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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엑소더스', 비주얼 거장이 재연한 모세의 모노 드라마

김지혜 기자

입력 : 2014.12.08 08:59|수정 : 2014.12.08 08:59


이제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
오 주여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출애굽기 4:12~13)


이스라엘 민족이 모세의 인도로 이집트를 탈출해 나온 출애굽(出埃及)은 개인의 신앙 문제와 상관없이 수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구약성서의 유명한 사건 중 하나다.

성경에는 수많은 위인이 등장한다. 그중에서도 신의 계시를 받고 노예들을 구출시킨 모세의 이야기는 오늘날 그 어떤 영웅담만큼이나 극적이다. 이 때문에 출애굽 사건은 수차례 영화화된 바 있다. 이 새삼스러울 것 없는 이야기를 할리우드 최고의 비주얼리스트 리들리 스콧 감독이 다시 한 번 재연했다. 바로 '엑소더스: 신들과 왕들'이다. 

모세(크리스찬 베일)는 이집트 제국의 왕자로 자라다가 우연한 계기로 자신이 히브리인(이스라엘 민족)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신의 계시를 받은 모세는 400년간 애굽(이집트)의 지배를 받던 40만 히브리 노예들에게 자유를 찾아 주기로 한다. 이로 인해 형제처럼 자란 람세스(조엘 에저튼)와는 등을 지게 된다.

약속의 땅으로 노예들을 이끌던 모세는 람세스의 군대가 뒤를 바짝 추격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군대의 추격과 망망대해의 바다 사이에서 선택의 갈림길에 서게 된다.
이미지스토리의 각색이나 캐릭터의 변형이 여의치 않은 성경 영화의 경우 만든이의 관점이나 해석이 영화의 중요한 포인트다. 지난해 '창세기'를 파격적으로 해석해 화제를 모았던 영화 '노아'와 달리 '엑소더스'는 비교적 성경에 충실한 묘사를 보여준다.

리들리 스콧 감독은 신을 대하는 인간의 상반된 모습을 그리는 데 집중했다. '신들과 왕들'이라는 부제를 통해 신을 믿는 자 '모세'와 자신을 스스로 신이라 일컫는 왕 '람세스'의 대립을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영화는 각기 다른 길을 가는 형제 관계보다는 '모세'의 내면 갈등과 변화에 집중하고 있다.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고 신의 계시까지 받은 모세는 주어진 사명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신을 믿지 않았고, 무엇보다 자신의 능력을 부정한다. 그럴 때마다 여호와는 모세 곁을 맴돌며 그를 각성시키려 한다. '엑소더스'의 여호와는 기존 영화에서 묘사된 모습과 사뭇 다르다. 이 점에서 이 영화가 신을 어떻게 봐라보는 지를 엿볼 수 있다. 

'엑소더스'는 모세의 모노 드라마다. 정해진 운명을 받아들이는 한 인간의 내면을 파고든다. 성경 속 구절로만 유추가능했던 모세의 혼란과 두려움은 실연하는 배우에 의해 어렴풋이나마 느낄 수 있다. 신에 대한 의심과 끝없는 자기부정 끝에 하늘의 뜻을 따르는 모세의 행보는 지도자에 대한 영화라기 보다는 한 개인의 성장극에 가깝다. 익히 예상한 영웅담과는 거리가 있다는 말이다. 그 점이 이 영화의 쾌감을 떨어뜨리는 요소가 될 수도 있다. 
이미지메가폰을 잡은 리들리 스콧 감독은 '에이리언', '블레이드 러너', '블랙 호크 다운', '프로메테우스' 등을 만들며 할리우드 최고의 비주일리스트라는 명성을 얻은 거장이다. '글래디에이터'라는 역작에서도 증명된 바 있지만 장엄한 서사를 다루는데 있어서는 따라올 자가 없다.

장인의 숨결은 '엑소더스'에서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무엇보다 성경의 시각화에 많은 공을 들였다. 피로 물든 나일강, 파리 떼, 지독한 피부병, 우박, 개구리 떼, 아이들의 죽음 등 신이 내린 10가지 재앙을 시각화한 영상은 경이롭다. 엄청난 세트와 방대한 로케이션, 실사와 CG가 유기적으로 결합해 완성된 최상의 결과물이다.

하이라이트는 모세의 기적이 펼쳐지는 홍해 장면이다. 신의 뜻을 따르라는 모세와 자신이 신이라 주장하는 람세스는 홍해의 거센 파도 아래 마주 선다. '신을 따를 것인가? 인간을 따를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이 장면은 영화 전체를 압축하는 것이기도 하다.

결국, 영화는 전지전능한 신과 스스로 신이라 불리길 원하는 인간의 대립이라기보다는 신 아래 선 인간의 태도와 자세를 그린다.
이미지크리스찬 베일은 모세의 고민과 번뇌를 깊이 있는 연기로 보여준다. 모세와 대립각을 세우는 람세스 역의 조엘 에저튼도 욕망과 질투의 감정을 카리스마 넘치게 연기해냈다. 이 밖에도 영화에는 벤 킹슬리, 존 터투로, 시고니 위버 등 명배우들이 출연하지만, 모세에 집중된 이야기 전개 탓에 존재감이 두드러지지 않는다. 이를 두고 북미의 한 언론은 '캐스팅 낭비'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리들리 스콧 감독은 2.35:1의 넓은 앵글을 선호하는 감독으로 알려져있다. 덕분에 광활한 애굽의 풍경을 줌 아웃으로 잡은 신과 모세의 기적을 시각화한 홍해 신 등은 스크린으로 빨려들어갈 듯 생생하다. 아이맥스 카메라로 촬영한 작품이 아니지만, 와이드 앵글의 미학을 제대로 만끽하고 싶다면 아이맥스 관람을 추천한다.  

* 영화가 끝난 후에도 자리를 뜨지 않기를 권유한다. 스페인 출신의 음악 감독 알베르토 이글레시아스의 웅장한 OST와 함께 리들리 스콧 감독이 스스로 생을 마감한 동생(토니 스콧 감독)에게 남긴 메시지를 확인하기를. 12월 3일 개봉, 상영시간 154분, 12세 이상 관람가.  

(SBS 통합온라인뉴스센터 김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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