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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경찰은 왜 박춘봉의 이름과 얼굴을 공개했을까?

박아름 기자

입력 : 2014.12.16 09:20|수정 : 2014.12.16 09:20

강력사건 피의자 신상을 공개하는 기준은?


지난 11일 밤 11시 반쯤 수원 토막살인 사건 유력 용의자가 경찰에 붙잡혔습니다. 시신의 일부만 발견되면서 미제로 남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던 와중에 유력 용의자가 검거됐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취재기자들은 바빠지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궁금한 건 역시 ‘WHO’라는 부분이었습니다. 50대 중국동포 남성. 일단은 1차 확인한 내용으로 자막 속보 처리를 하고 추가 취재를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 더 구체적인 정보가 나와 <중국동포 55살 남성 박 모 씨>라는 신원이 보도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검거 이틀 만인 13일 오전, 경찰은 피의자의 이름과 얼굴 사진을 공개했습니다. 다음날 법원으로 영장실질심사를 받으러 갈 때 역시 얼굴을 가리지 않고 노출했습니다.

비슷해보이는 살인 사건이어도 어떤 경우에는 피의자의 신원이 김 모 씨, 이 모 씨로 보도되는데 어떤 경우에는 피의자의 이름과 얼굴이 모두 공개됩니다. 각자 떠오르는 이름이 있을 텐데요. 가깝게는 오원춘, 서진환, 김길태, 유영철, 조두순, 강호순 정도가 생각납니다. 이들은 모두 경찰과 언론이 신상을 공개하기로 하면서 세상에 알려진 경우입니다. 이런 강력사건 피의자 신상 공개는 누가, 어떻게 결정하는 걸까요?

살인 사건이라고 해서 무조건 피의자 신상을 공개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피의자라고 해도 아직 범죄사실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법원의 유죄 확정 판결이 나지 않은 상태)에서 신상정보를 공개하는 건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유죄 확정 판결이 난다고 해도 피의자 인권 보호 차원에서 신상 공개는 신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만 몇 가지 조건을 충족할 경우에는 신상 공개가 가능한데요. 그 요건은 법에서 정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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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

제8조의2(피의자의 얼굴 등 공개)
① 검사와 사법경찰관은 다음 각 호의 요건을 모두 갖춘 특정강력범죄사건의 피의자의 얼굴, 성명 및 나이 등 신상에 관한 정보를 공개할 수 있다. 

1. 범행수단이 잔인하고 중대한 피해가 발생한 특정강력범죄사건일 것
2. 피의자가 그 죄를 범하였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증거가 있을 것
3. 국민의 알권리 보장, 피의자의 재범방지 및 범죄예방 등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필요할 것
4. 피의자가 「청소년 보호법」 제2조제1호의 청소년에 해당하지 아니할 것

② 제1항에 따라 공개를 할 때에는 피의자의 인권을 고려하여 신중하게 결정하고 이를 남용하여서는 아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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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자의 이름과 얼굴을 공개하려면 법에서 정한 4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해야 합니다. 1) 범행수단이 잔인하고 중대한 피해가 발생했으며, 2) 죄를 입증할 충분한 증거가 있어야 하고, 3)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사안일 때, 비로소 피의자의 신상 공개가 가능합니다. 다만 이 대상에서 4) 청소년은 제외됩니다. 1차적으로 수사기관이 자체 판단에 따라 피의자의 신상을 공개하면, 이를 취재하는 각 언론 역시 수사기관의 판단이 적절한지, 공익에 부합하는지 여부를 따져 피의자 신상 보도 여부를 결정합니다.
[생생영상]박춘봉
이번 토막살인 사건에서 경찰은 4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한다는 판단으로 피의자 박춘봉의 신상을 공개했습니다. 다만 검거 직후가 아니라 이틀이 지나고 나서야 신상을 공개했습니다. 피의자의 범행 시인이 결정적으로 작용했습니다. 범행이 잔인하고 경찰이 가진 증거가 확실하더라도 피의자가 혐의를 부인하는 상황에서 섣불리 신상을 공개하긴 어렵겠죠. 검거 이후 줄곧 혐의를 부인하며 진술을 거부해오던 박춘봉이 13일 새벽 범행을 시인함에 따라 경찰도 확신을 가지고 피의자의 신상을 공개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번 사건의 경우, 여죄가 밝혀진 게 아닌데도 단건 만으로 충분히 범행이 잔인하고 중대하다는 판단에서 신상이 공개됐습니다. 사회부 사건팀에서 3년째 경찰을 출입·취재하고 있지만 자주 볼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여러 강력사건을 취재하며 웬만한 범행수법에는 무뎌진 사건 기자들에게도 이번 사건에서 속속 드러나고 있는 박춘봉의 시신 훼손과 유기 정황은 가히 경악스럽습니다. 왜 자꾸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요? 취재하는 입장에서도 눈살이 찌푸려집니다. 당분간은, 아니 앞으로는, 이렇게 피의자 신상을 공개할 만큼의 강력사건은 다시 발생하지 않길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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