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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범연의 썸풋볼] 홈 팀 '우리집에 왜 왔니?'

입력 : 2014.12.30 15:49|수정 : 2014.12.30 16:11


출처도 모르고, 점잖은 말은 더더욱 아니지만, 일상에서 진리처럼 쓰이는 말들이 있다. ‘똥개도 자기 집에서는 절반 먹고 들어간다’는 말도 그중 하나다. 스포츠에서도 자주 쓰인다. 조금 더 멋을 내서 '홈 어드밴티지'라고.

홈 어드밴티지는 자칫 치졸한 모습으로 여겨지기 쉽다. 아시안 챔피언스 리그를 위해 중국에 간 팀이 어떤 대우를 당했느니, 이란에 건너간 대표팀이 어떤 수모를 겪었으니 등등의 이야기는 이미 타지에서 당연히 감수해야 하는 자연재해 같은 느낌까지 들 정도이다.

축구의 본고장이라는 영국에서도 안방 텃세는 존재한다. 팬들의 함성이야 말로 최고의 홈 어드밴티지다. 아데바요르는 너무 조용해 홈으로써의 이점을 발휘하지 못하게 만드는 토트넘 팬들을 원망하기도 했다. 자신들이 가장 익숙한 잔디의 길이도 원정팀에게는 건너야만 하는 장애물이다.

그러나 각 클럽은 나름대로 인위적인 홈 어드밴티지를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대게 치사하다고 생각이 들진 않는다. 오히려 귀엽다는 느낌까지 들 만큼 장난기 넘치는 텃세들이 원정팀을 기다리고 있다.


경기가 시작되기 전, 양 팀 선수들은 나란히 출구의 터널에 대기하다 심판의 지시에 맞춰 경기장으로 나서게 된다. 그러나 대기시간에 늦으면 영국 국내 대회는 1분당 3천 파운드(한화 약 512만 원), 국제 대회는 1분당 2만 5천 파운드(한화 약 4264만 원)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
그래서 맨체스터 시티는 원정팀 드레싱룸에서 시계를 치워버렸다.

맨체스터 시티의 만행(!)은 이 뿐만이 아니다. 맨체스터 시티 선수의 벤치에는 의자와 바닥 모두에 열선이 깔려있어 본인들은 따끈한 엄마 품속에서 시간을 보내는 듯 경기를 지켜볼 수 있다. 그러다 잠들기도 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원정 팀 벤치에는 있을 리 만무하다.
이미지물론 이런 차별은 맨체스터 시티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선수단 좌석이 일반 좌석과 큰 차이가 없는 리버풀을 생각하면 열선이 없더라도 편안한 의자를 제공해주는 맨시티가 고마울 수도 있다.
벤치에서 차별을 두지 못하는 리버풀은 대신 다른 곳에서 장난기 넘치는 마수를 펼친다. 리버풀의 홈 드레싱룸과 심판실에는 모두 시스템 에어컨이 설치되어있어 따스한 시간을 보낼 수 있지만, 원정 드레싱룸에는 중앙 난방 시설밖에 되어있지 않다. 원정 팀에서 사정하지 않으면 틀어주지 않는단다.

현재 프리미어 리그 선두를 달리는 첼시는 좀 더 지능적이다. 드레싱룸 규모의 차이는 당연하다. 그러나 첼시는 원정 드레싱룸에는 사물함을 의자 아래에 작게 설치해 놓았다. 대게 덩치가 크기 마련인 축구 선수들에게는 곤욕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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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시의 원정 드레싱룸은 아주 조용하다. 바로 옆에 위치한 시설의 기계가 꺼질 경우 그 어떠한 소음도 들리지 않는다. 이는 경기를 앞두고 원정팀 선수들의 분위기를 가라앉게 하기 위함이라 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원정팀 드레싱룸의 작전판은 문 바로 뒤에 있어 드나드는 사람이 있을 때 한창 작전을 설명하던 감독이 문에 가려지게 된다. 신이 나서 설명하던 첼시 직원은 특별히 프랑스어가 모국어인 한 감독을 지목해 사람들에게 상상하게끔 했다.스탠포드2이외에도 원정 드레싱룸을 꺾인 형태로 설계하여 감독의 모습이 잘 보이지 않게 만든 클럽도 있고, 드레싱룸을 좁고 길게 만들어 감독의 이야기를 반대쪽에서는 잘 들리지 않게 하는 클럽도 있다고.
기본적으로 제공해야 하는 시설 등의 의무를 저버리는 비스포츠적인 홈 어드밴티지에 대한 유혹은 어느 팀이나 받고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누가 봐도 장난기 가득한 텃세는 그들을 바라보는 팬들에겐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영국인들의 독특한 유머 감각이 곳곳에 스며든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는 그렇게 또 다른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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