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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우사인 볼트 뺨치는 김진현의 반응 속도

권종오 기자

입력 : 2015.01.23 09:25|수정 : 2015.01.23 09:25


2015 아시안컵 축구에서 한국대표팀 수문장 김진현 선수가 그야말로 펄펄 날고 있습니다. 눈부신 선방을 펼치며 출전한 3게임에서 단 1골도 내주지 않았습니다. 김진현은 골키퍼로서 많은 장점을 갖고 있습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이 반응 속도입니다. 상대팀의 슈팅을 막는 동작을 비롯해 경기에서 시시각각으로 펼쳐지는 모든 움직임에 대해 순간적으로 반응하는 속도가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김진현의 반응 속도는 0.15초로 알려져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우수한 골키퍼가 0.2초의 반응 속도를 갖는 것을 고려하면 김진현이 얼마나 동물적인 반사 신경을 보유하고 있는지 짐작이 갑니다. 

김진현의 반응 속도는 ‘지구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인 우사인 볼트의 뺨을 칠 정도입니다. 육상 100m 선수들은 반응 속도가 모든 종목을 통틀어 가장 빠르기로 유명합니다. 2011년 대구세계육상선수권 남자 100m에서 우사인 볼트는 부정 출발로 실격됐습니다. 천하의 볼트도 0.01초라도 먼저 스타트하려다 통한의 실격을 당한 것입니다. 그런 볼트의 출발 반응 속도는 약 0.145-0.165초입니다. 세계정상급 단거리 선수보다는 0.02초 느리지만 다른 종목 선수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빠릅니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축구 골키퍼인 김진현의 반응 속도는 그야말로 하늘이 내린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야구에서 흔히 “3할 타자는 타고 난다”고 합니다. 타자들의 꿈인 타율 3할은 노력만 가지고 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과연 맞는 말일까요? 상대 투수가 시속 150km의 직구를 던진다고 가정할 경우 공이 18.44m 떨어진 홈플레이트에 도착하는 시간은 0.44초에 불과합니다. 공이 절반쯤 왔을 때 타격 여부를 결정하게 되는데 이때까지 걸리는 시간은 약 0.22초, 그리고 실제 몸을 움직여 방망이로 공을 맞히는 순간까지 약 0.22초가 필요합니다. 그러니까 거의 동물적으로, 반사적으로 타격이 진행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보다 정확한 타격을 위해서는 공에 대한 반응 속도가 최대 관건입니다. 즉 타격을 결정하는 시간과 실제 방망이를 휘두르는 시간이 0.01초라도 짧아야 더 좋은 결과로 이어집니다.

선수들이 반복된 훈련을 거듭하는 이유는 이 반응속도를 최대한 줄이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선천적인 반응 속도를 획기적으로 줄이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상대 투수가 100마일, 즉 161km의 광속구를 던진다고 가정해봅시다. 이 경우 공이 홈플레이트에 도착하는 시간은 0.41초에 불과합니다. 타격 여부 결정과 실제 타격을 각각 0.2초안에 해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반응 속도 0.2초는 일반적으로 인간의 한계라고 불리는 경계선입니다. 즉 웬만한 타자는 시속 161km의 공을 칠 수 없다는 설명이 됩니다. 그래서 3할 타자는 타고 난다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즉 위대한 타자가 되기 위해서는 천부적으로 반응 속도가 빨라야 합니다. 반응 속도가 0.20초인 선수와 0.25초인 선수는 161km의 공이 왔을 때 결과가 상당히 다른 타격을 한다는 것입니다.

테니스와 배구 등 다른 종목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시안컵 축구가 열리는 호주 멜버른에서는 세계 4대 메이저대회의 하나인 호주오픈테니스가 한창입니다. 우리가 아는 조코비치 등 세계적인 남자 테니스 선수들의 서브는 보통 시속 200km를 넘습니다. 이런 강서브가 약 24m 쯤 떨어진 상대 선수에게 도달하는 시간은 0.43초. 공이 네트를 넘어오는 시점에 어떻게 리턴을 해야 할 지를 결정하고 실행에 옮기는데 약 0.22초의 시간밖에 없습니다. 만약 서브가 220km쯤 된다면 제대로 리턴하기가 거의 불가능해진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배구의 경우 삼성화재의 레오나 OK저축은행 시몬 같은 선수의 스파이크 서브 속도는 시속 120km. 이런 강서브가 17m쯤 떨어진 상대 수비수에게 도달하는 시간은 총 0.51초. 실제 수비수가 어떻게 리시브를 해야 하는지 결정하고 행동에 옮기는 시간은 이 절반인 0.25초밖에 없다는 얘기입니다. 만약 이보다 스파이크 서브가 더 빠르다면 0.2초안에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리시브하기가 훨씬 어려워집니다.  

복싱 천재로 불렸던 무하마드 알리와 슈거레이 레너드의 경우 경기 도중 두 손을 내린 채 수비를 하지 않는 동작을 했습니다. 어찌 보면 상대를 깔보는 행동일 수 있지만 그만큼 반사 신경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제스처였습니다. 즉 상대의 펀치를 보고도 피할 수 있을 만큼 반응 속도가 빠르다는 계산이 있었던 것입니다. 축구에서도 세계적인 골잡이들은 늘 반박자 빠른 슈팅으로 골망을 가릅니다. 반박자 빠른 슈팅이라는 것도 결국 반응 속도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불교에서 극히 짧은 순간을 ‘찰나’라고 부릅니다. ‘찰나’는 75분의 1초입니다. 스포츠선수의 희비도 결국 이 ‘찰나’에서 결정됩니다. 야구에서 161km의 강속구가 왔을 때, 테니스에서 220km의 강서브가 왔을 때 반응 속도가 0.20초인 선수와 0.22초인 선수는 ‘찰나’의 차이 때문에 웃거나 울게 됩니다. 김병지-이운재의 뒤를 이어 한국 대표 수문장으로 떠오른 김진현의 그 천부적인 반응속도가 앞으로 남은 준결승과 결승에서도 발휘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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