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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전동드릴은 장난이 아닙니다"

KBC 이상환

입력 : 2015.01.13 09:18|수정 : 2015.01.13 11:04


“광주의 한 초등학교 교직원 2명이 2학년 남학생을 인쇄물 발간실에서 수차례 성추행했다”

손이 바빠졌습니다. 현장으로 가는 차 안에서 여기저기 전화를 돌려 사건의 단서를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단어는 ‘전동드릴’이었습니다. 이 학교 행정실 소속 직원인 54살 오 모 씨는 ‘남자인지 확인해보자’며 피해 학생의 신체 일부를 수차례 만졌고, 울음을 터뜨리자 전동드릴로 위협했습니다. 함께 있던 동료 교직원도 피해 학생을 강제로 껴안는 등 성추행에 가담했습니다. 피해 교직원들은 “장난이었다”, “손자처럼 귀여워서 그랬다”고 해명했습니다. 과연 자신들의 손자에게도 전동드릴을 들이댈 수 있었을까요?

취재 초기 집중했던 전동드릴에 이어 새로운 사실들이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성추행 사건 직후 학교 측이 취한 조치는 가해 교직원들을 2주 동안 휴가 보내고, 휴가 이후에는 피해 학생과 마주치지 못하게 오후 3시 반 이후에 출근하라는 것뿐이었습니다. 피해 학생 부모는 가해 교직원들의 격리 조치를 강력히 요구했지만 학교 측은 인사권이 없다는 이유로 임시 조치만 취했습니다. 교육청에 인사 조치를 강력히 요구하는 것 대신 2주의 휴가와 오후 출근이란 학교 측의 임시방편이 이번 사건의 피해를 키웠습니다.

교직원의 인사권을 가지고 있는 교육청의 조치도 아쉬움이 남는 대목입니다. 사건을 조사한 장학사가 감사관에게 좀 더 면밀한 조사를, 총무과에 가해 교직원의 인사 조치 검토를 요구했지만 경찰이 수사하고 있다는 이유로 감사관 조사는 중단됐고, 인사 조치도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경찰 수사 결과만 기다리던 교육당국의 미흡한 조치로 결국 피해 학생은 가해 교직원과 학교에서 마주치는 또 한 번의 상처를 입게 됐습니다.

교육청은 결국 사건 발생 두 달 만에 자신들의 잘못을 시인했습니다. 격리 조치가 즉각 이뤄지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는 ‘송구스럽다’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가해 교직원들은 뒤늦게 교육청의 인사조치로 대기발령에 들어갔습니다. 경찰 조사 결과가 나와야 인사조치를 할 수 있다는 입장을 고수하다 언론보도 이후 입장을 바꾼 것인데, 곧바로 취할 수 있는 조치를 왜 사건 직후에는 하지 않았는지 의구심만 커졌습니다.

학교와 교육청의 외면에 학부모는 홀로 성추행 사건을 떠안아야 했습니다. 성범죄 사건을 전담하는 원스톱지원센터로의 신고도 학교가 아닌 학부모의 몫이었습니다. 교내에서 성범죄가 발생할 경우 학교 측이 원스톱지원센터에 신고하고, 교육청이 현장 조사를 벌인다는 매뉴얼은 말 그대로 매뉴얼 일뿐 현실에서는 적용되지 않았습니다.

가해 교직원들이 끔찍한 행동을 하고도 변명으로 일관하는데도 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가해 교직원 정 모 씨는 22년 동안 행정 직원으로 일했지만 단 한 번도 성범죄 예방 교육을 받아 본 적이 없었습니다.

때늦은 교육청의 인사조치, 학교 측의 무성의한 대응, 가해 교직원들의 황당한 변명에 학부모들은 분노하고 있습니다. 자녀 3명이 모두 이 학교를 다니고 있다는 한 학부모는 학교에 대한 믿음이 사라졌다며 울분을 터뜨렸습니다. 가해 교직원들에 대한 대기발령 조치가 결국 다른 학교로 옮기기 위한 수순이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도 있습니다.

교육당국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가해 교직원을 사건 직후 곧바로 격리시킬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고, 성범죄 예방 교육도 강화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시스템 부재가 불러온 이번 사건의 분노, 쉽게 사그라지지 않고 교육당국이 약속이 이행하는지 끝까지 지켜보는 힘이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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