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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용한 신분으로 새삶 꿈꾸던 임신부 집행유예

입력 : 2015.02.05 06:05|수정 : 2015.02.05 08:27

괌 대한항공 추락사고로 아버지·오빠 잃고 불행 이어져


주운 여대생 신분증으로 새 삶을 살려다 구속돼 재판에 넘겨진 30대 임신부에게 집행유예가 선고됐습니다.

서울남부지법 형사2단독 김석수 판사는 남의 신분증으로 각종 신분증들을 발급받고 금융권에서 대출까지 받은 혐의(사기·사문서위조·주민등록법위반 등)로 기소된 김 모(32·여)씨에 대해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고 밝혔습니다.

판결문과 검찰, 경찰에 따르면 김 씨의 삶은 '상실'로 점철된 인생을 회복하려 안간힘을 쓰는 과정이었습니다.

김 씨는 중학교 시절인 1997년 괌 대한항공 추락사고로 아버지와 오빠를 잃었습니다.

보상금으로 시가 10억 원짜리 아파트에서 사는 등 경제적으로 풍족한 생활을 했지만 김 씨에게는 의미가 없었습니다.

가족을 잃은 슬픔으로 우울증을 앓았던 김 씨는 결혼을 통해 새 삶을 찾을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임신한 몸으로 이혼해 또다시 가족을 잃었습니다.

어떻게든 살아보려 개명을 했지만 그렇다고 삶이 바뀌지 않았습니다.

이 사실을 깨달은 김 씨는 2009년 우연히 주워 보관하던 음대생 이 모(26·여)씨의 지갑을 떠올렸습니다.

이 순간, 김 씨는 자신의 인생을 버리고 이 씨의 인생을 살아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지난해 10월 지갑 안에 있던 이 씨의 학생증을 이용해 운전면허증을 발급받으면서 이 씨의 인생을 '복제'하는 첫걸음을 내디뎠습니다.

이후 김 씨는 이 씨로 행세했습니다.

이 씨의 이름으로 휴대전화 2대를 개통했으며 통장을 개설했고, 증권계좌도 만들었습니다.

한 은행에서는 원래 이 씨의 이름으로 개설돼 있던 통장과 연결된 체크카드를 발급받아 빵과 음료수 등 식료품을 샀습니다.

현금 75만 원을 인출하기도 했습니다.

김 씨는 여권을 발급받기로 마음먹고 구청에 찾아가 "성형수술을 해서 얼굴이 변했다"고 둘러대며 여권을 발급받았습니다.

수수료도 이 씨의 체크카드로 결제했습니다.

김 씨는 이 씨가 다니던 학교의 인트라넷, 이 씨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이메일 등을 뒤지고, 비밀번호도 바꿨습니다.

김 씨는 제2금융권에서 이 씨의 이름으로 600만 원을 대출받기도 했습니다.

결국 이 대출이 김씨의 발목을 잡았습니다.

대출통지서를 받은 이 씨의 가족이 경찰에 신고했고, 경찰은 폐쇄회로(CC)TV 등을 통한 범인 추적에 나서 김 씨를 검거했습니다.

당시 김 씨는 경찰에서 "어렸을 적 음악을 하고 싶었는데 음악을 전공한 이 씨의 삶이 너무 행복해 보여 새로운 삶을 살고 싶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검거 당시 임신 4개월에 우울증을 앓고 있던 김 씨에 대해 경찰은 불구속 수사도 고려했으나 혐의가 14개에 달해 영장을 신청했고, 결국 김 씨는 구속돼 기소됐습니다.

하지만 딱한 사정을 참작한 법원의 판결로 김 씨는 다시 자유의 몸이 됐습니다.

재판부는 "명의를 도용당한 이 씨와 합의하고 범행으로 인한 경제적 피해가 모두 회복된 점, 사고로 아버지와 오빠를 잃어 심한 정신적 고통을 겪었던 점, 건강상태가 좋지 않고 잘못을 깊이 반성하고 있는 점 등을 참작했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SBS 뉴미디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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