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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개수수료 낮추랬더니 외려 높여버린 경기도의회

입력 : 2015.02.06 16:56|수정 : 2015.02.06 16:56


정부가 소비자 부담을 낮추겠다며 추진한 부동산 중개보수(옛 중개수수료) 체계 개편이 외려 소비자 부담을 늘리는 방향으로 진행돼 비판이 거세다.

6일 국토교통부와 지방자치단체들에 따르면 경기도의회는 전날인 5일 도시환경위원회를 열어 부동산 중개수수료를 고정요율화하기로 의결했다.

◇ 소비자는 중개수수료 더 물게 될 듯 현행 중개수수료 체계는 공인중개사가 주택 매매나 임대차 거래를 성사시켰을 때 거래금액에 따라 상한 요율 안에서 중개수수료를 받도록 하고 있다.

예컨대 주택 매매의 경우 5천만원 이하 주택은 중개수수료를 주택 가격의 0.6% 이하로, 5천만원 이상∼2억원 미만 주택은 0.5% 이하로, 2억원 이상∼6억원 미만 주택은 0.4% 이하로 받도록 하고 있다.

또 전세·월세 거래 때는 5천만원 미만일 때 0.5% 이하로, 5천만원 이상∼1억원 미만은 0.4% 이하로, 1억원 이상∼3억원 미만은 0.3% 이하로 각각 정해져 있다.

문제는 경기도의회가 조례를 개정하면서 이들 구간의 요율에 붙어 있던 '이하'라는 단서를 모두 삭제해 고정요율화했다는 점이다.

조례가 이대로 확정될 경우 앞으로 경기도에서 이 가격대의 주택을 거래할 때는 무조건 정해진 요율대로 중개수수료를 줘야 한다.

이처럼 부동산 중개수수료가 고정요율화할 경우 사실상 중개수수료가 인상되는 결과가 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지금은 전·월세 계약 갱신처럼 실제 공인중개사의 역할이 크지 않은 거래 때의 경우 통상 몇만원의 '서류작성비'만 주고 계약서를 작성하는 게 관행이다.

그러나 중개수수료가 고정요율화되면 정해진 수수료를 다 줘야 할 수도 있다.

또 일부 공인중개사의 경우 고객 유치를 겨냥해 수수료를 할인해주는 경우도 있는데 앞으로는 이런 일이 사라지게 된다.

소비자 입장에선 사실상 중개수수료가 오르는 셈이다.

주택 여러 채를 갖고 있는 임대사업자가 단골일 경우 역시 중개사가 중개수수료를 깎아주던 일이 앞으로는 없어질 전망이다.

'이하'란 단서를 남겨둘 경우 부동산 거래 과정에서 중개업자의 서비스가 불만족스러웠을 경우 소비자가 할인을 요구할 수도 있지만 이런 일도 불가능해지게 된다.

비슷한 맥락에서 공인중개사가 제공하는 서비스 질에 따라 소비자가 중개수수료를 협상할 가능성도 차단된다.

예컨대 공인중개사가 품을 들여 여러 집을 보여주고 거래가 성사됐든, 한 집만 보여주고 거래가 성사됐든 똑같은 중개수수료를 줄 수밖에 없다.

고정요율제가 시장 질서에 역행하는 조치라는 지적도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공급자와 수요자 간 자유로운 협상과 조정을 통해 가격이 결정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모델이라고 본다면 상한제는 여기에 제약을 두는 것인데 고정요율제는 아예 협상이나 조정 가능성을 막아버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 상대적으로 저가주택이 해당돼 특히 문제는 이번 경기도의회의 결정이 상대적으로 값이 싼 주택을 겨냥하고 있다는 점이다.

9억원 이상 주택의 매매나 6억원 이상 전·월세 주택 거래 때는 상한요율 범위 안에서 중개업자와 소비자 간 협의를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여전히 열려 있다.

반면 저소득층이나 중산층은 앞으로 이처럼 협상으로 중개수수료를 낮출 가능성이 봉쇄된 것이다.

100가구 이상 아파트 단지를 대상으로 한 한국감정원의 주택 가격대별 분포 자료를 보면 수도권에서 매매가격 9억원 이하 주택의 비중은 96.4%, 전세가격 6억원 이하 주택의 비중은 98.4%다.

서민들이 사는 주택을 포함해 사실상 대부분의 집이 해당된다.

다만 시세는 실거래가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

경기도의회의 이 같은 결정은 한국공인중개사협회 등이 '고정요율화하지 않을 경우 중개업자와 소비자 간 분쟁이 발생할 소지가 있다'고 주장한 것을 수용한 결과로 보인다.

그러나 이미 지금도 '이하'란 단서가 붙은 채로 별 문제 없이 운영돼왔다는 점에 비춰보면 이런 주장은 설득력이 약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결국 선거 등에서 지역 여론 형성에 한 축을 담당하는 부동산 중개업소의 영향력을 감안해 지방의회가 소비자의 후생을 걷어차 버렸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경기도 의회 상임위가 당초 정부안과 달리 고정요율제로 수정 가결하면서 정부도 당혹스럽다는 입장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시민들에게 과도한 중개수수료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개선안을 마련했는데 오히려 수수료가 높아지는 방향으로 통과돼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라며 "2∼3월 이사철을 앞두고 시민들의 편의를 위해 시·도에 조례 개정을 앞당겨달라고 요청하고 있는데 이런 결과가 나올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 다른 시·도로도 확산되는 조짐 또 다른 문제는 이번 경기도의 결정이 서울시 등 다른 지자체에 영향을 미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는 점이다.

실제 세종시 의회는 지난 3일 상임위에서 당초 정부의 권고안대로 원안 통과한 뒤 6일 본회의를 열기로 했으나 5일 밤 경기도 의회가 고정요율제로 수정 가결하자 세종시 의회도 본회의 상정을 보류했다.

전라북도 의회는 지난 5일 중개수수료 조례 개정 관련한 상임위를 열었으나 경기도 의회에서 중개수수료 개편 관련한 논란이 커지자 의결하지 않았다.

이들 지방의회의 경우 파장이 큰 수도권의 결정을 지켜본 뒤 의결해도 늦지 않는다는 분위기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중개수수료와 관련해 가장 민감한 서울시도 낙관할 수 없는 상황이다.

서울시는 이달 25일 시 의회에 개정안이 상정된다.

일부 시 의원들은 공인중개사의 민원 등을 의식해 "고정요율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표명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경기도의회의 이번 결정에 봄 이사철을 앞두고 소비자들의 불만은 높아지고 있다.

경기도의회의 결의 후 경기도와 서울시 등 주요 시·도에는 시민들의 민원 전화도 빗발치고 있다.

주로 "이사를 앞두고 있는데 조례를 빨리 원안대로 개정해달라"는 요구가 많은 상황이다.

경기도 광명시에서 2월 말 이사를 앞둔 주민 이모(45)씨는 "이번에 중개수수료율 체계가 바뀌면 수수료가 낮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는데 되레 높아지는 거 아니냐"며 "시민을 위한 행정이 아니라 중개사를 위한 행정을 하고 있다"며 비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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