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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반민정 “8번 죽었다 살아난 배우…이젠 살아서 연기할래요”

강경윤 기자

입력 : 2014.11.26 13:27|수정 : 2014.11.26 13:27


배우 반민정은 여덟 번 죽고 아홉 번 살아난 배우다. 물론 현실에서 죽은 건 아니다. 작품들에서 죽고 또 죽었다. 가장 최근에는 영화 ‘응징자’에서 팜므파탈 새 엄마로 출연했다가 배우 양동근에게 음독 살해를 당한다. 이밖에도 돌 맞아 죽고, 얼어 죽고, 고문당해 죽고 죽는 등 죽는 연기는 질릴 만큼 했다. “8번 죽고 살아났으니 이젠 오래 사는 역할하고 싶다.”고 말하는 반민정은 데뷔 이후 두 번째 기지개를 펴고 있다.

우스갯소리로 “이쯤되면 죽음 전문 배우 아니냐.”고 했지만 반민정의 무모할 정도로 밀어붙이는 연기열정을 보면 웃을 수 없다. 비구니 역할을 맡았을 땐 머리를 박박 밀고 절에서 한 달 가량 지낸 적도 있고, 무당 연기를 배우기 위해서 실제 무술인을 찾아간 적도 있다. 고문을 받다가 죽는 신을 찍다가는 여러 번 졸도했다. 연기에 ‘목숨’을 건 배우 반민정에게 연기에 대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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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지난해 영화 ‘응징자’에서 임팩트 있는 연기 잘 봤어요. 팜프파탈 악역을 많이 했지만 실제 모습은 전혀 다른데요?

“그런 얘기 많이 들어요. 실제론 웃음도 많고 정에 약하고 어리바리한 면도 많은데(웃음). 첫 번째 영화의 개성이 워낙 강해서 그런가요.”

Q. 데뷔작이 김기덕 감독의 ‘수취인불명’이었죠? 한쪽 눈에 백태가 낀 은옥 역을 맡아서 아직도 그 이미지가 선명해요.

“한예종 재학 중이었을 때 오디션을 보고 은옥 역에 덜컥 합격을 했어요. 그 때부터 고민의 시작이었죠. 노출도 자신이 없었고 시나리오도 어려웠고요. 김 감독님이 시나리오도 수정해주시면서 잘 이끌어주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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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흔히 김기덕 감독님의 스타일에 대한 고정관념이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나봐요.

“촬영하기 전엔 그런 얘기 들었어요. 김 감독님 촬영현장 힘들거라고요. 전 그런 거 없었어요. 잘 대해주셨고 저 역시 매 순간 ‘은옥은 어떻게 숟가락을 쥘까’, ‘어떻게 웃을까’ 등 은옥만 생각하며 지냈어요.”

Q. 그래서 14년 전 작품인데도 아직도 민정 씨에게서 은옥을 떠올리나봐요.

“맞아요. ‘수취인불명’ 직후 많은 작품들이 들어왔는데요. 주로 너무 이미지가 강한 배역이나 노출이 있는 시나리오가 많았어요. 하지만 전 자신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거절하다 보니까 어느순간부터 영화 작업이 힘들어지더라고요.”

Q. 원치 않는 공백기도 갖게 됐군요.

“2007년 정도였나. 계속 배우생활을 할지 아니면 공부를 더 해서 교수 쪽으로 나갈지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 때 마음이 많이 힘들었는데,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그런 고민을 많이 해소했어요. 그래서 그 때 ‘영상연기에 있어 배우 워밍업과 긴장해소 방안에 관한 연구’란 제목의 논문을 쓰면서 여배우와 우울증에 대해서 언급하기도 했어요.”

Q. 민정 씨에게도 우울증을 떠올리는 시기가 있었나봐요.

“어떻게 보면 배우와 우울증을 떼려야 뗄 수 없는 것 같아요. 연기를 하지 않으면 많이 힘들어지니까요. 이후 만난 매니저들과 몇 번 안 좋은 결과를 불러일으켰는데 그 때 제 손을 잡아준 게 바로 지금의 송대중 대표(DJ 엔터테인먼트)님이에요.”

Q. 결국 다시 연기자로 돌아올 수 있는 힘이 된 거군요.

“영화 ‘요가학원’을 찍을 때 처음 송대중 대표님을 알게 됐는데요. 이후 몇 번의 러브콜을 거절하다가 몇 달 전에 SNS에 글을 썼어요. ‘배우 생활 그만둘까’란 글이요. 그걸 보고 다시 손 내밀어주셨고 그 때 큰 믿음을 갖게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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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그간 영화 ‘엄마’, ‘비상’ 등과 드라마 ‘각시탈’, ‘굿닥터’ 등 꾸준히 연기활동을 해왔잖아요. 무슨 역을 맡든 그 배역에 대한 분석과 실험이 놀라울 정도던데요?

“한예종 입학시험을 볼 땐 무당 연기를 하기 위해서 진짜 무술인을 찾아간 적도 있어요. 또 영화 ‘엄마’에서 연화스님 역을 맡았는데요. 영화사 대표님을 졸라서 한달 동안 여자스님들만 계신 절에서 생활했어요. 속세를 떠나서 진짜 스님들이 사는 세상을 경험해 본 거죠. 영화에서 머리카락을 박박 밀었는데 그 땐 웃음만 나다가 숙소에 들어가서 펑펑 울었어요.”

Q. 그 이후엔 유흥업 종사자 역할도 맡았던데요?

“최근 작품인 영화 ‘따라지’에서는 성매매 업소의 포주 역할을 했어요. 낮에 가서 포주들이 진짜 어떻게 대화하는지 유심히 들었죠. 옆집 평범한 아주머니들과 별반 다르지 않아서 좀 놀랐어요. 또 영화 ‘특수본’에서는 유흥업소 여성 역할을 맡았는데, 실제 단란주점에서 촬영하다가 쉬고 있는데 취객이 저를 가리키며 ‘아가씨 물 좋네.’라고 해서 엄청 당황했죠.”

Q. 죽기도 많이 죽었다면서요?

“‘응징자’에선 약물로 살해당하고 ‘닥터’에선 진실을 고발하려다가 대리석에 맞아 죽고 드라마 ‘새아 새아’에선 눈밭을 걸어다니다가 얼어 죽었어요. ‘각시탈에서는 고문당해 죽고요. 지금 계산해 보니까 여덟 작품에서 죽었던 것 같네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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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연기생활을 하면서 노출연기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여배우에게 노출이라는 걸 아예 배제할 순 없죠. 연기관이 점점 변하더라고요. 20대 때는 작품이나 캐릭터만 보고 할 수 있다 생각했는데, 이제는 시나리오를 보고 진짜 노출이 필요한가를 꼭 생각해요. 한번은 어떤 감독님이 시나리오를 주면서 ‘여배운데 왜 못 벗어’라고 말씀하신 적도 있어요. 하지만 이젠 나이도 있고, 결혼해서도 미래의 내 자식과 함께 볼만한 작품에 출연하고 싶어요.”

Q. 내 자식과 함께 볼만한 작품과 연기 어떤 게 있을까요?

“밝은 캐릭터를 꼭 해보고 싶어요. 배우 박해미 씨가 했던 코믹한 캐릭터도 해보고 싶고요, 정말 열심히 살아가는 캔디 같은 모습도 보여주고 싶어요. 사실 그게 진짜 제 모습이거든요?”

Q. 실제로는 오히려 밝고 털털한 편이죠?

“아침 드라마 ‘두근두근 달콤’이라는 작품에서 재벌 딸이자 악역 연기를 할 때였는데, 제가 평소에 대중교통 잘 타고 다니거든요. 지하철 역에서 스카프를 싸게 팔 길래 열심히 구경했는데, 아주머니들이 등을 때리면서 ‘드라마에 나오는 못 된 여자애’라고 알아보시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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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아버지와 남동생 모두 배우인 배우 집안에서 자랐죠?

“네. 아버지는 예술적 감성이 풍부하신 분이에요. 반면 어머니는 똑똑하시고 분석적이시죠. 남동생이 연기하는 걸 보면 아버지의 예술성을 그대로 물려받아 본능적으로 연기하는 스타일이에요. 반면 전 엄마, 아빠를 반반씩 닮아 분석하고 연기하는 편이죠.”

Q. 어떤 캐릭터를 맡든 분석하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에요. 앞으로 어떤 연기자가 되고 싶나요?

“이순재 선생님을 가장 존경해요. 수십년을 연기하셔도 초심을 잃지 않고 연기에 다가가고 준비하는 자세 등 배우고 싶은 부분이 많아요. 저도 나태해지지 않고 무대에서 죽을 때까지 연기하고 싶어요. 극중에서 많이 죽어봤으니까 이제는 끝까지 살아있는 배역으로 연기 지치도록 해보고 싶어요.”

(SBS 통합온라인뉴스센터 사진 김현철 기자)

(SBS 통합온라인뉴스센터 강경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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