든다"면서 융통성 있는 업무 처리를 바란다는 내용의 민원을 제기했습니다.

전북본부의 한 직원은 "새 돈을 구하려고 창구를 찾는 민원인이 평소 100명에서 이미 지난주 중반부터 400명 정도로 늘었다"면서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신권을 구할 기회를 갖도록 한도를 줄인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한은은 손상권 교환 등을 위해 16개 본부별로 화폐교환창구를 운영하고 있으며 본부별로 한도는 다를 수 있지만 신권을 바꿔줍니다.

서울지역을 관할하는 한은 본부(남대문)의 경우, 한도는 1만 원권 50만 원, 1천 원권 50만 원, 5만 원권 100만 원, 5천 원권 100만 원 입니다.

일부 은행은 한은이 제작한 '세뱃돈, 깨끗한 돈이면 충분합니다'는 내용의 포스터를 지점에 부착해놓고 캠페인도 펼치고 있습니다.

불필요하게 새 돈을 찍어내면 낭비가 되는 만큼 깨끗한 돈을 세뱃돈으로 적극 사용하자는 취지입니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1만 원짜리 신권을 영업점당 3천만 원으로 제한해 신권 부족 사태가 일어나는 것은 어쩔 수 없다"며 "'세뱃돈은 깨끗한 돈이면 충분하다'는 내용의 팸플릿을 지점마다 비치해 고객들에게 홍보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외환은행 관계자는 "물량 확보는 원천적으로 한국은행에서 배포한 금액을 지점별로 나눠 관리하는 방법 밖에는 없다"며 "한은에서도 배포 물량이 적은 상황이어서 '신권이 아닌 깨끗한 돈을 이용하자'는 포스터를 영업점마다 붙여놓았다"고 전했습니다.

신권 전쟁에서도 서민들은 밀리기 일쑤입니다.

은행들이 VIP 고객을 위해 신권을 따로 챙겨 두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입니다.

은퇴한 사업가 이모(69)씨는 "예전에 사업을 할 때는 신권을 원하는 대로 바꿔줘 직원 명절 보너스를 신권으로 주기도 했다"며 "요즘은 고객 등급이 떨어져서인지 얼마 전 손주 세뱃돈 주려고 신권을 바꾸러 갔더니 20만 원까지만 바꿔주더라"라고 푸념했습니다.

한 시중은행 지점장은 "신권이 4천만 원어치 들어오면 보통 VIP 몫으로 1천만 원 정도 빼 두는 것은 사실"이라며 "영업하는 입장에서 수익을 많이 올려주는 고객에게 조금이라도 혜택을 줘야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고 털어놓았습니다.

(SBS 뉴미디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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