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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적 글쓰기' 하루키, 클래식을 말하다

입력 : 2015.01.07 08:04|수정 : 2015.01.07 08:04

'오자와 세이지 씨와 음악을 이야기하다' 출간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에는 빠지지 않고 음악이 등장한다. 재즈에서부터 클래식까지 다양하다.

음악은 그의 소설을 풍요롭게 하는 단순한 장치가 아니다. 단단한 문장가인 하루키는 음악을 들으며 리듬을 느끼고, 그 리듬에 따라 단어를 배열하고 문장을 구축한다.

"글 쓰는 법을 어디서 배웠느냐 하면 음악에서 배웠거든요. 거기서 뭐가 제일 중요하냐 하면 리듬이죠…….글의 리듬이란 단어의 조합, 문장의 조합, 문단의 조합, 딱딱함과 부드러움, 무거움과 가벼움의 조합, 균형과 불균형의 조합, 문장부호의 조합, 톤의 조합에 의해 리듬이 생겨납니다."

최근 출간된 '오자와 세이지 씨와 음악을 이야기하다'에 실린 하루키의 말이다.

10대 때부터 꾸준히 클래식 음악을 접한 하루키와 일본 출신 세계적 지휘자인 오자와 세이지가 나누는 음악에 대한 이야기는 넓은 바다처럼 풍요롭다. 레코드판을 들으며 나누는 이들의 자연스러운 대화는 2010~2011년 도쿄, 하와이, 스위스 등에서 이뤄졌다.

도쿄 하루키의 작업실에서 이뤄진 첫 대화부터 시선을 끈다.

1950년대 당대 최고의 지휘자로 손꼽혔던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1908~1989)과 이제 막 데뷔한 햇병아리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1932~1982). "타인의 의견을 전혀 듣지 않는" 카라얀과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 굴드의 궁합이 맞을 리 만무하다. 그러나 음악권력의 정점에 있던 '독재자' 카라얀의 권위에 도전하는 저 굴드의 박력이란.

"여백을 두는 그 방식이 참 대단하죠. 오늘 오랜만에 굴드를 듣고 새삼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뭐라고 해야 하나, 배짱이라고 할까요. 타고난 겁니다. 연출해서 하는 게 아니에요. 분명히"(오자와·73쪽)

카라얀의 제자이자 레너드 번스타인(1918~1990)이 상임으로 있었던 뉴욕필의 부지휘자이기도 했던 오자와가 말하는 카라얀과 번스타인의 이야기도 흥미를 전해준다.

당대의 맞수기도 했던 둘은 여러모로 다르다. 카라얀이 오케스트라를 철권통치하는 전제군주스타일이라면 번스타인은 지휘자와 단원들의 관계를 평등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하극상'도 많이 겪었다고 한다.)

사후 완전히 무시되다가 1960년대 이래로 인기를 끌기 시작한 구스타프 말러(1860~1911)에 대한 이야기도 눈길을 끈다. 베토벤, 브람스 등 독일 고전음악에 익숙했던 오자와가 말러의 악보를 본 후 느낀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고 한다.

"오케스트라란 걸 이렇게 효과적으로 쓰는 사람이 있구나 하는 게 가장 놀라웠어요. 말러는 이게 참, 오케스트라를 쓰는 재주가 거의 극치에 다다른 사람이었거든." (193쪽)

사운드는 정갈하지 않다. 이리저리 복잡하게 뒤얽혔다. "정신분열적"이라고 말해도 과하지 않을 정도다. 그러나 그 복잡한 몇 개의 사운드가 겹쳐서 나올 때의 마음을 때리는 거대한 진동과 뜬금없이 나타나지만 정신을 홀리고야 마는 탐미적 선율은 거부할 수 없는 말러 음악의 매력이다.

하루키는 정신적, 육체적으로 붕괴했던 19세기 말 빈의 세기말적인 분위기가 말러의 음악에 녹아있다고 말한다.

바흐나 베토벤, 브람스, 그런 음악의 경우 역시 독일 관념철학적이라고 할지, 지상에 나와 있는 의식의 정합적인 흐름이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그에 비해 말러의 음악은 언더그라운드적이라고 할지, 지하의 어둠에 숨어 있는 의식의 흐름 같은 걸 적극적으로 다룬다는 느낌이거든요. 모순되는 것, 대항하는 것, 서로 섞이지 않는 것, 분간할 수 없는 것, 그런 몇 개의 모티브가 꼭 꿈을 꿀 때처럼 거의 경계 없이 뒤엉켜 있습니다."(236쪽)

책은 베토벤, 브람스, 말러 등의 명곡에 대한 두 사람의 감상을 비롯해 '토스카'를 연주하다 밀라노 청중들에게 야유를 받았던 오자와의 일화, 음악을 통해 글을 다졌던 하루키의 특별한 경험 등이 상세하게 녹아있다.

"일반적인 인터뷰도 아니고 소위 '유명인끼리'의 대담 같은 것도 아니다. 내가 여기서 원했던 것은 마음의 자연스러운 울림 같은 것이었다."(18쪽)

하루키의 말이다.

비채. 권영주 옮김. 364쪽. 1만4천원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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