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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에게 일생 바친 남성들의 집, 수도원의 일상은

입력 : 2014.12.28 14:27|수정 : 2014.12.28 14:27

'기도하고 일하라' 성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1박2일 체험
"하느님 믿지 않는 사람도 언제든 와서 머물 수 있어"


신에게 일생을 바치겠다고 맹세한 남성들이 머무르는 곳 수도원. 수도자들은 그곳에서 어떻게 생활하고 있을까.

공지영 작가의 책 '수도원 기행 2' 출간을 기념해 책을 펴낸 분도출판사가 마련한 1박2일 수도원 체험에 동행해 잠시 수도자의 일상을 엿봤다.

지난 27일 찾은 경북 왜관의 성베네딕도회 수도원. '수도원 기행 2'의 배경 중 하나인 이곳에 오후 5시50분 종이 울리자 검은 옷을 입은 수도자들이 차례로 줄을 지어 성당 안으로 들어섰다. 6시 저녁기도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웅장한 파이프오르간 소리 속에 기도를 끝낸 수도자들은 7시 식사를 마치고 오후 8시 다시 성당을 찾아 끝기도를 올리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마감했다.

일요일인 28일 평소보다 한 시간 늦은 오전 6시에 기상한 수도자들은 다시 6시20분 아침기도로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 이어 식사 시간을 제외하고는 다시 오후 8시까지 묵상과 미사, 낮기도, 저녁기도, 끝기도까지 쉴 새 없이 기도가 이어진다.

평일에도 이런 일과는 변하지 않는다. 다만 '기도하고 일하라'(ORA ET LABORA)라는 성베네딕도회의 모토에 따라 노동이 추가된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오전 8시 시작된 일과는 11시45분 낮기도를 알리는 종이 울릴 때까지 계속된다. 일과는 오후 1시 다시 시작돼 역시 오후 6시 저녁기도 때까지 이어진다.

수도자들은 다양한 일과에 참여한다. 스테인드글라스 공방에서는 수사 3명이 독일에서 생산된 유리를 자르고 색을 입히는 작업을 한다. 주문을 받은 후 납품까지 3명이 꼬박 넉 달을 매달려야 하고 납을 다뤄야 해 건강에도 좋지 않은 고된 작업이다.

스테인드글라스 공방과 함께 수도원의 핵심 수입원 하나는 금속공예다. 성당에서 쓰이는 모든 금속 제품을 생산하는 금속공예실에서는 수사들이 직접 나사 하나까지 수공으로 작업한다. 이밖에 분도출판사 인쇄소와 독일식 수제 소시지를 만드는 분도식품 등도 수도자들의 일터다.

기도-노동-기도로 이어지는 반복적 일상이 지루할 수도 있을 터. 그러나 수도원 입회 60년째라는 이석진(81) 그레고리오 원장 신부는 "가장 행복한 삶이 수도자의 삶"이라고 단언했다.

이 신부는 "말씀 하나하나를 묵상하며 생활에 적용하고 말 한 마디 한 마디에서 의미를 찾고 기쁨과 슬픔을 느끼며 기도한다"면서 "나는, 우리는 행복하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왜관 수도원이 체험 프로그램을 시작한 지는 10년이 넘었다. 그러나 비슷한 성격의 종교 체험이라고 할 수 있는 불교의 템플스테이와 비교하면 수도원 체험 프로그램은 아직 비신자들에게는 상대적으로 문턱이 높은 느낌이다.

그러나 신자 여부에 관계없이 수도원 체험은 자유롭게 할 수 있으며 템플스테이에서도 예불 등 모든 의식에 반드시 참여하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수도원 체험에서도 반드시 모든 전례에 참여를 강제하지는 않는다.

이번 체험에 참여한 독자 30여명 중에도 성공회 신자와 개신교 신자, 비신자가 섞여 있었다.

왜관 수도원의 박현동 아빠스(대원장)는 "하느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언제든지 와서 머물 수 있다"라면서 "찾아오는 모든 분을 그리스도로, 인연으로 생각하며 그들이 수도원에서 힘을 얻고 갔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왜관 수도원은 체험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마침 수도원을 찾은 날도 중장년층을 대상으로 한 수도생활 체험학교가 시작돼 50여명이 수도원 생활을 경험했다.

수도자들이 수도하는 곳을 개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박 아빠스는 "수도생활의 목적은 우리가 고요하게 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과 신자들에게 도움되는 일을 하기 위한 것"이라면서 "(수도원을 찾는 사람들에게) 하느님을 느끼게 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일 수도 있다"라고 설명했다.

수도원 체험에 나선 사람들은 신자와 비신자를 가리지 않고 만족스러워했다.

최근 암 수술을 받고 방사선 치료를 앞뒀다는 한 체험자는 "힘을 얻고 싶어 수도원을 찾았다"라며 "수도원에서 너무 거짓말처럼 많이 웃고, 힘을 받았다"라고 말했다.

한편 이번 체험에는 세월호 참사 때 아들을 잃은 뒤 지난 8월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으로부터 세례를 받은 이호진 씨도 참여했다.

이 씨는 교황에게 세례를 받을 당시에 대해 "40년간 짝사랑이 이뤄지는 그런 순간의 기분을 느꼈다"라면서 "마치 구름이 내 몸을 칭칭 감고 기분 좋게 조여오는 느낌이었다"라고 회상했다.

(왜관=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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