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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수감 미국인 그로스, 감금부터 석방까지

입력 : 2014.12.18 02:50|수정 : 2014.12.18 02:50

적대관계 청산 '물꼬'…아내의 눈물겨운 노력


쿠바 교도소에 5년째 갇혀 있던 미국인 앨런 그로스(65)가 풀려났다고 17일(현지시간) 미국과 중남미 언론들이 전했다.

2009년 12월 쿠바 수도 아바나에서 불법 인터넷 장비를 반입해 현지의 유대인 단체에 설치하려 한 죄로 체포된 지 만 5년 만이다.

미국 측 입장에서 보면 그로스의 감금은 쿠바와의 외교 관계 개선에 최대 걸림돌이었다.

쿠바 입장에서는 1998년 미국 플로리다 주에서 현지 망명인사를 대상으로 간첩활동을 한 죄로 체포된 자국 정보요원 5명도 마찬가지 대상이었다.

이른바 '쿠바인 5명' 가운데 레네 곤살레스가 가장 먼저 석방돼 작년 쿠바로 돌아왔고, 페르난도 곤살레스가 지난 2월 두 번째로 풀려나 쿠바에서 영웅 칭호를 얻었다.

나머지 3명 가운데 안토니오 게레로가 2017년 형기를 마칠 예정이지만, 미국과 쿠바는 이번에 그로스와 이들 3명을 맞교환하는데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양국의 수감자 석방은 외교, 교역, 여행 등 50여 년에 걸친 사실상의 적대 관계 청산의 물꼬를 트는 획기적인 사건이 될 것으로 외신들이 앞다퉈 전망했다.

그로스는 쿠바에서 체포될 당시 미국 국무부의 대외원조기관인 국제개발처(USAID)의 하도급업체에서 일하면서 다섯 번째로 수도 아바나를 방문한 길이었다.

쿠바 사법당국은 2011년 그로스가 불법 인터넷 장비를 반입해 간첩활동을 도모한 죄를 적용해 15년형을 선고했다.

그동안 그로스의 아내 주디는 남편의 석방을 위해 눈물겨운 노력을 전개했다.

주디는 그로스가 형을 선고받기 전인 2010년 10월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에게 "남편이 한 일이 쿠바 정부에 공격적인 행동으로 비칠 수도 있었다"며 "저와 남편은 이를 진심으로 후회한다"는 내용이 담긴 편지를 보낸 사실이 알려졌다.

그러면서 "남편은 쿠바 사람들을 좋아하고 그들에게 도움을 주기를 바랐을 뿐"이라면서 "미국과 쿠바 양국이 남편을 볼모로 활용하고 있다"며 양국을 비난하는 내용도 포함시켰다.

주디는 이달 초 "조국을 위해 봉사한 죄로 남편은 혹독한 시련을 겪고 있다"며 오바마 대통령이 나서 달라고 요청하는 성명을 내기도 했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2011년 3월 쿠바 정부의 초청으로 방문해 라울 카스트로 의장과 형인 피델 카스트로 전 의장을 면담하고 그로스를 만나 데려오는 것이 아니냐는 기대감이 일기도 했으나 이후 3년여가 더 걸린 셈이다.

카터 전 대통령은 쿠바에서 귀국하기에 앞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미국은 쿠바에 대한 금수조치를 비판하면서 쿠바를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후 뜸했던 그로스의 석방 문제는 작년 6월 미국과 쿠바가 이민 협상을 재개하면서 다시 두드러졌다. 그로스는 작년 12월 오바마 대통령에게 "직접 나서달라"며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지난 6월 폐암으로 투병하던 노모가 숨을 거두자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못한 그로스는 가족들에게 미리 '사별'을 고하는 등 자포자기의 심정을 나타냈다.

집권 초기부터 쿠바에 대한 유화 정책을 펼쳐온 오바마 대통령에게 그로스 문제는 난감한 장애물이었다. 이러한 장애를 극복하는데 미국 의원들이 막후에서 일정한 활약을 펼친 것으로 보인다.

작년 2월 오바마 대통령 재선 이후 처음으로 상원의원 5명과 하원의원 2명으로 구성된 의원단이 아바나를 방문해 관계 개선을 논의했고, 바버라 이(민주, 캘리포니아) 등 4명의 민주당 하원의원은 지난 5월 쿠바 정부측 관계자와 그로스를 만나고 돌아와 "양국간 조건없는 협상"을 제안했다.

지난 11월에는 제프 플레이크(공화, 애리조나) 톰 우달(민주, 뉴멕시코주) 상원의원이 그로스를 면담하고서 "석방을 낙관한다"고 밝힘으로써 풀려날 것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로스와 풀려나지 않은 '쿠바인 5명'의 석방이 낙관적이라는 전망은 쿠바인 5명 가운데 한 명인 페르난도 곤살레스가 앞서 먼저 제기했다.

그는 지난 9월 수도 아바나에서 내외신 기자 회견을 통해 차기 미국의 대권 주자인 힐러리 클린턴 전 미국 국무장관의 정치적 관점은 양국 수감자 석방 교섭의 전망을 밝게 한다고 말했다.

곤살레스는 힐러리 전 장관이 출간을 앞둔 회고록 '힘든 선택들'에서 쿠바에 대한 경제 봉쇄정책을 끝내야 한다고 오바마 대통령에게 촉구한 내용을 근거로 이러한 주장을 했다.

이는 힐러리 전 장관이 대권을 잡게 되면 자신이 펼칠 대쿠바 정책을 예고한 것이라고 일부 정치 평론가들은 분석한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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