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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관생활에 하루 한 끼…어느 지뢰피해자의 겨울나기

입력 : 2015.02.05 11:05|수정 : 2015.02.05 11:05


"여기서는 잠만 자고 하루 한 끼를 먹어요."

음식점과 상가가 모여 있는 강원 홍천군 홍천읍내 한 여관에서 거주하는 이근섭(55) 씨는 월세마저 낼 수 없게 되자 집주인이 "나가라"고 해 지난해 3월부터 여관생활을 하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인 이 씨는 매달 지급되는 48만 원 가운데 33만 원을 여관비로 내고, 나머지 돈으로 먹거나 치료를 받습니다.

병원비로 쓸 돈마저 빠듯하다 보니 그는 1주일에 3일은 무료 급식소를 찾아 점심때 먹는 한 끼로 하루를 견디고 있습니다.

무료 급식소가 문을 열지 않은 날에는 교회 등을 찾아 전전합니다.

이 씨는 "여관에서는 잠만 잔다"며 "몰매를 맞은 듯 아픈 몸을 제대로 치료받지 못해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 하루하루가 고통스럽다"고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그의 고통은 11살 때 당한 끔찍한 지뢰 사고로 시작됐습니다.

이 씨는 화천군에서 살던 1961년 마당에서 폭발물이 터져 큰형 근학 씨를 잃었습니다.

홍천으로 이사를 온 그는 초등학교 2학년이었던 지난 1970년 10월 둘째 형 근식 씨 등 일행 5명과 함께 홍천군 서면의 한 개울로 물고기를 잡으러 갔다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쓰러졌습니다.

맷돌만 한 크기의 쇠붙이를 발견하고 호기심에 돌려 두드렸다가 4명은 그 자리에서 숨지고, 혼자만 살아남아 1년 동안 방안에서 부모의 수발을 받았습니다.

이 씨 일행이 그때 만졌던 것은 6·25전쟁 당시 사용하다 방치됐던 대전차 지뢰였습니다.

지뢰 폭발 사고로 그의 집안은 풍비박산이 났습니다.

부모는 형의 산소를 찾아 통곡하다 쓰러졌고 그 자신은 병원에 갈 형편이 안되다 보니 주변에서 캐온 약초로 온몸의 상처를 달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씨 몸 아직도 상처투성입니다.

배에는 얼기설기 꿰맸던 자국이 아직도 그대로 남아 있었고, 다리에는 군데군데 파편자국이 남아 있습니다.

아직도 몸에는 빼내지 못한 파편이 있지만, 그대로 남겨두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씨는 지난해 10월 지뢰피해자 지원 특별법이 제정되면서 한 줄기 빛이 찾아올까 기대했습니다.

그의 꿈은 지뢰 피해에 따른 위로금이 나오면 새로 집을 마련하고, 아픈 몸을 치료하는 것입니다.

이 씨는 "지난해 조만간 지원이 된다고 해 겨울을 잘 넘길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아직 아무런 소식이 없다"며 "44년 동안 울기도 많이 하고 거지처럼 고생했는데 좀 빨리빨리 진행됐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당국은 이르면 오는 4월 중순부터는 피해자들에게 위로금을 지원하기로 하고 관련 절차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고령인 피해자들이 지뢰사고를 직접 입증하기도 쉽지 않은 데다 당사자의 과실을 고려할 것으로 보여 이들이 실제로 손에 쥐는 위로금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지뢰피해자 지원활동을 벌이는 평화나눔회는 이 씨와 같은 지뢰 피해자와 그 가족이 전국적으로 1천여 명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김경란 평화나눔회 사무국장은 "사고를 당했던 피해자들이 증빙자료를 내는 게 싶지 않아 걱정이 많다"며 "법 제정 이후에도 세상을 떠나시는 분들이 있는 만큼 가능하면 좀 쉽고 정확하게, 그래서 한 분도 빠짐없이 지원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SBS 뉴미디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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