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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멘 '쿠데타 위기'에 미국 속수무책

입력 : 2015.01.21 17:22|수정 : 2015.01.21 17:22


예멘이 정치적 혼란을 거듭하다가 결국 쿠데타 위기에 직면했지만 예멘에 깊숙이 개입해 온 미국은 정작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이슬람국가'(IS) 사태도 해결 기미가 안보이는 가운데 '테러리스트의 훈련소'로 지목된 예멘에서도 수렁에 빠지는 바람에 미국의 중동정책이 사면초가의 위기에 몰리게 됐다.

불과 넉 달 전인 9월11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IS를 격퇴하기 위해 시리아 공습을 단행하면서 예멘을 대테러 전략의 '모범사례'로 언급했을 정도로 '아랍의 봄' 이후 예멘은 미국의 의도대로 가는 듯했다.

미국 정부가 예멘에서 '스텝'이 꼬여버린 계기는 지난해 8월부터 본격화한 예멘 시아파 반군 후티의 봉기였다.

후티는 무력행사 나흘만인 9월21일 예멘 수도 사나를 장악하고 정치적 실권을 쥐었다.

예멘이 그동안 미국의 통제대로 움직여왔던 건 독재자 알리 압둘라 살레 전 대통령의 친미 정책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30여년에 걸친 친미 철권통치는 2012년 '아랍의 봄' 민주화 시위로 막을 내렸고 이후 예멘 정국은 혼란을 거듭하다 무력을 앞세운 반군 후티가 주도권을 잡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후티는 살레와 같은 시아파의 일파인 자이디파지만 강한 반미 노선을 편다.

이들은 미국 정부 측을 만나려고도 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미국과 사우디 정부는 후티를 시아파 종주국 이란이 지원한다고 믿는다.

문제는 후티가 지난해 10월 초부터 자원이 풍부한 예멘 중남부로 세력을 확장하려고 하면서 수니파 부족과 무력충돌을 빚고 있다는 점이다.

후티에 대항하는 수니파 부족과 결탁한 세력은 프랑스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 테러의 배후를 자처한 알카에다 아라비아반도지부(AQAP)다.

AQAP를 더 위험한 '주적'으로 보는 미국은 예멘 정부의 묵인하에 무인기를 동원해 이들을 공습하고는 있다.

미국의 딜레마는 AQAP를 강하게 공격하면 할수록 후티를 돕는 결과가 되고, 미국의 도식대로라면 이는 곧 이란에 이로운 모양새가 된다는 점이다.

이는 이란과 숙적이자 예멘과 긴 국경을 맞댄 사우디 정부도 원하지 않는 결과다.

게다가 미국이 예멘 정국 안정을 위해 AQAP 진압에 군사적으로 적극 나선다면 이라크처럼 예멘 내 종파간 유혈충돌을 부추기는 결과가 될 수 있다.

그렇다고 후티를 견제하려고 스스로 '가장 위험한 테러조직'으로 지정한 AQAP의 편을 들 수도 없는 처지다.

미국 정부의 어정쩡한 입지는 지난해 10일 후티 지도자 2명을 특별 제재대상(블랙리스트)에 올린 데서 읽을 수 있다.

AQAP는 군사적 방법으로, 후티는 제재로 묶어두고 압드라부 만수르 하디 대통령에게 힘을 싣는 전략을 시도한 셈이다.

그러나 이는 오히려 후티와 하디 대통령의 갈등의 촉매제가 됐다.

미국이 후티 지도자와 함께 살레도 특별 제재대상에 포함하면서, 살레의 영향이 여전한 다수당 국민의회당(GPC)과도 간극이 생겼다.

이로써 에멘에서 미국이 기댈 수 있는 실권 세력은 사실상 없어졌다.

차라리 후티가 군사 쿠데타를 선언하면 미국이 개입할 수 있는 명분이 생기지만 후티는 하디 대통령을 앞세워 방패로 삼고 자신은 배후에서 조종하겠다는 전략을 편다.

후티가 20일 대통령궁을 장악하자 예멘 현지 언론에선 "하디 대통령이 하야하겠다고 했지만 후티가 이를 거부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부패척결·국가 통합'을 명분으로 내세우는 후티로선 굳이 군사 쿠데타 세력이라고 지탄받을 이유가 없는데다 현재로선 무기력한 하디 대통령을 충분히 대리인처럼 움직일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로선 미국은 '허수아비'나 다름없는 하디 정부를 지지하는 것 외엔 별다른 수가 없다.

그러나 20일(현지시간) 발생한 '준 쿠데타' 상황이 전개되면서 정권은 후티를 통제하고 예멘의 정치 개혁을 추진하기엔 능력이 턱없이 부족함이 증명됐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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