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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컵라면도 공간 23% 비운다

권종오 기자

입력 : 2014.12.07 09:02|수정 : 2014.12.07 09:03


 저는 지난 11월 26일 <취재파일>을 통해 이른바 '문콕'을 막으려면 최소 23%의 공간은 비워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즉 현재 한국 중형 승용차의 차폭(전폭)이 약 186cm인 상황에서 '문콕'을 방지하려면 주차 구역 한 칸의 폭이 최소한 241cm가 돼야 하는 것입니다. 
[취재파일] '문콕' 막으려면…"공간 23% 비워야"

이렇게 되면 자동차가 차지하는 비율이 약 77%이고 비워 있는 부분이 23%가 됩니다. 현행 법규는 최소 230cm로 돼 있는데 이마저도 지켜지지 않는 주차장이 절반을 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 <취재파일>이 나간 뒤로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나타냈습니다. 반응은 크게 2가지였습니다. 신기하고 흥미롭다는 사람도 있었지만 몇 가지 사례를 갖고 끼워맞춰 얘기한 것이 아니냐고 지적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생활에서 '공간의 법칙 23%'가 적용되는 더 많은 예를 소개할까 합니다.컵라면_640우리가 흔히 간식으로 먹는 중에 인스턴트 라면이 있습니다. 보통 '컵라면'이라고 하지요.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부은 뒤 3분쯤 기다렸다 먹게 됩니다. 컵라면 용기 안에는 뜨거운 물을 부을 때 이만큼만 부으라는 것을 지시하는 표시된 지점이 있습니다. 물을 그 이상 부을 경우 라면의 부피와 합쳐져 자칫 용기 밖으로 국물이 넘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 표시된 지점까지 물을 부었을 때 국물의 양이 적당해집니다.

아무튼 사람들은 대개 표시된 지점까지 물을 붓습니다. 그럼 그 지점은 전체 용기 부피의 몇%에 해당할까요? 한국에서 인기 높은 한 컵라면의 용기를 측정해보니 부피가 700ml이었습니다. 물을 붓는 선이 표시된 지점은 540ml이었습니다. 즉 채워지는 비율이 77.1%이고 비어져 있는 부분은 전체의 22.9%입니다. 세면대_640세수를 위해 사람들은 보통 세면대에 물을 받습니다. 제 아파트 세면대에 들어갈 수 있는 물의 총량은 8.2리터. 세면대에는 물이 일정 정도 차면 배수구로 빠지게 하는 구멍(홈)이 있습니다. 세면대 물이 넘쳐 다른 곳으로 흐르지 못하게 마련된 장치입니다. 세면대에 물을 붓기 시작해 6.3리터가 되면 물이 빠지게 돼 있습니다. 구멍을 인위적으로 막지 않는 한 6.3리터 이상 채울 수 없다는 뜻입니다. 6.3리터를 채울 경우 세면대에 남는 공간은 1.9리터입니다. 이 남는 공간을 비율로 따지면 23.2%가 됩니다.

 제가 다니는 회사 화장실에는 여러 종류의 세면대가 있습니다. 그중 제일 작은 세면대의 전체 용량은 9.3리터입니다. 하지만 배수 홈이 있어  7.1리터를 넣으면 홈을 통해 물이 빠지기 시작합니다. 즉 물은 인위적으로 홈을 막지 않는 한 7.1.리터 이상 채울 수 없습니다. 이 때 세면대에 남는 공간은 2.2리터. 비율로 따지면 23.6%입니다. 큰 세면대의 경우는 남는 공간이 이 보다 더 컸습니다. 일반적으로 호텔에 있는 세면대의 경우 물을 70% 정도 넣으면 홈으로 빠지게 돼 있습니다. 어떤 세면대이건 배수 홈이 있다면 물을 77% 이상 채울 수는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작은 화장실은 무엇일까요?  넓은 공원에서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특별 행사가 열리면 이동식 간이화장실이 설치됩니다. 이 화장실 크기는 일반 화장실 보다 훨씬 작습니다. 하지만 이 화장실 보다 작은 것이 비행기내에 있는 화장실입니다. 화장실의 폭은 63cm. 인간이 이용할 수 있는 가장 작은 규모입니다. 비행기나 이동식 화장실이 아닌 일반적인 공중 화장실 한 칸의 크기는 작아야 82cm 정도입니다. 

가장 작은 비행기내 화장실 가로 폭 63cm보다 19cm 넓은 것입니다. 82cm에서 이 넓이는 23.2%에 해당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일반 화장실을 이용할 때 사람이 차지하는 부분을 제외하고 빈 공간이 최소 23%는 된다는 얘기입니다. 그럼 장애인 화장실은 어떨까요?

이동식 화장실내에 있는 장애인 전용 화장실의 가로폭은 160cm이지만, 장애인이 이용하기가 불편합니다. 병원이나 공공시설의 경우 웬만하면 180cm가 넘습니다. 비행기 내 화장실의 최소 폭 63cm에 휠체어 평균 폭 75cm를 더하면 장애인이 필요한 공간은 138cm. 전체 폭 180cm에서 138cm를 빼면 42cm가 남는데 이는 전체 장애인 화장실 공간의 23.3%에 해당합니다.

23%를 비우는 공간의 법칙을 다시 확인하기 위해 이번엔 서재로 눈길을 돌립니다. 동서양을 가릴 것 없이 책을 보면 위아래에 일정한 여백이 있습니다. 제 책상에 있는 책 다섯 권을 무작위로 골라 글자로 덮인 부분과 비어 있는 부분을 측정해 보았습니다. 결과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취파  표_640 왼쪽은 책의 세로 길이입니다. 오른쪽으로 문자로 표기된 부분의 길이입니다. 책 5권의 평균적인 여백 비율은 22.8%로 나왔습니다. 다른 책 5권을 똑같은 방법으로 선택해 측정했는데 결과는 거의 비슷하게 나왔습니다.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은 인간을 행복하게 해줍니다. 유명 피아니스트의 손놀림은 마치 건반 위에서 춤을 추는 것 같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건반 한 개의 폭이 절반으로 준다 해도 빼어난 연주 솜씨를 보여줄 것입니다. 하지만 일반 사람의 경우 건반 한 개의 폭이 반으로 준다면 제대로 피아노를 칠 수 있을까요? 지금보다 훨씬 힘들 게 분명합니다. 일반적으로 피아노 흰 건반 한 개의 폭은 2.35cm입니다. 성인이 손가락을 놓으면 1.8cm가 덮여집니다. 남는 공간은 0.55cm이다. 0.55cm는 2.35cm의 23.4%에 해당합니다.

위에 열거한 컵라면 용기, 세면대, 화장실, 피아노 건반은 사실 서로 아무런 상관 관계가 없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전체 공간의 약 77%를 채우고 23%를 비우는 현상은 공통적으로 나타납니다. 이것이 우연의 일치인지 아니면 우리가 모르는 가운데 존재하는 공간의 법칙인지, 또 23%를 비우는 것이 이른바 '최적해'(optimal solution)의 개념과 일맥상통하는 것인지 단언하기는 어렵습니다. 다음주에는 스포츠에서 적용되는 '공간의 법칙 23%"를 소개하겠습니다.  

최적해: 기업, 또는 어느 체제에 있어서 어떠한 운영방식이나 생산방법이 가장 적합한지를 결정하기 위하여, 현실적으로 최대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수학적 조작이나 시뮬레이션(simulation)에 의해 합리적으로 구해진 가장 적절한 해(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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