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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교통 일찍 끊기는 제주공항…관광객 '왕짜증'

입력 : 2014.12.04 15:13|수정 : 2014.12.04 15:13


"우리 아이의 몸이 불편해서 빨리 숙소에 가서 쉬어야 하는데…"

차가운 밤 공기에 떠는 뇌성마비 딸을 끌어안고 제주국제공항 택시승강장에서 택시를 기다리던 류근화(52·서울시)씨는 너무 어이가 없어 몹시 화가 난 듯했다.

오후 10시께 제주공항에 도착한 후 1시간 50분 넘게 택시승강장에서 줄을 서 택시가 오기만을 기다렸지만 허사였기 때문이다.

택시가 좀처럼 오지 않아 다시 버스를 타보려고 했으나 대중교통은 일찌감치 끊긴 뒤였다.

20살 된 뇌성마비 딸이 불편해할까 봐 도착하자마자 버스를 타지 않은 게 후회스러웠다.

지난달 28일 오후 10시 50분, 대중교통이 끊긴 그 시각에도 많은 관광객이 공항 여객터미널을 빠져나왔다.

항공기는 예정시각대로 도착해도 짐을 찾다보면 20∼30분의 시간을 허비하기 마련이어서 오후 11시가 넘어도 국내선 항공기 승객들이 많았다.

주말을 앞둔 금요일 밤이라 대부분 가족단위나 자유여행객인 이들은 제주공항을 운행하는 버스가 끊기자 곧장 택시 승강장으로 몰려들었다.

오후 11시 이후부터는 국제선 도착 항공기를 타고 온 중국인 관광객들까지 승강장 대기선에 합류해 100여명이 40m의 긴 줄을 만들었다.

국내선 마지막 항공기로 제주에 왔다는 김주영(39·인천시)씨는 "택시가 없어 콜택시를 부르려고 전화해 보니 택시가 모두 운행 중이라 보낼 수 없다는 답이 돌아오거나 전화를 아예 받지 않았다"며 "버스도 끊기고, 렌터카도 없고, 택시도 없는데 우리더러 어떻게 하라는 것이냐"고 원망했다.

중국인 지펭(30·상하이)씨도 "기다리는 게 너무 힘들다. 다시 중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며 한숨을 쉬었다.

한참을 기다리자 택시 한 대가 왔다.

그 택시 기사는 "개인택시 기사 대부분이 날이 어두워지면 일을 하지 않는데다가 밤 영업을 하는 택시 운전사들은 시내에 손님이 많아 굳이 시내에서 떨어진 공항까지 오지 않는다"고 기자에게 귀띔해줬다.

실제 오후 10시 30분∼12시까지 '제주시 방향'의 택시 승강장에서 택시를 기다려 봤으나 손님을 태우러 온 택시는 10여 대에 지나지 않았다.

자정을 넘기자 오랜 기다림에 지친 일부 관광객은 걸어서 공항을 빠져나가기도 했다.

적어도 1∼2km는 걸어야 하지만 택시를 잡아타려면 어쩔 수가 없어서다.

내국인들보다 늦은 시각에 국제선 항공기를 타고 제주에 온 중국인 관광객들은 새벽까지 택시 승강장을 떠나지 않고 기다렸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전혀 알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푸이 씽(45·상하이)씨는 "안내하는 사람이 없어 뭐가 뭔지 모르겠다. 기다리다 보면 택시가 오지 않겠나"며 "제주가 세계인들에게 유명한 관광지가 된 만큼 좀 더 세심하게 배려해줬으면 한다"며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제주를 찾는 관광객이 늘어남에 따라 항공기 운항도 증가해 지난해 여름부터 국내선 항공기는 오후 10시 30분까지, 국제선 항공기는 오후 11시 30분∼12시에도 수백명의 관광객들을 싣고 제주공항에 도착한다.

항공기 운항 시간대가 늘어나 늦은 시각까지 제주공항은 관광객들로 북적이지만 대중교통이나 택시 운행체계는 예전 그대로다.

제주공항의 시내버스 운행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매일 오후 10시 50분이면 끊긴다.

밤이 깊어지면 택시도 손님이 많은 도심지를 중심으로 운행하기 때문에 공항으로 오는 택시가 거의 없다.

하다못해 렌터카를 이용하려 해도 업체들이 일찌감치 문을 닫아 아무 소용이 없다.

밤늦은 시간대에 제주공항에 도착하는 관광객들은 이처럼 대중교통이 일찍 끊기고 택시가 거의 없어 매일같이 발이 묶이는 불편한데도 공항을 편하게 빠져나가는 방법을 알려주는 안내원이나 안내문은 없다.

또한 공항공사나 제주도, 대중교통업계에서는 대중교통이 끊긴 이후 제주공항의 관광객 수송방안에 대해 대책은커녕 이런 일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듯 실태조사도 하지 않고 있다.

김인범(52·서울시)씨는 "택시 승강장 안내판에는 택시 요금체계에 대한 안내만 있지 공항 부근에서 택시를 탈 수 있는 위치도나 콜택시 회사 전화번호 등 안내의 글은 없었다"고 항의했다.

이재근(60·서울시)씨도 "가족단위 관광객들은 회사 일을 마친 후 늦은 시각 비행기를 타고 제주에 오는 일이 많다"며 "제주도가 순환버스를 운행하든지, 버스 회사나 택시 회사에서 순번을 정해 관광객들을 수송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부탁했다.

지난해 연간 제주 방문 관광객이 1천만명을 넘어선 가운데 한국공항공사 제주지역본부는 제주공항 이용객은 연간 2천만명이 넘었다며 기념식을 열었다.

올해는 제주 방문 관광객이 내주 중 1천150만명을 돌파해 지난해 이용객보다 더 많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제주도로 오지 말아야 했었는데…" 추운 밤 새벽까지 가족들과 함께 택시를 기다리다 지쳐서 걸어서 공항을 빠져나가던 한 관광객이 던진 말을 공항공사와 제주도 등은 잘 새겨들어야 할 것 같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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