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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한 영화? 펀한 영화!] '내일을 위한 시간'에 '카트'가 있고 '미생'이 있다

김지혜 기자

입력 : 2015.01.02 15:04|수정 : 2015.01.02 15:04


'내일을 위한 시간'의 원제는 '투 데이즈 원 나잇'(Two Days One Night)이다. 영화는 실직 위기에 놓인 한 여성이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동료들을 설득하는 이틀의 시간을 담았다.

이 영화가 국내 개봉을 앞두고 제목을 바꿨을 때 고개를 갸우뚱하는 이들이 적잖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 나면 이 번역 제목이 꽤 근사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내 일'(My job)과 '내일'(Tomorrow)이라는 중의적 뜻으로 해석 가능한 단어는 여주인공 산드라(마리옹 꼬띠아르 분)의 상황을 정확하게 담아 낸다. 산드라에겐 제 일을 지키는 것이 당장 다가올 내일을 준비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이 때문에 자신에게 허락된 이틀이라는 시간에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다.

'내일을 위한 시간'을 보고 있노라면 부당해고와 비정규직 문제를 다룬 '카트'와 '미생'이 오버랩된다.

태양열 전기회사에서 일하던 산드라는 병가를 마치고 복직하려던 찰나 해고 통보를 받는다. 회사는 산드라는 복직시키는 대신 16명의 동료에게 1,000유로의 보너스를 지급하려 한다. 그러나 이같은 부당해고에 문제를 제기한 동료가 생기면서 회사는 직원들의 투표를 통해 산드라 복직 유무를 결정하기로 한다.
이미지산드라는 투표일까지 남은 두 번의 낮과 한 번의 밤 동안 동료들을 찾아가 설득한다. 과반수의 표를 확보해야 하는 산드라에겐 동료의 연대(連帶)가 절박하다.

이 영화에서 다루는 연대는 엄밀히 따져 '공동의 선'을 위한 것은 아니다. 산드라에게 복직은 생계가 달린 문제지만, 이는 동료들이 금전적 보상을 포기해야만 가능한 것이다. 즉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결과는 도출할 수 없고, 어느 한쪽의 희생이 불가피하다. 양쪽 모두에게 엄청난 내적 갈등을 야기하는 딜레마다.

버티고자 하는 자와 밀어내는 자의 대립을 그린다는 점에서 '내일을 위한 시간'은 '카트'를 떠올리게 한다. 두 영화는 모두 '연대'의 의미와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차이점은 '내일을 위한 시간'에서 밀어내는 자는 기득권이 아니라는 것이다. 16명의 동료들도 산드라와 마찬가지로 내일의 삶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동등한 위치의 노동자다. 이들에게 주어질 130만 원의 보너스는 분명 놓치기 아까운 행운이다. 가족처럼 함께했던 동료의 해고는 안타까운 일지만, 보너스가 있다면 진짜 가족과 조금 더 윤택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그래서 관객은 복직을 희망하는 산드라만을 지지할 수 없다. 동료들에게도 저마다의 사정이 있다. 요행처럼 찾아온 보너스에 행복해하던 동료들이 산드라의 방문에 난처함을 감추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어쩌면 산드라는 개인의 행복을 위해 다수에게 무형의 압력을 가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미지영화 후반부에는 계약직이라는 새로운 이슈가 주인공의 선택에 큰 영향을 미친다. 관객은 이 순간 타국 사회의 장그래('미생'의 주인공 이름)와 마주한게 된다. 자신을 지지해주길 호소하던 산드라는 어느 순간 누군가의 미래를 결정하는 키를 쥔다.

산드라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모든 여정을 끝낸 산드라는 남편과의 통화에서 의미심장한 말 한 마디를 한다.

"여보, 우리 잘 싸웠지? 나 행복해"

살다보면, 불평등한 압력을 가하는 사회와 세력에 부딪힐 때가 있다. 그 때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 왔는가. 산드라의 이틀에 박수를 쳐주고 싶은 건 우리의 모습과 자연스레 비교되기 때문이다. 투쟁은 엄청난 용기를 담보로 한다. 우리는 충분히 용기 있었는가를 생각해보면 고개가 숙여진다.  

'내일을 위한 시간'은 벨기에 출신의 거장 다르덴 형제(장 피에르 다르덴, 뤽 다르덴)의 폭넓고 견고해진 연출력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늘 그러했듯 그들은 인간의 선택에 대해 함부로 재단하려 들지 않는다. 

다르덴 형제는 어떤 하나의 상황을 제시하고, 그것에 대처하는 주인공의 발걸음과 심리를 차분하게 담아낸다. 희망과 포기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는 산드라의 모습과 누군가의 희망을 거머쥐고 갈등하는 16명의 심리도 사려깊게 그렸다. 이를 통해 감독은 누군가의 2박 3일이 그저 너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의 이야기 일 수도 있음을 상기시킨다. 1월 1일 개봉, 95분, 12세 관람가.

(SBS 통합온라인뉴스센터 김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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